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신을 긍정한다는 것 - 헤드윅 [영화]

글 입력 2019.04.1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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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헤드윅은 장벽처럼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동과 서, 속박과 자유, 남자와 여자, 정상과 밑바닥의 중간에 있습니다. 그를 부술 테면 부숴 보세요.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만 기억해!"



단연코 내 평생에 가장 여러 번 반복해서 본 작품은 <헤드윅>이다. 대사와 장면을 외울 정도로 이토록 반복해서 보는 이유는 감상할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특유의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위트있게 풀어나가지만 듣는 이들은 쉽게 따라 웃을 수 없는 그의 인생 이야기에는 분노와 슬픔이 짙게 배어 있고, 그러한 와중에도 자신의 반쪽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이 한 켠에 존재한다. 헤드윅의 복잡하게 꼬인 인생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받아왔는지가 보인다.

헤드윅은 그의 인생을 노래한다. <헤드윅>은 본래 뮤지컬 작품이라 영화화된 본 작품에도 뮤지컬적인 색채가 짙게 배어 있는데, 음악을 통해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을 대변하는 것도 그런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가령 'Angry Inch'에서는 성전환 수술에서 실패한 과거를, 'The Origin of Love'에서는 본인이 믿는 사랑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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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g In A Box'는 어두움에서 살짝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흥겨운 멜로디로 승화시킨다. 밴드의 멤버들이 트레일러로 찾아와 헤드윅에게 이런 저런 분장을 해 주는 장면에서는 아기자기한 영상미가 돋보인다. 록 음악은 기본적으로 흥겹게 즐기면서 고민을 털어내는 장르인 만큼 이 넘버도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이처럼 밴드 '앵그리 인치'와 함께 연주하는 헤드윅의 음악에서는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분노이든 슬픔이든 헤드윅은 애써 절제하지 않고 감정을 토해낸다. 다듬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감정은 무대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이입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넘버들의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과거 회상 부분은 원래 뮤지컬에서는 헤드윅 본인의 독백으로 대신하는 장면들이다. 극중에 등장하는 토미라는 인물 역시 뮤지컬에서는 헤드윅이 1인 2역으로 연기하지만, 영화에서는 토미 역할의 배우가 따로 존재한다. 그런 만큼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에 대한 설명은 영화가 더 친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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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은 남들이 보기엔 의아할 정도로 사랑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이기에 영원하며, 그런 사랑을 나눌 상대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본래 인간은 두 몸이 붙어 있는 존재였으나 신들의 분노로 갈라서게 되었고 자신은 그 반쪽을 발견해야 한다는 가사가 어쩌면 헤드윅 자체를 대변하는 메시지라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을 배신한 데다가 곡을 표절해 스타가 된 토미에게 분노하면서도 막상 그를 마주치자 금세 눈 녹듯 녹아버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상처를 받아가면서라도 자신의 사랑을 찾고자 하는 데에는 아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종의 결핍이 아니었을까?

토미와 완전히 정리한 후, 자신이 토미에게 들려줬던 곡인 'Wicked Little Town'의 토미 버전을 듣는 헤드윅의 모습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엿보인다. 허탈감과 슬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받는 듯한 느낌.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사랑을 찾으라는 토미의 다소 냉정한 충고를 듣고서 헤드윅이 마지막으로 부르는 노래는 'Midnight Radio'이다. 이 곡에서 그는 이츠학을 놓아주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인정한다.

가발이나 화장을 씻어내린 그의 몸에 새겨져 있던, 자신의 반쪽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담긴 타투는 지워지고 대신 한 사람의 얼굴로 다시 새겨진다. 알몸 상태로 비틀비틀 걸어나가는 엔딩을 지켜볼 때면 언제나 뭉클한 감정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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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은 나온지 20여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계속해서 사랑받는 작품이다. 이유는 아마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젠더와 같은 사회적 이슈가 지금 와서 더 강하게 어필하게 때문도 있을 것이고, 넘버 자체가 가진 영속적인 매력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는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대중들에게 가슴으로 충분히 와닿도록 하기는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많은 말보다는 음악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작품이 가장 좋은 사례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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