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까지만 해도, 현존하는 작가 작품 중 최고가의 낙찰가를 받은 작가다. 친구가 전시회를 추천한 이후 관심 갖게 됐는데, 1019억이라는 낙찰가를 들으며 놀랐었다. 얼마나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으면 그런 가격에 낙찰받았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번 전시회는 아쉽게도 해당 작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최고가를 낙찰받은 화가라면 그에 준하는 작품들이 있을 게 분명하기에 기대했다.
전시회는 아시아 최대 개인전으로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기 - 로스앤젤레스 - 자연주의를 향하여 - 푸른 기타 - 움직이는 초점 - 추상- 호크니가 바라본 세상' 순으로 2층과 3층으로 나뉘어 구성되어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1950년대부터 60여 년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다. 더불어 석판, 아크릴, 폴라로이드 필름, 포토 카피, 팩스, 아이패드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했다. 워낙 오랜 시간 동안 작업하고 시도한 덕분일까, 이번 전시회에서 총 133개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세분화된 코너도 7개로 많았다.
White Lines Dancing in Printing Ink
©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 Tate, London 2019
그런 탓에 코너가 바뀔수록 한 작가의 뚜렷한 화풍을 찾기 어려웠다. 그 말은 곧, 호크니가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녔다는 말이다. 이전의 호크니가 생각나지 않는다. 새로운 호크니가 등장하고 새로운 차원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창작한다. 평생 한가지 화풍, 사조에 집착하는 화가들이 널렸는데 호크니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하나의 사조나 소재, 형식 등에 집중하는 노력과 시간이 작품의 완성도와 비례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높이 사는 건, 그 데이비드 호크니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왔던 그의 노력, 사유, 방황이다.
실제로 존을 넘어가면서, 각각의 작가가 바통 터치하는듯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매체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창작에 몰두하니, 확실히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 원래 작가의 철학이 작품에 드러나는 건 필연적이다. 호크니의 60여 년 작업 기간 동안의 방황과 생각 철학 등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작품 하나하나가 재밌어졌다. 여기저기 장소나 매체, 형식, 성 지향성, 심리, 시기, 주제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에 담아냈고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건 전시의 또 다른 재미였다.
1964년부터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호크니는 뜨거운 햇빛과 자유로움을 발산하는 로스앤젤레스에 완전히 매료됐다. 일정 기간 로스앤젤레스에 대해 그렸고, 피카소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2차원 공간 평면에서 입체주의, 회화 공간, 3차원 공간을 재현하기도 했다.

Two Boys Aged 23 or 24
©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 Tate, London 2019
게 중 눈에 들어왔던 건, 1966년 창작한 삽화다. 호크니는 1966년에 그리스 시인 콘스탄틴 카바피 시에서 영감을 받는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여행한 후 많은 드로잉을 제작한다. 카바피 글의 명확함과 단순성에 어울리게 간결한 선으로 묘사되었으며, 이국적 중동 분위기를 배경으로 두 남성 간의 만남과 헤어짐에서 오는 감정을 표현했다. 베이루트라는 이국적인 장소와 콘스탄틴 카바피의 시, 그리고 자신의 성 지향성이 결합한 게 《카바피의 시 14편을 위한 삽화》(1966) 시리즈다. 이렇듯 작품 하나하나가 호크니의 인생철학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전시회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지 못했다.

Man in Shower in Beverly Hills
©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 Tate, London 2019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이 언급돼서 그런데, 많은 곳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를 홍보할 때, 게이 청각장애 화가라고 으레 홍보한다. 나는 작가의 성 지향성을 갖고 홍보하는 걸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싫어한다. 작가가 성소수자임을 홍보하는 걸 볼 때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상한 홍보보단 작품으로 보여줘야 하는 게 전시라고 생각한다. 그가 유명해진 것도 그의 작품 때문이지, 성소수자에 청각장애인이라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가라는 스테레오 타입(예술적 예민함, 광기, 이상함)과 결부시킨다는 게 제일 별로라고 생각한다. 예술가의 편견과 고정관념도 별론데, 그런 스테레오 타입을 성 지향성과 청각장애와 연결한달까? 유독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사람이 있어도 개개인의 특성이다. 게다가 두드러지니까 더 잘 보이는 것일 뿐, 집단과 연결시키지 말아야 한다. 집단의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고착화시킨다고 본다.
데이비드 호크니를 예로 들어보면, 그는 40살 즈음에 청력을 잃었으며 동성애자다. 전시 홍보 문구 같은 데서 굳이 근데 저렇게 삽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의 작품을 주로 얘기해야 하는데 호크니를 나타내는 수식어가 많지 않을까? 설사 그 정도 수식어도 없는 화가여도 만들어내야 하는 게 홍보고 카피라이트 아닐까? 더 이상 이런 얘기는 진부하다.
물론 당장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니까 사용하는 걸 거다. 청각 장애인이면서도 역경을 딛고 일어선 천재 화가 취급을 한다는 게 짜증 난다. 물론 작가의 위대함, 열정, 천재성 등을 추켜올리려고 얘기하겠지만 그럼 다른 동성애자와 장애인들 심리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 아닐까? 무뜬금 남발이다. 그들을 폄하하고 암묵적 하자 취급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 성적 지향성과 장애가 시련이고 하자이며 역경으로 만들까?
굳이 이런 내용을 삽입했냐면 데이비드 호크니를 서치하던 중에 비하하고 폄하하는 글이나, 어그로성의 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 화가의 흰 머리채를 잡는다.
이번 전시가 특히 좋았던 게 그런 자극적 문구를 남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초청해서 개최하는 마당에 그런 문구를 쓰지 않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청각장애와 성 지향성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두고 그가 정체성을 주제화한 작품 등에만 담백하고 건조하게 해설에 옮겼다. 자극적이거나 어그로성 문구 없이 깔끔했다.

서치하다가 인물을 잘 그리지 않는다는 것, 특히 로스앤젤레스 수영장에 남성의 나체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사실 합법적으로 남성을 지켜보기 위해서 그렸다는, 흥미 위주의 낭설이 있다. 작품 해석에 불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전시 측에서 해설에 언급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 소문 없이 작품만으로 가장 유명한 수영장 시리즈다. 시리즈 중에 최고 낙찰가도 나왔다. 당연히 홍보나 카피 라이트 문구에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설명은 담백했고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자로 대서 그은 듯한 선 표현, 단순 명암, 평면성. 얼핏 밋밋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이빙 보드를 삽입함으로써 관람자들이 직접 수영장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오브젝트 하나로 몰입감을 주고 바로 앞에 '첨벙'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첨벙'을 살짝 가리며 또한 누가 다이빙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호기심을 유발한다.
수면은 별 표현 없다. 단색으로 채색됐다. 호크니가 그렸던 다른 '수영장' 시리즈의 물그물이 없다. 선 표현, 명암, 평면성에 매우 정적이며 인공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그런 배경은 유일하게 움직이는 '첨벙'을 오히려 이질적으로 보이게 한다. 당연히 시선은 집중된다.
호크니는 캔버스 전체를 활용하지 않고 여백을 남겨두었다. 작품을 한계 짓지 않으려고 하기 위함이다. 이런 시도는 다른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그중 제일 두드러진 작품은 날씨 시리즈의 '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