[Opinion] 반복되는 역사에 관한 음악 [음악]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1905년'
글 입력 2019.07.0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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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예술의전당에서 KBS교향악단의 제743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연주 프로그램은 아람 하차투리안의 <스파르타쿠스 모음곡(발췌)>과  피아니스트 다니엘 하리토노프가 협연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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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곡은 단연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이었다. 네 악장의 총 연주 시간이 한 시간이 넘는 이 곡을 지휘자 요엘 레비와 오케스트라는 쉬지 않고 내리 달렸다. 그야말로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공연이었다.

실제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은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폭풍을 묘사하고 있다. 바로 1905년 1월 9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1. 1905년 1월 9일 일요일



1905년 1월 9일(구력) 일요일, 성상과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초상, 십자가, 교회의 깃발을 든 군중들이 겨울 궁전을 향해 행진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푸틸로프 공장 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노동 분쟁, 파업과 관련하여 차르에게 직접 청원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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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의 초상을 들고 행진하는 시위대


시위를 이끈 게오르기 가폰 신부가 작성하고, 노동자들이 서명한 청원서에는 정당한 임금, 하루 8시간 노동, 초과 근무의 제한, 노동 분쟁의 자유 등 노동 조건 개선 내용 이외에도 선거로 선출된 의회의 구성, 언론의 자유, 의무 교육, 토지 상환세 폐지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르바 관문 근처에서 시위대가 마주한 것은 무장한 군인들이었다. 군인들은 먼저 공중으로 두 번 사격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비무장한 시위대를 향한 발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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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군인들



이 날 사상자의 수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민중들은 이제 차르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는 것이다.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생겨나는 아수라장 속에서 누군가가 "더 이상 신은 없다. 더 이상 차르도 없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은 수백 년간 고통스럽게 이어져온 어떤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날이었다. 성상을 들고 아버지-차르에게 청원하는 시위대는 앞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2.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1905년'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진 1905년의 바로 다음 해인 1906년에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시위대가 향하던 겨울 궁전이 서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어린 쇼스타코비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917년 혁명과 이후 벌어지는 러시아의 중요한 역사 사건들을 경험했다. 이는 단순한 목격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평생에 걸쳐 이 일들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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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
현 에르미타주 박물관


그중에서도 <교향곡 11번> '1905년'은 다소 충격적으로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루고 있다. 네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에는 각 악장마다 부제가 붙어있다. 1악장은 '궁전 앞 광장', 2악장은 '1월 9일', 3악장은 '영원의 기억', 4악장은 '경종'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곡에는 총 여섯 개의 혁명가가 인용되어 있다. 이렇게 노골적인 <교향곡 11번>은 언뜻 당시 소련 예술계를 지배하던 방법론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결과물로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이 곡이 작곡, 초연된 배경에는 정치 이념적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에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 본 사람은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국가의 이념을 홍보하기 위한 곡이 아니다. 이 곡은 국가와 시대, 어쩌면 이념을 뛰어넘어 지독하게 반복되어 온 어떤 역사에 대해 말하는 음악이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 '1905년'은 때때로 고통스러워하고, 때때로 분노하며 이 반복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3.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속 피의 일요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1악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 궁전 앞 광장에서 시작된다. 넓고 황량한 궁전 앞 광장의 테마는 현악기의 느린 선율로 묘사된다. 이 테마는 나머지 악장에서도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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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 궁전 앞 광장


잠시 뒤 하나의 노래가 등장한다. 혁명가이자 죄수들의 노래 <들어주오!>이다. 서로 다른 악기들로 주고받는 혁명가 <들어주오!>는 궁전 앞 광장의 테마에 묻힐 듯 묻히지 않으며 이어진다. 그러나 1악장을 마무리하는 것은 다시 궁전 앞 광장 테마이다. 이 반복되는 선율을 듣고 있으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전 앞 광장의 광활함에 현기증을 느낄 것만 같다.


그러나 이어지는 2악장은 시작부터 무언가 달라진다. 2악장은 '1월 9일' 즉, 피의 일요일이다. 음악은 더 이상 텅 빈 광장의 삭막하고 광활함을 말하지 않는다. 차르에게 직접 청원하기 위해 겨울 궁전으로 향하는 군중들이 나타난다. 청원서를 가득 채운 민중들의 호소와 시위대의 움직임에 이어 또 다른 노래 '오오, 황제! 우리들의 아버지여'가 등장한다. "오오! 황제, 우리들의 아버지여! 주변을 돌아봐 주오. 황제가 거느리는 부하들로 인해 우리들은 안락한 생활도 돈도 잃었다오."라는 가사는 고통받으면서도 아직까지 차르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지 못한 민중들을 묘사한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2악장 속 민중의 호소를 듣고 있으며 또 다른 곡이 떠오른다. 바로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이다. 나라가 혼란해지고, 굶어가는 민중들은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를 향해 빵을 달라고 애원한다. 300년이 지난 뒤, 민중들은 또다시 차르에게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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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4막 중
성 바실리 대성당 앞 장면, 볼쇼이 극장(1927)


