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맥베스(1971): 잠들지 못하리

글 입력 2019.06.2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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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못하리


권력과 욕망 그 속의 톱니바퀴, 인간. 영화 <맥베드>


불면증. 잠에 들지 못하거나 자주 깨는 현상을 뜻한다. 대게 신경 쓰이는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잠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 즉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잠자는 동안 욕망은 꿈을 통해 나타난다. 즉, 우리는 꿈을 통해 소망을 충족한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맥베드>의 인물들은 현실에서 환상을 경험한다. 그들은 깨어있는 걸까, 꿈을 꾸는 걸까.




욕망의 씨앗, 목걸이



영화는 마녀들이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녀들은 갯벌을 파내고 그 안에 잘려진 남성의 팔과 온갖 이상한 것들을 묻는다. 나는 이 팔의 주인이 맥베드라고 생각했다. 권력에 눈이 멀어 파멸을 맞은 또 다른 맥베드. 물론 진짜 맥베드는 전장에 나가 죽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더 큰 작위를 받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것일지도 모른다. 극의 초반 맥베드의 얼굴은 평온해보인다.


이 평온은 금세 균열이 가고 만다. 왕이 코더 영주의 작위를 그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코더 영주가 되기 전 맥베드는 뱅코우와 마녀들을 만난다. 마녀들은 맥베드가 코더 영주가 될 것이며,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녀들을 만나고 온 다음 날 맥베드는 코더 영주가 된다. 반역자의 작위를 물려받은 맥베드. 나는 그가 목걸이를 착용하는 순간, 욕망의 씨앗이 그의 마음 속에 뿌리를 박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맥베드는 바로 왕을 제거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권력욕과 도덕심 사이에서 맥베스는 고뇌한다.  그러면서도 코더 영주의 목걸이를 벗지 않는다.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덩컨 왕은 맬컴을 컴버랜드 세자로 책봉한다. 맥베드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덩컨의 아들인 맬컴에게 왕의 지위가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마녀의 예언 때문인지 맥베드는 왕위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욕망이 잠에서 깬 것이다. 이 씬에서 도널배인의 표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맬컴이 컴버랜드 세자로 책봉되었을 때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덩컨 왕은 큰 공을 세운 맥베드의 성에서 하루 묵을 것이라고 말한다. 맥베드는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성으로 먼저 떠난다. 왕을 살해하기로 결심한 맥베드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도널배인. 이 두 인물들은 영화 속에서 어떤 접점을 가지게 될 것인가.




잠을 죽인 자, 맥베드



사람들의 천성은 악한 것인가? 아니면 욕망 때문에 이러한 일을 벌이는 것인가. 마녀들의 예언을 알게된 레이디 맥베드는 덩컨이 다음 날 태양을 보지 못할 것이라며 웃는다. 이미 그녀는 덩컨 왕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왕이 맥베드의 성에 도달할 수록 날씨는 점점 어두워지고 끝내는 비바람이 몰아친다. 레이디 맥베드는 웃는 얼굴로 덩컨 왕을 맞이한다. 그녀는 살인을 계획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못할 정도로 평온함을 유지한다. 오히려 불안에 떠는 것은 맥베드이다. 맥베드가 계획을 포기하려고 하자 레이디 맥베드는 눈물을 흘리며 맥베드에게 “비겁한 인생을 살아라.”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맥베드는 홧김에 거사를 진행한다. 이러한 점에서 레이디 맥베드는 마녀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달콤한 예언으로 욕망에 불을 지피는 마녀들. 그리고 이것을 듣고 맥베드에게 권력을 취하라고 종용하는 레이디 맥베드. 뒤에  나올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맥더프와 연관지어 보았을 때, 이것은 서론에 제시한 잠과 연관된다고 생각했다. 잠들지 못하는 맥베드,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맥더프.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모두들 연회장에서 즐겁게 먹고 마시며 춤춘다. 맥베드만이 자리를 즐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연회가 끝나고 다들 침소로 돌아간 밤, 맥베드 내외는 거사를 실행한다. 레이디 맥베드가 왕의 시종들에게 술을 주러가려고 할 때, 뱅코우 부자가 나타난다. 뱅코우 부자의 대화를 보면 그 또한 권력에 대한 욕망을 품는 것으로 보인다. 뱅코우는 망상 때문에 잠을 자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레이디 맥베드가 침소에 술병을 놓으러 가는 동안 맥베드는 시선을 끌기 위해 뱅코우에게 접근한다. 뱅코우는 맥베드에게 꿈에 운명의 세 자매를 보았다고 말한다. 맥베드는 이 일에 대해 나중에 논의하자며 그가 잘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드디어 아무도 없는 성 안. 갈등하는 맥베드의 눈 앞에 단검이 반짝인다. 맥베드는 단검의 환상을 좇다가 덩컨의 침소로 들어간다. 맥베드가 덩컨을 살해하는 장면은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침소 앞에서도 덩컨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던 맥베드는 덩컨에게 들키고, 우발적으로 덩컨을 죽인다.


