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젊은 비르투오소들의 향연, 김재영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

글 입력 2019.05.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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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김재영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_포스터.jpg
 
 
5월 17일 금요일. 피곤한 5월을 버티게 했던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바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있었던 김재영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이 막을 올리는 날이었던 것이다. 바쁘게 흘러갔던 한 주간의 끝인지라 몸은 피곤한 상태로 예당을 향했지만 마음만은 설렘을 금할 길이 없었다. 오늘의 무대는 평상시에 자주 들을 수 없는 레퍼토리들을, 믿음직한 연주자들의 손끝으로 들을 수 있는 천재일우였기 때문이다.

공연장에 여유있게 도착하여 음악당에 들어왔더니 입구 쪽인 IBK챔버홀 앞 로비도 관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이번 김재영과 문지영의 무대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 고양감을 안고 평소보다도 일찍 공연장에 들어섰다. 기대로 부푼 마음을 조금 가다듬고, 무대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고 싶었다.




Program

모리스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가단조 '유작 소나타'

카롤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라단조, 작품번호9
I. Allegro moderato, patetico
II. Andantino tranquillo e dolce
III. Finale: Allegro molto, quasi presto

Intermission

에르네스트 블로흐, 발셈 모음곡(세 개의 유대시)
I. Vidui (Contrition)
II. Nigun (Improvisation)
III. Samchas Torah (Rejoicing)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 내림마장조, 작품번호18
I. Allegro, ma non troppo
II. Improvisation: Andante cantabile
III. Finale: Andante - Allegro




문지영_main image_.jpg
피아니스트 문지영


김재영과 문지영은 이번 무대의 시작을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단조로 맞이했다. 라벨은 이 작품을 22세에 작곡했으나 이 작품이 출판된 것은 사후 30년 정도가 지난 후라고 한다. 즉 이 작품이 단일악장인 것은 라벨이 말년에 이 작품을 작곡하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이 아니라 미완성 곡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미완성 작품인데도 한 악장에 담겨있는 라벨의 감성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실험적이다.

김재영의 다소 멜랑꼴리하고 부드러운 소리에 문지영의 몽환적인 터치가 조심스럽게 얹어지기 시작하는 그 첫 순간, 내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소리가 홀을 가득 채우는 느낌에 가슴이 벅찼다. 올해에 갔던 바이올린 피아노 듀오 리사이틀 중에서 아쉬움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던 지라 은연중에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김재영의 소리에 단번에 마음이 놓였다. 믿고 들어도 되겠다는 확신에 나도 이제 긴장을 풀고 소리를 좇기 시작했다.

오묘한 음의 전개와 부드럽게 소리를 훑어가는 김재영과 문지영의 움직임에 마치 물의 유희에서 느껴지는 음의 향연을 함께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격정이 이는 순간에는 또 김재영과 문지영이 강하게 맞부딪치는데 그 강대강의 만남이 아주 조화로웠다. 강렬한 순간조차 과하지 않게, 과잉되지 않게 조절한 그 완급이 새삼 피부로 와닿았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피아노가 이어지다가 멈추고 바이올린에게 자연스레 넘겨야 하는 대목들이 꽤 있어서 피아니스트 문지영에게는 매순간이 긴장되었을 것이다. 이어가다가 소리를 끊어내야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잘 전달해 주었다. 마지막 타건은 생각보다 좀 강하게 나온 것 같지만 아주 오묘한 선율과 안정감 있는 형식 그리고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 김재영과 문지영의 완벽한 조합을 보는 첫 곡이었다.

*

두 번째 곡을 하러 김재영과 문지영이 무대에 나설 때, 아마도 그들은 무대 문이 열리기 전에 나누던 대화를 이어가며 무대에 나선 듯했다. 웃으며 서로를 보더니 살풋 고개를 흔드는 문지영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나온 두 사람은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하자마자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좀전의 웃음은 종적을 감추고 엄청난 열정이 순식간에 홀을 뒤덮었다. 그 격정적인 선율을 주고 받으면서도 김재영의 소리는 힘과 부드러움의 조화가 절묘하게 녹아 있었다. 그 강렬함과 부드러움 속에서 마치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 조용하게 1악장이 마무리되었다.

김재영의 서정적인 선율로 시작한 2악장은 1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잔잔하면서도 시마노프스키의 서정성이 가득한 김재영의 소리가 객석을 압도하고, 문지영의 소리가 부드럽게 이를 감싸는 2악장의 도입부는 정말 손을 꽉 쥐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리아가 지속될 것 같다가 김재영의 피치카토와 함께 맞는 스케르초는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익살스럽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호흡 끝에 다시금 열정적인 선율이 이어졌다. 그리고 김재영과 문지영은 마치 1악장에서처럼, 아주 조용하게 끝을 맺었다.

3악장에서는 활기차고 리듬감 있는 문지영의 터치와 함께 김재영의 소리가 관능미를 더하기 시작했다. 아주 아름답고도 강렬한 마무리였다. 폴란드에서 쇼팽을 뒤잇는 음악가로 손꼽히는 카롤 시마노프스키가 얼마나 후기 낭만주의에 매료되어 있었는지를, 김재영과 문지영은 열정적인 연주로 전달해주었다.


JaeyoungKim_ⓒTaeuk Kang.jpg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Taeuk Kang


2부의 첫 곡은 블로흐의 발셈 모음곡이었다. 이번 무대의 작품들이 전부 익히 연주되는 곡들이 아니고, 각각의 독특한 매력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 작품은 정말 독보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무대를 감상하기 전까지 이자크 펄만의 연주를 들어보며 이 작품이 가진 그 놀라운 깊이에 매번 감탄했는데 드디어 이 작품을 실제로 듣게 되어 설렜다.

