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거도는 정말 가상의 섬일까

연극 하거도 Review
글 입력 2019.03.14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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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과 희생으로 건설된 아름답고 눈부신 섬 하거도. 처음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는 조금 의아했다. 이 정도면 연극의 전체 스토리가 다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관람하지 않고도 극의 주제와 내용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기에, 평소보다 프리뷰도 수월하게 써 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다가온 관람일. 예상했던 주제와 스토리를 넘어서는 뭔가가 있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 평소보다 조금 더 부푼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섰다.


실체를 드러낸 하거도는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인 연극이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 다른 사람을 먹기 시작하고, 권력자들이 죄책감 없이 악을 자행하는 모습은 모두 예상 범위에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럽게 진행되는 서사를 따라가며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 모든 광경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끔찍한 경험이었다.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사람들의 느릿한 움직임 속에 무방비로 던져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불길 속에서 객석을 빤히 바라보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에 공연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그의 이름, 하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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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주인공의 이름은 ‘하거도’다. 그가 반평생을 보낸 섬의 이름과 같다. 하거도의 어머니는 아이만은 이 섬의 피해자가 되지 않길 바라며 섬을 방문한 부부에게 아이를 맡기지만, 아이는 결국 다시 섬에 버려져 ‘하거도’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 후 하거도는 또 한 번 버려져 결국 수용소에 수감되고, 그곳에서 아이를 낳는다. 하거도는 수용소에서 나고 자란 아들에게 섬 하거도 바깥의 세상을 들려준다. 아들은 하거도의 이야기를 듣고 수용소 바깥을 꿈꾸기 시작하지만, 정작 크림빵의 달콤함과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알고 있는 그는 “애초에 이곳과 세상을 나누는 담장 따위는 없었어!” 라고 말하며 절망적인 선택을 한다.


바깥을 보고 싶다는 아들을 죽이고 수용소에 불을 지르는 그의 마지막 선택은 그들의 세상에 일말의 희망조차 남겨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다시 섬으로 돌아와 평생 하거도로 불리게 된 그의 운명이 기구하다 생각했지만, 어차피 세상과 하거도가 다를 바 없다면 운명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서로를 먹고 탐하는 하거도 안과 바깥세상은 다를 바 없다는 판단하에 내린 그의 마지막 선택은 약자를 희생하며 발전해 온 인간의 역사에 대한 경고이자, 섬 하거도의 바깥세상에 내리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선과 악, 그리고 몇 가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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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배급이 끊긴 후 수용소는 그야말로 생지옥이 된다. 서로를 먹고 탐하는 이곳의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강렬한 생존 욕망뿐이다. 하지만 하거도는 지옥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도, 그의 아들과 그를 구해주었던 26-7284를 저버리지 않으려 한다. 끔찍한 좀비, 혹은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해 가는 수감자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그는 또한 서로 먹고 먹히며 ‘죄악’과 ‘도덕’의 의미가 흐릿해져 가는 수용소 안에서 스스로 죄를 묻기 위한 재판을 연다. 물론 이 재판은 그의 환상이다. 인간의 환상에 의존하는 이 재판은 그래서 매우 혼란스럽고 부정확하다.


그는 재판장으로 등장한 그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26-7284와 아들에 대한 기억을 혼동하기도 한다. 그는 왜 아들과 26-7284를 혼동했던 걸까? 환상 속에서 자신을 단죄하는 존재로 아들을 선택한 것은 마음속에 남은 일말의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없다. 생존 욕망만이 남은 사람들 속에서, 재판을 만들어내면서까지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했던 하거도의 모습만이 눈에 선할 뿐이다.



하거도는 범인(凡人)이었으나

단지 공간의 문제로,

혹은 시기의 문제로

끔찍하고 참담한 운명을

지녀야 했을 사람들의 대표격이다.


가려진 그들의 무덤이다.

감히 바라건대 그들에 대한 추모다.


- 윤지영 작가 인터뷰 中



하지만 시체를 먹으려고 꿈틀대는 군중과 하거도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재판을 열었다는 말이 과연 맞는 걸까? 생존 앞에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면, 끝까지 스스로에게 재판을 내린 하거도는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일까, 아니면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던 인물일까? 생존 앞에 한없이 연약한 인간성의 본질은 과연 선과 악 사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걸까?




하거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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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도의 수용소는 수많은 물음을 남긴 채 불길에 휩싸인다. 분노에 휩싸인 주인공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위정자들에게 복수하는 결말이었다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권선징악은 없다. 수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내몬 위정자들은 하거도의 진실을 주인공 덕에 편리하게 숨긴 채로, 또 다른 하거도를 권력의 발판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혀를 자르고 수용소에 불을 지른 하거도가 객석을 가만히 쳐다보는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이들의 허밍이 맑게 흐른다. 아이들의 허밍은 수용소의 사람들이 꿈꾸던 세계다. 그리고 수감자들을 발판 삼아 유토피아로 거듭난 하거도의 모습은 인간 문명의 과거이자, 현재이다.


하거도가 곧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도록, 그들이 꿈꾸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허밍 소리에 심취해 하거도가 내지르는 비명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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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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