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혐오포현에 대한 지침서와 입문서 - 말이 칼이 될 때 [도서]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 사이의 간극, 그리고 해결책
글 입력 2019.05.22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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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몇 년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는 바로 ‘혐오’다. 인터넷상에서 가장 큰 이슈들도 이러한 혐오에 관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말이 칼이 될 때> 또한 우리 사회의 혐오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 소수자, 정신질환 환자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와 그에 관련된 혐오표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 홍성수 교수는 2009년부터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법철학과 법사회학을 가르치고 연구했다. 2012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 제안 보고서>의 혐오표현 파트 집필에 참여하면서 혐오표현과 공식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표현의 자유, 국가인권기구, 법과 규제, 기업과 인권, 학생 인권, 여성 인권, 혐오표현 등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의견을 발언해오고 있다.
 
<말이 칼이 될 때>는 2018년 1월 5일 출판되었다. 출판 된 지 1년이 조금 넘은 책이다. 따라서 2018년 이전 기준으로 혐오표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2019년 5월인 지금 이 책을 읽게 된 나는 자연스레 그때의 시기와 지금을 비교하면서 읽게 되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라는 점에서 눈에 띌만한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기에 읽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혐오표현이 무엇인가?

‘여성혐오’. 간단히 줄여서 ‘여혐’이라고도 부르는 이 키워드는 한국에 살면서 조금이라도 최근 정치·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여성혐오’는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화제가 된 키워드였다.

‘여성혐오’와 같은 혐오표현에서 ‘혐오’는 우리가 흔히 쓰는 일상적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말이 칼이 될 때>에서 저자는 이를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라고 정의했다. 책을 읽을 때 전체적으로 돋보였던 부분인데, 저자는 어떠한 개념, 현상, 대안에 대해 언급할 때 다양한 예시를 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그래서 책의 도입부부터 마지막 장까지 마치 ‘혐오표현 입문서’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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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저자는 혐오표현소수자 또는 소수집단에 쓰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수자 집단의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화하고 있거나,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혐(남성혐오)’과 ‘개독(기독교를 비난하는 말)’과 같은 말은 다수자이기 때문에 혐오표현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수자들처럼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와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맥락이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내가 기독교인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골똘히 생각해보니 수긍할 수 있었다.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서 이미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비종교인을 제외하면 수치상으로도 다수에 속한다. 소수자로서 억압받고 있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게다가 소수자인 동성애자의 입장에선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반대하는 다수자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특정 지역이나 공동체 단위에서 남성들이나 기독교도가 소수자로서 억압받고 있다면, 남혐과 개독은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여초 회사에 유일하게 남성직원이 있다거나, 이슬람교 학교에 기독교 학생이 다니는 경우라면 성립이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읽고 혐오표현에서 소수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혐오표현은 왜 문제가 되나?

사람에게는 누구나 표현의 자유가 있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권리 중 첫 번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권리 주장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소수자가 자신의 권리를 말할 때 그것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동성애자가 퀴어 축제에 참가해 자신들을 인정해달라는 선언은 일종의 표현의 자유다. 그런데 만약 이성애자가 난 ‘동성애를 반대해’라고 말하고 그것이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과연 이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볼 수 있을까?

이처럼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은 끊임없이 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몇 년간 일베와 여혐 논쟁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쪽은 진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쪽은 보수였는데 일베의 등장으로 야당과 여당 입장이 서로 바뀐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혐오표현에 대한 문제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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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혐오의 피라미드’라는 그림을 소개한다. 순서는 편견→혐오표현→차별행위→증오범죄→집단학살 이다. ‘혐오의 피라미드’는 말 그대로 혐오의 단계적 해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정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편견을 공유하고, 모욕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혐오표현을 하고, 고용, 서비스, 교육 등의 영역에서 차별행위를 하고, 편견에 기초한 폭행, 협박, 테러 등의 증오범죄를 저지르고, 특정 집단을 의도적, 조직적으로 말살하는 집단학살에까지 이르는 과정이다.