민중들의 호소와 애원은 충격적인 대답으로 돌아온다. 마치 총성을 묘사하는 것과 같은 타악기의 연주가 시작된다.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것이다. 총에 맞아 죽고, 도망치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아수라장이 표현된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그 흉포함을 지독히도 생생히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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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을 묘사한 이반 블라디미로프의 그림


이어지는 3악장 '영원의 기억'은 희생자를 기리는 장송곡이다. 이 부분에서도 두 개의 혁명가가 인용된다. 담담하게 희생자를 추모하던 곡은 점점 힘을 더해가며 분위기가 변해간다. 오케스트라 선율의 밑바닥에서 마치 심장박동 소리처럼 시작되는 팀파니의 연주는 금관으로 이어지며 하나둘씩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마지막 4악장은 '경종'이다. 4악장의 시작에서 귀를 파고드는 선율은 혁명가 '격노하라, 압제자들이여!'이다. "격노, 격노하라, 압제자들이여! 우리를 비웃으라! 감옥과 족쇄로 우리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라! 우리의 몸이 짓밟힐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강력하다! 수치, 수치, 수치스러워하라! 압제자여!"라는 가사처럼 민중의 분노와 투쟁의지를 담은 4악장의 선율이 이어진다. 이어서 또 다른 혁명가 '바르샤반카'가 등장한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4악장에 쓰인

혁명가 '격노하라, 압제자들이여!'



한동안 이어지던 격렬한 음악은 다시 1악장 궁전 앞 광장 테마로 돌아온다. 마치 과거의 모든 일들이 이곳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곳에서 일어날 일들을 경고하는 것 같다. 4악장의 마지막은 다시 시작되는 민중들의 투쟁 의지와 다가올 미래를 알리는 종소리로 끝난다.




4. 반복되는 역사와 음악



쇼스타코비치는 한 편의 서사시처럼 피의 일요일 사건을 생생히 묘사한 <교향곡 11번>을 1957년 8월 4일에 완성한다. 이 곡은 1957년 10월 30일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 1957년은 10월 혁명 40주년이 되는 때이기도 하다.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교향곡들처럼 <교향곡 11번> 초연 역시 음악계, 나아가 소련 문화, 정치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전후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은 어느 정도 체제 선전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차르에 대한 민중들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결국 1917년 혁명을 통해 차르는 폐위되고 볼셰비키 정권이 세워졌다. 그로부터 40년이 되는 해, 소련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룬 곡을 갖고 온 것이다. 곡의 생생함과 중요한 모티브로 인용된 혁명가 역시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곡을 소련 정권의 체제 선전 음악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많은 것을 놓치는 일이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이 다루고 있는 것은 1905년 발생한 피의 일요일 사건만이 아니다. <교향곡 11번>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쇼스타코비치가 이 곡을 작곡할 무렵인 1956년 11월에 발생한 소련의 헝가리 혁명 유혈 진압 역시 주목할 만하다.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이 '1905년'으로 불리긴 하지만 1957년 즈음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과 1956년 헝가리 혁명의 관련성에 대한 언급은 다른 지인들의 회고에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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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진입한 소련군의 탱크
1956년 11월(사진 : 데일리 뉴스 헝가리)


하지만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11번>를 두고 한 말 중 나에게 가장 와닿는 단어는 바로  '반복성'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증언>에서 <교향곡 11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역사에서는 많은 일들이 되풀이되는 것 같다. 물론 똑같은 사건이 정확하게 반복될 수는 없다. 다른 점이 분명히 있기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들이 반복된다. 사람들은 대개 유사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곤 한다. 무소르그스키를 연구하거나 <전쟁과 평화>를 읽어보면 이 점은 명백하다. <교향곡 11번>에서 나는 이러한 반복성을 나타내고자 했다."


- <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82쪽



역사는 반복된다. 민중과 지배자의 갈등은 지독히도 오랫동안 반복된 역사이다. 민중은 자신의 권리를 호소하며 지배자에게 나아가지만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원래대로라면 그들을 지켜야 하는 군대이다. 군대는 발포하고, 민중들을 짓밟는다. 신뢰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이것은 러시아만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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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하게 반복되어 온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쇼스타코비치의 말처럼 사람들은 대개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4악장의 마지막 종소리는 민중들의 분노와 투쟁 의지를 넘어 앞으로 다가올 역사에 대한 예고로 들린다. 이 종소리가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결의일까, 경고일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연주 영상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




[홍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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