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앎을 거부한 대가 - 타락한 저항 [도서]

반지성주의의 민낯
글 입력 2019.05.2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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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3년이 지났다.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된 것도 벌써 3년 전 일이다. 그 3년 동안에도 참 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고, 폭행을 당했다. 여성들에게 불법 약물을 투여하고 성폭행을 일삼았던 클럽이 뉴스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성폭행보다 마약에,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여성보다 남성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 논란은 조금씩 잦아들어 이제는 형체를 찾기도 힘들어 보인다. 해결되었다보다는 소멸했다, 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표지에 한 번 놀라고 내지에 두 번 놀랐다. 표지가 너무 무서운 게 아닌가 싶어 선뜻 펼치기가 힘들었는데, 펼치고 나니 모든 글씨가 어두운 보라색이라 또 한 번 놀랐다. 무서운 표지와 보라색 글씨, 어딘가 진입 장벽이 조금 높아 보이는 책이었지만,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러니 누군가 이 책 표지를 보고 “아, 너무 어려워 보이는데...” 내지는 “좀 무서운데...” 라는 생각으로 독서를 망설인다면 일단 몇 장만이라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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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와 혐오의 재생산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개념은 ‘기만적 자유’에 관한 의문을 증폭시키기에 여전히 오늘날의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데 유용하다. 마르쿠제에 따르면 “일차원적 사유는 정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대량 정보의 조달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조장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여가와 놀이가 일상에 들어왔지만, 소비로 비판 욕구를 없애버리는 체제가 일차원적 인간을 양성한다. 이 ‘기만적 자유’ 속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사유의 습관’이 점차 낯설어진다.

- 13쪽


사유가 제거된 사회에는 혐오가 남는다.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한 조롱,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웃음이 사회의 건강성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상에서 진지충, 예민충, 선비충, 이런 신조어가 유행했다. 사회에서 사유를 얼마나 비웃음거리로 전락시키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불편한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거세하는 것, 점차 우리 사회는 조금 비뚤어진 방향으로 문제를 소멸시키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반지성주의는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다. 혐오 발화자들은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을 모르기 위해 애를 쓴다. 모르지만 규정하려 한다.


- 20쪽



모를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굳이 관심 두지 않아도 되는 것도 권력이다. 강남역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피해자를 보고 여성들은 공포와 허탈함을 느꼈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면 안 된다고 경계할 여력은 없었다. 가해는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피해는 나의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밤중 자신의 뒤를 잰걸음으로 좇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도 떨지 않을 수 있는 것, 여성혐오의 단면을 보고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이 모든 게 21세기 가부장제의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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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술과 정치, 그리고 사회면에서 반지성주의와 혐오를 통찰한다. 사실 주제만 듣고는 너무 어렵지 않나, 싶은 무게감이다. 그러나 ‘타락한 저항’에서는 어려운 언어로 현재의 한국을 분석하기보다 직관적으로 혐오 실태를 조명한다. 지성을 거부한 대가가 혐오의 재생산이라는 것,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책은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며 혐오사회의 본질을 고발한다.



“너 메갈이지?”


메갈리아와 워마드가 우리나라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대표해서도 안 된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다. 제아무리 예수에 버금가는 도덕성을 구비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페미니즘의 대표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 페미니즘은 개별 여성들로 이루어진 인권 운동의 맥락이기에 모든 페미니스트들의 대표나 대변인이 존재할 수 없다.

저명한 인권 운동가, 즉 많이 알려진 페미니스트는 존재할 수 있어도 그가 한 시대의 페미니즘을 규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같다. 페미니즘의 성격이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 의해 정의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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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모든 페미니스트들에게 “너 메갈이지?”라는 딱지를 부여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맥락이 검열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상당히 유해하다. ‘타락한 저항’에서는 과거의 ‘빨갱이’와 현재의 ‘메갈’, ‘꼴페미’ 속에 숨은 텍스트를 파헤친다. 과거에는 이분법적으로 빨갱이와 비(非)빨갱이를 나눴다면 현재는 ‘꼴페미’와 ‘비(非)꼴페미’로 나뉜다. 빨갱이나 꼴페미나, 그 워딩 한 번 참 가볍다. 지성을 거부한 사람들의 사전이 무거울 리 없지만 말이다.


‘진짜(진정한)’와 ‘모든’의 함정에 빠지기 시작하면 누구도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다’, ‘모든 폭력은 나쁘다’, ‘모든 혐오 발언은 나쁘다’ 등으로 ‘메갈’을 비난 혹은 비판하란 쉽다. (...) “페미니즘은 어떠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는 어떠해야 한다와 같은 잣대를 만들어놓고 그녀들에게 도덕적 순수성과 논리적 완결성을 요구하는 일이야말로 버틀러가 말한 ‘윤리적 폭력’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130쪽



‘진짜’ 페미니스트는 괜찮지만 메갈리아처럼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는 남성혐오를 조장하므로 옳지 않다, 와 같은 의견도 참 많다. 반지성주의의 말로가 바로 게으른 중립주의가 아닐까 싶다. 남성혐오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여성혐오를 외면해야 했을까. 결국 또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여성혐오를 마주하지 않으려는 발버둥, 어떻게든 자신의 혐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연대하고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니지만...”이라는 서두로 자신을 보호하기보다 당당하게 페미니즘을 외치는 여성들이 늘었다. 사실 나도 이들 중 하나다. 과거의 난 ‘페미니스트까진 아닌, 그렇지만 성차별에는 반대하고 유리천장은 깨져야 마땅하다 생각하는’ 여성이었다. 참으로 모순된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에 난 페미니즘을 알지 못했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대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알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우리는 더 잘, 그리고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지는 죄가 아니지만 무지로 인한 행동은 죄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알지 못한 것은 죄가 아니나, 알지 않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혐오 시대의 대안은 ‘지성’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옳은 것과 쉬운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가 눈에 들어왔다. 이는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 나오는 문장이다. 편함이 옳음을 압도하는 시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 63쪽



도서명: 타락한 저항 - 지배하는 '피해자'들, 우리 안의 반지성주의
지은이: 이라영
2019년 4월 2일 초판 1쇄 발행
140*210mm (무선)|200쪽|값 13,000원
ISBN 978-89-546-5572-9  03330


책의 구성

들어가며: 진지충의 탄생
1장 블랙리스트와 저항
2장 <나꼼수>와 무학의 통찰
3장 메갈리아: 침묵당하기에서 교란시키기로
나오며: 생각하는 인간에 대하여


지은이: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모든 종류의 예술을 사랑한다. 미술과 예술경영을 공부한 후 문화기획과 문화교육 분야에서 일했다. 개별 작품보다 작품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예술과 정치 관련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여자 사람, 사람』(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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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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