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존재 [영화]

다양한 얼굴을 한 도움의 형태
글 입력 2019.03.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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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힘들 때면 조상님의 안부를 묻는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할 때 언제이고 내가 물어보는 일생일대의 질문들에 명쾌한 조언을 주는 멘토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힘들 때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다. 힘든 순간일 때가 기억에 잘 남는 것일 뿐 스쳐 지나갔던 순간들에 있어,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도움이 필요했고 도움을 받아왔다.


그리고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을 지나고 나서야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는데, 그때를 찬찬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순간을 통해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고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다양한 얼굴을 한 도움의 모양



그 도움의 모양새는 참 다양한데 흔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존재의 도움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어떤 존재는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만큼 경쟁의식을 일으켜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일 때도 있었다. 질투와 자기혐오로 얼룩져 조급해져만 가는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던 그 순간에도 배움이란 것은 존재했다. 그 반짝이고 탐나는 존재를 통해 나를 그 어떤 때보다도 자세히 들여다보며 나라는 사람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대에게 어떤 종류의 감정을 가졌었더라도 나를 성장하게 한 그들을 멘토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사전적 의미에서 멘토(Mentor)는 현명하고 정신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신뢰할 수 있는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멘토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어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관계 속 사람들을 멘토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거지에게도 배움이 있다는 말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한 존재가 있을 뿐이다.




조금은 다른 결을 가진



현실에서도 그러하듯 수많은 영화 속에서도 극 중 인물이 많은 상황에 부닥쳤을 때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게 영향을 주는 존재를 그린 영화들이 있다. 방향을 잃었을 때 나와 전혀 다른 상황일지라도 그들의 상황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위안을 주는 존재들, 그들이 영화 속에서 늘 웃는 것은 아니기에 온전히 공감하진 않더라도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조금은 다른 결을 가진 인간미 가득한 멘토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영화 <레토, Leto>

주인공 빅토르 최가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멘토 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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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LETO> 포스터


영화 레토는 러시아에서 제작된 영화로 올해 초 한국인 유태오가 주연으로 등장해 더욱 주목을 받았던 영화인데, 90년대 러시아에서 인기 있었던 가수 빅토르 최가 유명해지기 전 풋풋하던 청년일 때부터, 막 이름을 알리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절을 그린 영화이다.

가진 것 없는 노동자 계급의 빅토르는 유명한 록가수 마이크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며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날것의 일상을 담은 가사를 인정받고 마이크의 무리와 친분을 쌓아간다. 차갑고 서정적이면서도 자유를 갈망하던 소련의 분위기와 반대로 차가운 사회의 제재 안에서 안정적인 음악을 하는 마이크와는 달리, 자기의 이야기를 담은 다소 저항적인 음악을 하는 빅토르는 이미 록 클럽에서 입지가 있는 마이크의 덕분에 록 클럽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된다. 차차 공연하며 마이크와 함께 공연하는 등 마이크의 도움을 받아 결국 러시아의 록 영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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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속담처럼 사회 제재를 의식해 마음대로 음악을 할 수 없는 마이크와 달리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또 그런 특유의 개방과 개혁의 감성이 이해받을 수 있었던 빅토르의 상황은 마이크를 충분히 자괴감에 빠지게 할 수도 있었다. 또, 마이크의 뮤즈이자 아내인 나타샤와 미묘한 애정 기류를 보이며 관계를 맺는 빅토르를 용인하는 마이크의 모습은 애잔함을 넘어 도인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모든 상황에 그가 초연한가 싶겠지만 그런 상황에 그는 홀로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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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빅토르, 나타샤, 마이크


빅토르에게 도움을 줬던 그 첫 대면부터 마이크가 지금의 상황을 예견했을지는 모르지만, 예술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인 빅토르와 마이크의 관계는 왜 마이크가 그토록 아낌없이 빅토르에게 도움을 주었을지 의문을 들게 한다. 흔히 볼 수있는 아티스트 간의 제자 양성 같은 형태의 멘토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예술가의 특성상 흥미로운 재능을 보이는 신인을 발굴하는 것에 대한 의무감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였던 점점 커가는 빅토르를 보며 충분히 자신의 입지에 위협을 느끼고는 경쟁자로 돌아섰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마이크가 있었기에 러시아에 빅토르 최라는 하나의 문화로 퍼진 고려인 록가수가 탄생할 수 있었다. 자기 그릇을 챙기기도 바쁜 지금에는 말도 안 되는, 동화 속 조력자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온전히 그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건, 내가 지금의 현실에 너무나도 잘 적응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지금과는 달리 온전히 동료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 좋은 길로 이끌어주는 인간적인 시대의 분위기에 새삼 씁쓸해진다.




2.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주인공 아버지 료타에게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 멘토 유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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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포스터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족 영화 중 하나로, 잔잔한 극의 연출과는 달리 6년간 핏줄이라고 믿었던 아들이 병원의 실수로 뒤바뀐 남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된 젊은 부모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바뀐 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주인공 아버지 료타는 성공한 직장인으로 가정보다는 일이 우선인 남자이다.


료타는 사회의 냉정함을 알기에 아들 케이타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였을지, 아니면 엄격했던 자신의 아버지의 영향이었을지는 몰라도 아들에게 유독 엄격한 모습을 보인다. 료타와는 반대로 아내 미도리는 달리 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는 따뜻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 케이타는 료타가 기대하는 당차고 자기주장 강한 아들의 모습이 아니라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들이다.