“더 이상 잠들지 못하리라.” 맥베드는 왕을 죽이고 자신이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잠은 욕망이나 무의식의 표출을 상징한다. 말들이 마굿간을 뛰쳐나가는 씬과 연결해보았을 때, 맥베드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함으로써 더 이상 잠들 수 없는 상태가 되버린다. 동시에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자들은 나를 이길 수 없다.”는 맥베스의 대사와 맞물려 그가 죽지 않고 끝까지 권력을 유지하고 싶음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덩컨을 죽인 이후로 영화에서는 맥베드가 잠드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잠이 드는 장면이 있지만, 플리언스가 자신의 왕좌를 빼앗는 백일몽을 꾸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잠은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레이디 맥베드 또한 잠을 잘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녀 또한 욕망을 현실에서 실현했기 때문에 몽유병에 걸린다. 그리고 몽유병에 걸린 그녀의 행동을 보았을 때 그녀의 욕망은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섯 개의 거울



맥베드의 잠과 현실은 분리될 수 없어진 지 오래다. 잠을 못 잤기 때문일까 그의 얼굴은 초췌하고 일그러져 보인다. “잠들 수 없는” 맥베드는 연회장에서 죽은 뱅코우의 유령을 본다. 꿈에서 이루어져야할 검열이 현실에 나타난 것이다. 뱅코우의 환영을 본 맥베드는 혹여 자신이 권력을 잡을 수 없게 될까봐 다시 마녀들을 찾아간다. 여기서 맥베드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자는 맥베드르르 해할 수 없다.”는 예언과 “버남 숲이 던시네인 언덕으로 올 때까지 맥베드는 안전하다.”는 예언을 받는다. 맥베드는 한 가지를 더 알고 싶어 한다. 뱅코우의 아들이 왕좌를 차지할 것인지 물어보자 환상은 그에게 여섯 개의 거울을 비춘다. 거울 속 어디에도 맥베드의 정면은 보이지 않는다. 첫번째 거울에서 맥베드의 모습이 흔들리듯 보인다. 한 거울에서 다른 거울로 이어지는 이 시퀀스는 현대에 만들었다고 믿을 정도로 세련된 카메라 워크를 보여준다.


세련된 시퀀스 속에 감독은 의도를 숨겨 놓았다. 라깡에 의하면 아이와 거울만 있는 그 현장은, 비록 책임 있는 행위자(어머니, 유모, 아버지 등)로 생각될 만한 존재가 없더라도 형성중인 아이의 자아에 거짓과 기만을 주입시킨다. 홀로 거울의 이미지를 보는 맥베드에게 예언은 거울처럼 그를 비춘다. 맥베드는 그 거울에 비친 이미지에 매혹되었다. 이것이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맥베드의 권력에 대한 욕망, 혹은 욕망의 투사체인 권력은 그로 하여금 마녀들의 예언을 믿게 만든다. 맥베드는 마녀들에게 여섯 개의 예언을 얻었다. 그리고 환영에서 그는 여섯 개의 거울을 본다. 첫번째 거울에서 맥베드의 모습은 흔들려보인다. 즉, 자신의 통제력이 흔들린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거울에 맥베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맥베드의 통제력, 즉 자기검열을 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는 표면만을 제공하는’ 거울을 본다. 마녀들은 예언을 통해 맥베드의 자아에 거짓과 기만을 주입했다는 것을 감독은 이 시퀀스에서 보여준다.


이후 맥베드는 통제불능의 상태가 된다. 이제 그는 환상을 보지도 백일몽을 꾸지도 않는다. 오히려 레이디 맥베드가 몽유병에 걸려 자신의 지난 날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레이디 맥베드의 잠은 현실의 도돌이표다. 지난 날 그녀가 했던 악행들이 잠 속으로 들어와 그녀를 현실에 있는 것처럼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얼굴도 점점 초췌해진다. 이를 견디지 못한 레이디 맥베드는 자살을 택하고 만다. 부인의 죽음에도 맥베드는 무감한 표정을 짓는다. 맥베드는 맥더프 그리고 맬컴이 자신의 성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감한다. 그는 갈 사람은 가버리라며 홀로 전쟁을 준비한다. 그의 곁에 남아있던 간신배들은 전쟁의 기운이 다가오자 다들 도망가버리고 만다. 그의 심복같았던 로스조차 맥베드를 떠난다.


