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완벽하게 완벽하지 않은, 와비사비

불완전함 속 와비사비
글 입력 2019.04.12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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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자기개발서? 에세이?



나는 자기개발서나 에세이 종류의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다(사실 독서 자체에 흥미가 없다).


자기개발서를 싫어하는데 딱히 나만의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왜, 어른들 말 듣기 싫어하는 반항적인 20대 대학생, '아프리카 청춘이다'를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하는 대학생. 딱 그 정도다.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그냐 시답지 않은 글귀들로 '너 우울하지? 내가 달래줄게.'라며 이미 복구 불가능한 마음을 구해주는 척, 위해주는 척하며 심신이 지친 사람들의 지갑을 열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쓰고 나니 정말 부정적이긴 하다).


그런데.. 그런 나도 가끔씩은 아무 생각 없이 힐링할 수 있는 책을 원하고 있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4학년이 되니, 심적으로 다가오는 부담감이 정말 심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힐링, 힐링 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도 손안에 들어오는 무언가로 힐링하고 싶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채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는 글귀 하나만 보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4년의 대학생활 동안 무슨 종류의 책을 제일 많이 읽었니. 라고 물으면 경영학 전공서적이여. 라고 칼답할 수 있는 내가, 책을 신청했다. 그것도 에세이 종류로 보이는 책을.




02 About 와비사비



사실 나는 와비사비라는 단어를 작년 여름 활동했던 아티스트 크루(예술 동아리 같은 개념)을 통해 알았다. 크루에서 몇 년 전 '와비사비룸'이라는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데 공간을 제공해주고, 디자인 소품 등을 준비해주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데 쓰였던 그 공간(=작업실)은 정말 자유분방했고 거칠었기 때문에, '와비사비'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꽤나 강했다. '왔다 갔다' 또는 '와사비' 같은 정신없는 느낌?


근데, 아트인사이트가 보내주는 서평도 서평이지만, 너무나 클린-조용한 책표지부터, 만지기만 해도 힐링 되는 특이한 질감의 종이까지, 내가 생각했던 '와비사비' 이미지와는 정말 달랐다. 호기심이 더해졌다. 당장 첫 장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했다.




03 직업병 아니고 전공병 (feat. 경영학)



좀 쓸데없는 이야기긴 한데, '2장. 단순하고 아름답게'를 읽으면서 문득 저번 학기 윤리경영 시간에 배웠던 광고 옹호론이 생각났다.


광고 옹호론이 뭐냐면,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는 이미 거의 완료되었고, 그것을 제외한 부차적인 소비(예를 들면 블루투스 이어폰)는 최소한 또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광고를 통해 공격적으로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구매 욕구를 촉진시켜 제품을 구매하도록 만들고, 시장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광고로 하여금 사람들은 필요 없는 물건까지 사게 만들고, 그것이 경쟁 촉진의 효과를 낸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 와비사비에서는 단순, 여백, 깨끗, 고요한 분위기, 모든 공간을 물건으로 꽉꽉 채우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와비사비에서는 있는 것도 버리는 상황인데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광고 옹호론자들이 와비사비를 만나면 거품을 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04 불완전함 속 와비사비



앞서 말했듯 내가 자기개발서를 대하는 입장은 '네가 날 개발시킨다고? 해봐 어디.' 이기 때문에 상당히 회의적이다.


이 책 또한 그런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완벽히 피해 갈 순 없었다. 생각을 고쳐먹게 할 여운을 주진 않았지만, 한 장 한 장이 꽤 두꺼운 종이여서 빠르게 읽히는 게 기분이 좋기도 해고, 시험기간이 시작하기 전 할 것도 없던 나를 가볍게 달래기엔 충분했다.


이 책이 나를 달래야 할 이유(내가 힐링 받아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나는 요즘 많이 불안하다. 복수 전공, 주전공, 대외활동, 자격증 등등을 열심히 해오다가, 갈 길을 잃었다. 미술을 위한 경영학은 이미 주객이 전도되어 미술을 집어삼켰고, 10년 가까이 내 안에서 버티고 있던 미술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떠나가고 있다. 설렘으로 가득 채워졌던 가슴에서 겨우 남은 열정이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려 치면, 나는 온몸으로 거부했다. '저리 가!!! 이 돈도 안되는 미술.'


2.

사실 며칠 전부터 수능을 다시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악) 내 기준 23살이라는 어마 무시한 나이를 먹어버렸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아왔다. 나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고 반성하고, 정의하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지쳐버려 그냥 미술을 좋아한다고 믿어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23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크게 요동친 것은 며칠 되지 않았다. 나는 경영학이 너무 좋은데, 이제 학부에서 경영학을 배울 시간은 1년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웠다. 복수전공생 신분으로 54학점을 들은 것도 고생했다 생각이 들지만, 처음부터 경영학을 전공했으면 전공지식이 더 풍부하기도 했고,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일이 펼쳐지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 강의, 교수님도 만족스럽지만, 더 좋은, 소위 명문대에서 경영학 수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난생처음 들었다. 내 꿈을 더 넓게 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약 2주간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다 이 책을 접했다. 이 책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과거 받아들이기>


과거에 사로잡혀 있으면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자신을 자꾸만 과거로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과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놓아주자.


어떤 감정에 압도당해 있을 때, 현재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오직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다. 가능성을 닫아두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나의 능력을 정확히 인지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불가능한 일을 기대하지 않고 내 자신을 잠시 쉬게 할 수 있다.



나를 저격하는 것 같았다.


맞는 말이다. 나는 감정에 압도당한 게 맞다. 막연한 취업 걱정, 진로 걱정과 함께 그냥 다시 새내기를 하고 싶은 마음. 경영학은 대학원에 가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데, 왠지 그 나이에도 다시 대학을 들어간다면 뭔가 멋있고, 뜻이 있는 것 같고, 그에 따라 신세계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어이없는 마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수험생 커뮤니티에도 '저 XX 살인데 준비할 수 있을까요?' 또는 '이 기업으로 이직하고 싶은데 무리일까요?' 이런 글이 올라오면, 댓글은 대게 '할 수 있어요. 늦지 않았어요', '도전하는 모습이 멋있어요' 등이다. (가끔 현실적인 댓글도 달리긴 하지만.)


나도 그런 댓글들을 보며, 아 그래. 나도 더 늦기 전에 한 번만 더 해봐야겠다고 마음이 80% 정도 기울었었다. 그런데 저 책을, 저 글귀를 보니 이상으로 한껏 취해있던 가슴에, 산통을 깨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름 나이를 먹고, 생각의 힘이 커졌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이 중요한 선택을 못하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꼴이라니.


어쩌면 이 책은 그것을 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누구 말을 듣고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두 선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 웬만하면 현실에 만족하는 삶을 취하는 것,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 선택에 책임을 지려하는 것, 마지막으로 이런 중요한 결정도 못 하는 '바보 같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


이러한 일련의 것들이 '와비사비'가 일러주는 '불완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완전함'을 더 즐겨야겠다.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 어떤 상황이 오고갈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인생은 전투에서 춤으로 바뀐다.'



책입체 윌북 매일매일와비사비.jpg
 



05 끄적임



오랜만에 타블렛을 잡으니 뭘 자꾸 끄적이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들었던 생각들을 그림으로 그려봤다. 가로로 긴 그림이니 핸드폰을 뉘여서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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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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