여기서 증오범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겠다. 증오범죄란 장애,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성별, 성별 정체성 등에 근거한 적대 또는 편견이 동기가 된 범죄를 뜻한다. 간단히 말해 ‘편견의 동기’가 증오범죄의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증오범죄는 어떤 집단에 대한 편견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범죄 대상은 그 집단 구성원 중에서 선택된다. 그래서 증오범죄가 발생하면 그 집단 구성원들은 ‘나도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증오범죄는 이른바 ‘묻지 마 범죄’와는 다르다. 그냥 ‘아무나’가 아니라 편견 때문에 표적집단 구성원 중 누군가가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2016년 강남역에서 일어난 여성 살인사건 또한 여성증오범죄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범인의 진술이 세간에 공개된 뒤 많은 여성이 피해자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또한 자신이 살해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살해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여성들은 강남역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쪽지를 붙이기 시작했고, 인터넷에서도 그 열기는 계속됐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추모 쪽지의 한 문구는 증오범죄의 심각성과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이 함께 담긴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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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을 없애기 위해 해야 할 우리의 노력은?

이미 혐오표현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꽤 높은 수준에 다다랐고,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혐오표현을 처벌하거나 최소한 국가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일부 국가는 혐오표현을 형사범죄화하거나, 차별조장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주요 국가인 우리나라는 그에 비하면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가 차원의 조치가 여전히 부족하다. 차별금지법 등 관련 법안이 몇 번이나 국회에 통과될 뻔했지만 무산되었고, 사회 유력 인사들은 여전히 혐오표현을 지속적으로 내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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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인천퀴어문화축제


혐오표현에 대해 규제를 하게 되면, 결국 또다시 표현의 자유와 부딪치게 된다. 저자는 따라서 혐오표현에 대한 개입은 더 많은 표현이 혐오표현을 사라지게 할 수 있도록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는 원래 ‘소수자’의 권리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아래에서 설명할 형성적 규제다.

혐오표현의 규제 방법은 금지하는 규제와 형성적 규제가 있다. 얼핏 듣기엔 둘 다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둘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금지하는 규제는 혐오표현을 했을 시 처벌을 하는 규제다. 형사처벌을 하는 형사 규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민사 규제, 차별 구제, 방송심의를 거치는 행정 규제가 있다. 형성적 규제는 소수자가 더 수월하게 표현의 자유를 드러낼 수 있도록 지지하는 규제로 국가·법적 규제와 자율적 규제로 나뉜다. 국가·법적 규제는 교육, 홍보, 정책, 지원, 연구 등에서 혐오표현에 관한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는 방법이며, 자율적 규제는 스포츠·온라인·사기업·대학·시민단체에서의 차별을 반대하는 운동이나 차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행동을 말한다.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형성적 규제가 혐오표현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시민권연맹과 같은 시민사회 단체는 “더 적은 표현이 아니라 더 많은 표현이 최고의 복수”라고 말했다. 이 말은 혐오표현을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으로 혐오표현에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혐오 사회에서 공존하는 사회로

<말이 칼이 될 때>를 읽다 보면 <‘지금, 여기’ 한국의 혐오 논쟁>이라는 코너가 여러 번 나온다. 각 장의 주제는 전부 다르다. ‘맘충’과 노키즈존, 영화 <청년경찰>,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메갈리아의 미러링 등 혐오 논쟁이 일어났던 주제들을 하나씩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혐오 논쟁이 심각한 한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가져와 전문가의 시선으로 현상과 원인을 분석한 부분이 좋았다.

특히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 엄마에 대한 혐오표현은 전 세계 혐오표현 연구 및 보고 중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클래식 콘서트처럼 본래의 특수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대중적인 음식적이나 카페에서 노키즈존을 선언하는 것만이 과연 해결책일까, 라는 의견 또한 공감되었다. 노키즈존이 많아지고 ‘맘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아이와 아이 엄마에 대한 차별은 계속해서 재생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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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 부정에 관련된 혐오표현은 이해가 좀 어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내가 기존에 혐오표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의견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사실 혐오표현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유형, 혐오표현이 불러일으키는 해악 등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얻을 게 많은 책이다.

대개 이렇게 사회 문제에 관한 책들은 문제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해결책이 빈약한 경우가 많은데, 다방면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가장 돋보였다. 공존을 위한다는 것이 사실 가장 이상적이지만 가장 어렵기 마련이다. 그래도 우리는 공존을 위해 힘써야 한다. 나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상대방의 표현의 자유 또한 존중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책의 제목처럼 말이 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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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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