여기서 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맥베드가 덩컨을 죽인 다음 날,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또한 뱅코우 부자를 암살할 때, 맥더프의 성에 사는 사람들을 몰살하기 전 로스는 현장에 있었다. 그 외에도 로스는 예상치 못한 시퀀스에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맥베드와 맥더프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다. 그는 권력에 대한 욕심도, 다른 욕망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왜 로스는 맥베드의 편에 있었던 것일까. 로스는 맥베드가 없는 곳에서 인물들의 정황을 알려주는 등 희곡의 내레이터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는 맥베드가 파멸하기 전까지 그의 곁에 남아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참수된 욕망



맥베드는 전투를 준비한다. 그는 한껏 자신감에 차 있다. 이 세상에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는 없으며, 숲이 던시네인 언덕으로 올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맥베드를 배신한다. 맬컴의 군대는 나뭇가지를 꺾어 던시네인으로 향한다. 파수꾼은 숲이 성으로 진격한다고 보고한다. 맥베드는 인상을 구긴다. 버냄 숲이 던시네인 쪽으로 진격하자 사람들은 제 살림살이를 챙겨 달아난다. 맥베드는 갈 사람은 가버리라며 홀로 전투를 준비한다. 그의 충복이 도망가는 길목을 막지만 곧 죽음을 당하고 만다. 레이디 맥베드의 시체만 덩그러니 놓인 성 안. 맬컴의 군대는 텅 빈 성을 보고 의아해 한다.


맬컴의 병사 몇 명을 처치한 맥베드는 성 밖으로 나온다. 자신이 곰과 같은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도망치기 보다는 싸우는 것을 택한다. 모두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자들이기 때문이다. 맥베드에게 맥더프는 결투를 신청한다. 맥베드와 맥더프가 소위 말해 개싸움을 하는 이 시퀀스는 왕족도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임을 보여준다. 처음 이 시퀀스를 보았을 때 왜 맬컴이 결투에 참여하지 않는지 의아했다. 분명 그의 아버지를 맥베드가 죽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어미의 배를 가르고 태어났다.” 맥더프의 대사에서 나는 해답을 찾았다. 앞서 잠은 태어나지 않은 상태,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잠을 통해 우리는 욕망을 표출한다. 즉, 맥더프의 대사는 그가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잠들지 ‘못’하는 맥베드와 달리 맥더프는 잠을 자지 ‘않는’다. 맥더프는 더 이상 꿈 속에서 충족할 소망이 없다. 맥더프의 가족은 맥베드에게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맥더프는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은 인물이며, 잠을 잘 수 없는 맥베드를 처단할 수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맥더프의 말을 들은 맥베드는 불안에 떨지만 다시 맥더프와 결투한다. 맥베드는 넘어지면서도 계속 왕관을 머리에 쓴다. 그가 욕망의 숙주가 된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고 애쓰는 맥베드의 모습은 애잔하기만 하다. 맥베드는 곧 맥더프의 손에 죽고 만다. 잠들지 못하는 맥베드가 드디어 잠들게 된 것이다. 맥베드의 욕망은 참수되고 욕망의 투사체는 맬컴에게로 돌아간다.


영화의 결말은 희곡과는 다르다. 그리고 희곡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가진다고 보았다. 영화의 마지막 씬은 도널배인이 마녀들을 만나는 장면이다. 서사에서 도널배인은 비중이 적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영화의 숨은 주인공이다. 그가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맬컴이 세자로 책봉되는 씬에서 도널배인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아마 맬컴이 세자가 되었다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즉 그도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맬컴이 영국으로 갈 때 도널배인은 아일랜드로 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희곡과는 달리 도널배인은 절름발이로 묘사된다. 신화에서 절름발이는 인간의 불완전한 독립을 상징한다. 도널배인이 마녀들을 만나면서 그의 운명 또한 맥베드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도널배인이 자신의 욕망에 눈을 떴기 때문에 희곡에서는 멀쩡하던 도널배인이 영화 속에서 절름발이로 묘사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을 마치며



영화의 첫 씬에 등장한 남성의 팔과 도널배인이 마녀들을 만나는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욕망은 보편적인 것이며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왜 살인을 하면서까지 권력을 쥐고 싶은 것일까? 인간은 욕망의 숙주인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악한 것일까?  권력이 무엇이길래 납득이 불가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권력이 욕망을 지피는 것일까 아니면 욕망 때문에 권력을 탐하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욕망이라는 것은 비단 권력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희곡에서는 왕으로 대표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돈이나 명예 혹은 성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는 이것들을 위해 남을 배신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선한 사람도 악해질 수 있다. 폴란스키의 <맥베드>는 선악의 구분은 모호하며 우리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권력과 욕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느 것이 선행되어 다른 것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거울을 보며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성숙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는 표면만을 제공하는 빛이 없는 거울'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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