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디에나 있는, 여성

우먼카인드 VOL.6 리뷰
글 입력 2019.03.0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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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뭐든 할 수 있다고 배우며 자랐다. 그러나 의사·교수라고 하면 자연스레 남자가, 간호사·교사라고 하면 여자가 떠오르는 걸 보니 교육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는 것 같다. 전형적인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이공계가 특히 그렇다. 여성 과학자와 여성 비행사 등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접하기 어렵고, 미디어는 이러한 현실을 답습한다. 아는 여성 과학자를 대라면 마리 퀴리가 떠오르지만, 그마저도 '퀴리 부인'이라는 명칭으로 심심찮게 불린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이론으로만 존재한다. 울림이 없는 메시지가 때론 기만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여성의 한계는 무의식 속에 자리 잡는다.

그런 맥락에서 우먼카인드 6호는 반가웠다. 실제로 이공계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생생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과 공학을 포함한 어던 분야에서든, 혁신적인 도약을 이뤄내는 이들은 전통적인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 우주비행사 제니퍼 시디

만약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됐더라면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었을 거예요. 한계까지 밀어붙여보지 않고, 익숙한 상황을 벗어나보지도 않는다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도리가 없죠. - 탐험가·작가 사라 휠러


먼저 눈을 사로잡았던 건 낯선 세상으로 뛰어드는 여성들이었다. 오래전부터 자연을 비롯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것이 남성의 몫이라면, 여성은 흔히 그들을 품거나 그들의 개발 대상이 되는 자연에 비유되곤 했다. 대자연을 어머니에 빗대거나 꽃의 자태를 말하며 여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익숙한 관습이다. 최근에도 모 작가가 단풍을 여성에 비유하며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오랫동안 개척자-남성은 자연-여성을 대상화해왔다.

다행히 오늘날 그런 사고방식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가기에는 제약이 많다. 새벽 거리를 걷는 단순한 일에도 여성은 남성보다 신경 써야 할 게 훨씬 더 많다. 여성의 뒤에는 늘 조심하라는 말이 따라다니고, 육아를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일이 최상의 것으로 꼽힌다. 그러한 환경은 여성을 자연스레 모험보다 안정을 택하도록 유도한다. '여자는 선생님이 최고'라는 말에 많은 것들이 함축된 것이다.

매거진에 등장하는 여성은 그 틀을 깨고 과감하게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다. 우주비행사 제니퍼 시디, 소설가 재클린 윈스피어가 만난 탐험가들, 인공위성을 만드는 천체물리학자 황정은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들이 한 말은 좋은 자극이 되었다. 남성이 주가 되는 분야에서 실력으로 당당히 자리잡은 이들은 굳이 강단에 서서 마이크를 들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용기와 힘이 된다. 물론 안정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이다. 하지만 사실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상상하지 못해 결정한 것이 아닌지, 여성에게 안정적인 삶이 알게 모르게 강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환경 파괴에 따른 빈곤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보통 사회에서 소외되고 연약한 여성들이었다.(여성이 남성보다 자연재해로 사망할 가능성이 더 크며 식량과 물 부족에 더 큰 피해를 본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을 때 강인함과 인내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역시 여성들이었다.

- 과학·환경 전문기자 가이아 빈스


매거진의 모든 여성이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택한 것은 아니다. 우먼카인드의 한쪽 면에 자신의 터전을 넘어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다른 쪽 면에는 자신이 속한 세상을 수호하는 여성들이 있다. 환경운동가 오흐프리 오리엘 레이크, 환경 전문 기자 가이아 빈스 등이 그러하다. 가이아는 환경오염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며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자들도 여성이라고 강조한다.

경우는 조금씩 다르지만 환경운동을 하는 여성들의 기저에는 '에코 페미니즘'이 있다. 즉, 지금껏 남성이 여성을 착취한 역사와 사람이 자연을 착취한 역사에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으므로 기존의 남성-여성, 인간-자연의 관계맺기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본다. 확실히 여성이 주체가 되어 환경운동을 추진한다면 무언가를 파괴하고 정복하며, 또 소비하고 오염시키며 살아온 과거와 달리 서로 상생하는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을 것도 같다.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는 자와 원래의 세상을 수호하는 자.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현재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는 점이다. 여성은 어디에나 있으며 거기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이분법적인 틀에서 뛰쳐나와 목소리를 낸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 가슴을 뛰게 하는 일에 몰두한다. 한때 수동적인 자연으로 여겨지던 여성은 이제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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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방영된 닥터후 시즌13의 주인공, '닥터'


분명 이전보다 여성이 활발하게 사회 각 분야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그 변화가 더디게 느껴지는 까닭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활동한 역사가 매우 짧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때가 1971년이다. 남성에 비하면 한없이 짧은 시간에 여성은 많은 것을 이루었고 또 이루어가는 중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먼카인드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성 롤모델이 더 많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미디어도 사회 변화를 인식한 듯 여전히 부족하긴 하지만 예전보다는 많은 여성 롤모델과 그들의 서사가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위 '3대 SF'라고 불리는 스타트랙, 스타워즈, 닥터후의 최근 시리즈에서 여성이 주연으로 등장했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는 물론 해당 작품의 본고장에서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오갔다. 일부 팬들은 작품의 정통성을 없애고 '과도한 PC함'이 작품의 재미를 해친다며 새 시리즈를 비판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이 '과도한 PC함'이라는 말까지 나올 현상인지 잘 모르겠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고, 앞선 세 작품이 다루는 무대는 미래의 우주, 외계인이 난무하는 곳인데 주연의 성별이 중요한가. 10명의 사람 중 아무나 한 명을 뽑으면 여성일 가능성이 50퍼센트인데, 지금껏 남성만이 모험의 주역이었던 것이 더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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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나 히어로물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갖은 트집이 잡히는 모습은 여성이 남성의 영역에 자리 잡기가 얼마나 험난한지를 잘 보여준다. 역사적으로도 유구했다. 중세에 약학이나 의술같이 남성의 지식을 소유한 여성은 마녀 취급을 받았고, 1913년 미국에서 에밀리 데이비슨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경마장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다. 표면적으로 성 평등을 지향하는 오늘날에도 군인이나 과학자처럼 남초 영역에서 여성이 인정받고 가시화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최근 미디어의 변화를 보며, 그리고 이번 우먼카인드를 읽으며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오늘날의 여자 어린이들은 나는 알지 못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접하며 자랄 것이다. 그들이 나중에 우주비행사를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여성의 모습도 함께이면 좋겠다. 더 나아가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여성은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괴리 없이 온전히 자리 잡기를 바란다.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명확한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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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카인드>
VOL6.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우먼카인드 편집부 엮음
분량: 172쪽
정가:15,000원
판형: 180*245mm
출간일: 2019년 2월 1일
바코드: 977-2586-2580-0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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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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