자신의 피가 섞였다고 생각하는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그리는 모습이 아니었던 아들의 모습에 불만을 품기도 했던 료타는, 산부인과의 전화로 인해 아들이 친아들이 아님을 알고나자 ‘역시 그랬었군.’ 이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친아들을 찾기 위해 친아들을 키워준 부모와 대면하게 된 료타부부는 고민 끝에 친아들 류세이와 키우던 아들 료타를 바꾸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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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료타 가족과 유다이 가족



사실 친아들 류세이를 키워준 유다이 부부는 료타부부와는 달리 전기 상회를 운영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조금은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이다. 어쨌든 두 아들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이들은 아들을 서로의 가정에 보내며 조금씩 적응하게 하는데, 류세이의 아빠 유다이는 시종일관 돈을 밝히는 모습을 보이며 료타 입장에서 아버지의 자질이 없다고 느끼게 한다. 하지만 유다이가 보여준 아버지란 아들을 위해 놀아주고, 아들에게 가족으로 함께한다는 것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인간적인 아버지의 역할이다. 바쁘다는 핑계와, 원하는 대로 커 주지 않았던 아들의 모습에 대한 불만으로 아들과 심적으로 거리를 뒀던 아버지 료타와는 정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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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세이, 유다이, 케이타


결국, 아들을 바꿔 시간을 보내 봤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친아들 류세이 때문에 결국 그들은 아들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이지 못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결국, 키워온 아들 케이타를 만나러 가지만, 한 번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아빠 료타에게 섭섭한 케이타는 아빠와 거리를 둔다. 하지만 진정한 아빠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고 아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하고, 결국 아들과 화해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료타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낮고, 성숙하지 못한 어른의 행동을 보이는 유다이를 료타의 멘토라고 칭할 수 있는 이유는 료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삶의 본보기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료타는 서툴지만, 아들과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는 아버지의 역할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속 유다이의 존재는 본디 주인공의 행동 변화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보는 관객들에게도 둘의 대조를 통해 옳은 아버지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심적 거리가 먼 아버지와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아버지의 역할 중 무엇이 더 자녀에게 나은 길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듯 누군가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것이 심지어 내가 무시하는 존재일지라도 말이다.




3. 영화 <캡틴 판타스틱>


6남매에게 아버지이자 선생님이자 인생의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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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캡틴 판타스틱> 포스터



영화 캡틴 판타스틱은 다르게 사는 가족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대안교육을 도맡아하는 선생님의 역할을 하는 멘토이자, 가치와 주관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도록 이끄는 인생의 멘토의 역할을 다하는 아버지이자 캡틴인 벤이 등장한다.


캡틴을 따르며 살아가는 6남매는 곧 대학을 가야 하는 큰아들부터 유치원을 다닐법한 꼬마들까지 적당히 나이 차이가 나는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캡틴은 무정부주의자이면서 반자본주의자이다. 그래서 노엄 촘스키를 기리는 파티를 하고, 자신의 사상적 기준에서 꼭 학습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총, 균, 쇠> 등의 필독서들을 아이들에게 읽고 생각하도록 교육한다. 또, 숲 속에서 수렵과 작물 재배를 가르치고 모닥불을 피워 악기를 합주하며 즐기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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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딸의 미션수행을 숨죽여 지켜보는 장면


이런 캡틴의 교육은 큰아들이 하버드와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하도록 만들고, 꼬마 아이가 권리장전에 대한 자기생각을 말하도록 만든다. 솔깃한가? 캡틴은 아이들에게 온전히 교육적인 멘토의 역할을 다하는 듯하다. 하지만 반자본주의였던 캡틴은 아이들에게 대형할인점에서 도둑질을 하도록 임무를 부여한다. 캡틴 벤의 사상적 관점에서는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아이들이라도 캡틴이 이끄는 사회 안에서 캡틴의 가치대로 생각하도록 배웠기 때문에 그 경계의 너머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아이들은 점차 캡틴의 방식에도 균열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다른 세상을 살아갈 권리를 논하며 캡틴의 사회에서 벗어나겠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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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장례식, 색색깔의 옷


가정이라는 사회를 이끄는 캡틴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부주의가 쌓여가고, 특히 자신의 별난 임무로 셋째 딸이 크게 다쳤을 때 미처 다하지 못했던 자기 교육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자기의 방식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모습은 멘티인 6남매에 교육적인 가르침을 넘어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알려줬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자세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캡틴은 이들에게 삶의 방식에 있어 멘토가 될 수 있었다.


어찌됐든, 대안교육 속에서 살아왔던 시간 속에서 믿어온 가치를 갖고, 그와 반대인 사회라는 새로운 가치를 재교육받아야 하므로 캡틴의 존재에 대해 아이들은 자신을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키운 캡틴을 원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다. 캡틴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그가 잘못했더라도 그를 존중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나아가 사회를 살아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멘토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소개된 멘토들을 보며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울림을 줬던 영화 속 인물이 떠오를 수도 있다. 또,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스쳐 지나가듯 기억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찰나의 존재 였을지라도 어떤 유형인들 그들로 하여금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더욱 단단해진다면 그들은 멘토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짧다면 짧은 수많은 하루에서 그런 멘토가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잠깐이라도 그런 존재에게 고마워할 수있다면, 나도 도움이 필요한 누구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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