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의 시작부터 끝까지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에 등장하는 것은 거칠게 표현한 배경과 왜곡된 모양의 탁자, 그리고 길쭉한 형상의 사람이다. 처음에는 우울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사물들에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계속해서 보다 보니 오히려 반복되는 그림들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광대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반복되는 주제들은 그뿐만이 아니다. 램브란트 등 거장의 작품을 오마주하기도 했고, 해저 2만 리등 당시 공상과학소설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만화적 스타일이 돋보이는 시기에는 자동차를 그리기도 했는데, 전시에서 유일하게 밝고 튀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었다. 이외에도 미친 사람들 시리즈, 뉴욕 시리즈, 에코르셰 시리즈 등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인 만큼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많은 주제를 볼 수 있었다.
시리즈 내에서 비슷한 사물과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정물화의 경우 어떤 사물이 그려졌는지, 인물화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같은 파리를 다른 시기에 그린 그림에서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등에 주목한다면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존재와 사랑
전시를 함께 보고 나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가장 많이 다루었던 주제는 역시 그와 그의 뮤즈 아나벨 뷔페의 사랑이었다. 전시장에 있는 그와 그녀의 사진을 보면 당연히 서로의 외모를 보고 반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웬만한 영화배우 커플만큼이나 두 사람의 만남은 멋지다. 실제로 전시 가이드에서 들었던 내용으로는 베르나르는 당시의 `셀럽`이었고, 아나벨 역시 당대 예술가들의 뮤즈였다고 한다.
둘이 처음으로 만난 순간은 친구였던 사진작가가 사진으로 남겼는데, 이 사진을 전시회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옆에는 칸 영화제의 아나벨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전까지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의 모습을 기괴한 모습으로 그린 데 반해 이 그림에는 화려하고 선명한 색감의 배경과 아름답고 도도한 여성이 그려져 있다. 그녀를 만난 이후 화풍이 눈에 띄게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베르나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림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 곳곳에는 그림에 대한 설명 대신 아나벨이 베르나르에 대해 쓴 글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에 그토록 아름다운 글을 써 줄 수 있는 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그가 죽고 난 후에도 그의 그림들이 아나벨을보살펴 줄 것이니, 슬퍼할 필요 없다"는 말이었다. 그녀에게 주변인들이 건넨 말인데, 이만큼 예술가에게 영광되는 찬사는 듣기 힘들 것이다.
전시회를 가면 되도록 전시 가이드를 듣거나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편인데, 베르나르 뷔페 전의 가이드는 이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했던 색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로 아나벨의 시점으로 그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애정을 듬뿍 담아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는 전시 가이드가 궁금하다면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