단언컨대 이번 듀오 리사이틀 무대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신을 갈구하는 듯한 김재영의 바이올린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1악장의 시작은 마치 참회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하는 듯했다. 김재영은 아주 사색적인 소리를 들려주면서 읊조리며 기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바이올린으로 보여주었다. 여기에 문지영은 아주 부드럽고 연하게, 그리고 점차 강렬하게 함께 소리를 더해갔다. 민속적인 음의 전개도 함께 있어 회개하는 그 심정의 통렬함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그렇게 조용했다 점차 고조되어 가는 1악장의 기도에서부터, 김재영의 바이올린은 점차 뜨거운 회개로 나아갔다. 그리고 니군에서부터는 신의 긍휼을 구하며 눈물어린 참회를 드리는 듯 뜨거운 선율이 이어졌다. 문지영의 도입부와 함께 이어지는 김재영의 선율은 이제 회개를 넘어 구원을 구하는 감정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이국적이고도 비장한 그 선율 속에서 신의 얼굴을 구하는 감정은 점차 뜨겁고 열정적인 간구로 무르익기 시작했다. 그리고 니군의 말미에 이르러 어느덧 신의 자비가 임하는 순간이 도래했다. 운명같이 내리꽂히는 문지영의 타건, 그리고 부드럽고도 이국적인 소리로 이를 감싸는 김재영의 선율이 그 임재가 얼마나 충만한 것인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3악장에 이르러 그 슬픔을 노래로 바꾼 신의 은총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속량함을 입은 자의 자유함과 그 기쁨의 찬양이 김재영의 손끝에서 선명한 그림처럼 그려졌다. 조금은 익살스러운 듯하면서도 극에 달한 그 감정 속에서 김재영과 문지영의 연주도 자유 그 자체로 와닿았다. 그 불같이 뜨거운 기쁨과 함께 블로흐가 끝났다. 정말 진솔한 연주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재영과 문지영의 연주는 오로지 절대자만을 바라는 참회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연주되었다. 아주 부드러운 문지영의 소리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도입부부터 안정감이 느껴진다. 고전적인 형식의 틀은 나름대로 갖추고 있으면서도 다소 실험적인 음과 전개가 있었던 이전 곡들에 비해 시작은 마치 고전음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고전적인 틀과 도입부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면은 완전히 후기 낭만의 풍취가 가득하다. 김재영과 문지영은 1악장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진지한 내면을 함께 짚어나갔다. 고전 음악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라 느끼던, 바그너 음악을 접하기 전 슈트라우스의 그 진지한 마음이 낭만주의적 시상과 만나 펼쳐지는 아주 아름다운 1악장이었다.

2악장에서는 서정적이고도 생기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1악장에서 느껴지던 그 진지한 정서를 부드럽게 승화시키는 느낌이 들었는데 김재영의 그 부드러운 소리가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문지영의 둥글둥글한 피아노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선율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다다랐다. 아름다운 노래가 가득한 이 2악장만으로도 이 곡이 왜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즉흥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면서도 김재영은 문지영과 아주 부드러운 대화를 주고받는 듯했다. 두 연주자는 대화 방식과 음악에 대한 접근 방식이 잘 맞는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2악장에서 그들이 음악적으로 주고 받는 대화를 보니 그게 어떤 의미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대화 끝에서, 다시금 비르투오소적인 면이 한껏 뿜어져나오는 김재영과 문지영의 3악장을 만날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격정과 함께 부던히 음을 쌓아가는 김재영과 문지영의 모습에 내 감정도 함께 고조되어갔다. 엔딩 직전에, 날카롭게 스며드는 김재영의 아름다운 화음과 함꼐 문지영의 손끝이 어우러지며 이번 리사이틀의 대미가 장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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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고 뜨겁고 그리고 아름다웠던 본 무대가 끝나고, 김재영과 문지영은 두 곡의 앵콜곡을 연주했다. 라벨의 하바네라와 드뷔시의 달빛이었다. 절제되었지만 아주 우아하고 품위있는 연주를 보여준 김재영과 문지영에게, 객석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그러나 그 큰 기대를 넘어선다면, 그 이후로는 끝없는 신뢰만이 남을 것이다. 이번 김재영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은 젊은 두 비르투오소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게 되는 무대였다. 김재영과 문지영의 라벨은 형식 속에서 특유의 오묘한 부유감이 도드라졌고, 시마노프스키는 후가 낭만의 정취와 현대음악의 기운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그들의 블로흐는 유대교적 색채로 인한 독보적인 분위기와 신실함이 여실히 드러났으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교향시 대가의 젊은 날이 묻어난 진지한 사색들이 후기 낭만의 정취와 함께 아름답게 피어났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들은 선곡에서부터 객석의 견지를 넓히기 위한 연주자들의 세심한 안배가 느껴졌다. 게다가 피아니스트 문지영도 이번에 이 작품들을 처음 연주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연주자와 객석의 시야가 함께 넓어지며 더 깊은 세계를 공유하는 순간에 나도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벅찰 따름이다.


각기 너무나 다른 정서들을 가지고 있는 실험적인 작품들의 결합이 김재영과 문지영의 아름다운 연주를 만나 완벽한 조화를 이룬 무대였다. 젊은 비르투오소들이 베푼, 이 뜨거운 금요일의 향연에 무엇으로 화답할 수 있을까. 그저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피아니스트 문지영 두 사람의 또 다른 레퍼토리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릴 따름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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