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신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여정, 소확행. <홍차 리브레> [웹툰]

글 입력 2019.02.28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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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연남동의 한 골목을 지나가다 고양이 소품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고양이 배지, 엽서, 도자기 등 온갖 귀여운 것들로 가득해서 구경하는 내내 미소가 지어지던 가게였다. 지금은 수입이 없어 물건을 사지는 않았지만, 돈을 벌었던 동안에는 항상 작은 행복을 명목으로 한 소비를 이어 왔던 것 같다. 작게는 미니언즈 초콜릿 우유부터, 크게는 인테리어 조명까지. 일명 ‘소확행’으로 불리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가장 최근의 소확행을 떠올려 보면, 폴란드에서 블랙 프라이데이에 세일을 하지 않는 귀여운 컵을 샀을 때나, 필름 사진을 인화했을 때, 유럽여행을 동안 모은 자석을 방 한 구석에 가지런히 붙였을 때인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작은 것들로부터 행복을 얻는다는 것에 대한 묘한 반감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나 자신도 작고 귀여운 것들을 소비하는 행위로부터 위로를 받고 지친 일상을 달래면서도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던 것은, 더 이상 작다고만은 할 수 없는 가격이나 돈을 벌지 않아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나의 현실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대단한 포부가 없으니 애초에 장기적이고 큰 목표 대신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아 초라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꼬인 마음도 들었다.


사실 ‘소확행’이라는 말도 어느 순간부터 유행하기 시작해서 별 생각 없이 소소한 행복을 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1986년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링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등장한 말이라고 한다. 소확행은 대략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다.



…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사고 체계인지도 모르겠다. …



하루키는 자신의 또 다른 에세이집에서 이렇게 말한다.



…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차갑게 얼린 맥주 한 잔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



이렇게 보면 하루키가 말하는 ‘소확행’과, 내가 생각했던 ‘소확행으로의 도피’는 꽤나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큰 목표를 성취할 자신이 없어서,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아서 조그만 데서 행복을 긁어 모으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목표를 설정했고 그것을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 보다는, 자신이 확실하게 원하는 것을 알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하루키의 글에서 배운 것은 소확행은 결과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과정 그 자체에서 오는 행복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홍차 리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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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리브레>에 등장하는 세 친구들은 ‘소확행’이라는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는 인물들이다. 어릴 적 ‘신데렐라’를 보고 자신이 무슨 드레스를 입을 지 상상하고 고민하다가 웨딩 드레스 디자이너가 된 홍차영. 남자친구와 함께 카페를 시작했지만 자신만의 베이킹 실력으로 혼자 서게 된 소보리. 늘 콤플랙스였던 집을 가지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집을 짓는 직업을 갖게 된 구슬아. 세 친구들의 소확행은 보리가 만든 디저트나 케이크를 먹으며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차영의 엉뚱함과 재기발랄함에서, 보리의 차분함과 음식에 담긴 마음에서, 슬아의 단단함과 듬직함으로부터, 그들은 서로에게 위로를 얻는다.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그렇기에 자신은 가지지 못한 상대의 장점을 인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계이다.


작품은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세 인물에게 크다면 큰 변화가 찾아오는 순간을 그리고 있지만, 깊게 생각하고 오롯이 대처하는 인물들의 시선에 몰입하다 보면 그 변화도 어느 순간 인생의 한 부분과 같아서, 그다지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삶이란 자신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여정’


보리에게 있어 행복은 자신을 믿어주었던 사람들의 말을 결코 잊지 않고 간직하며, 그 마음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타인의 말로 인해 상처받을 때가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닫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결핍이 있어 완벽해질 수 없다고 믿었던 자신의 존재도 그 자체로 충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얻으며 단단해져 간다. 바게트에 내는 칼집으로부터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태도를 배우기도 하며, 결국 베이킹을 기반으로 홀로 서기에 성공하는 보리에게 가장 확실한 행복은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까지도 모두 담긴 베이킹 그 자체이다.


슬아는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기 위해 애쓰며, 스스로의 권리를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 대신 선명한 ‘나 자신’이 되는 길을 택했지만, 가끔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녀가 가장 위하고 바랐던 가치는 ‘집’이라는 존재이다. 자신이 꿈꾸던 집을 얻기엔 아직 멀었지만, 건축 회사에서 일하며 주어진 조건 속에서 집의 가치를 지키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미뤄두었던 연애를 시작한다. 항상 올곧고 강한 태도로 주변인을 챙기지만, 아킬레스건과 같은 집의 존재로 인해 위태롭게 흔들리기도 한다. 그런 슬아에게는 도망칠 곳이 있고, 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야말로 새롭게 찾은 행복이었을 것이다.


홍차는 자신이 보리처럼 고운 마음을 가지지도, 슬아처럼 단단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 년에 여섯 번 온전히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럭키 데이를 만들고, 향이 짙은 티백을 책갈피로 쓰다가 어느 날은 차 한잔과 독서의 여유를 즐기기도 하는 등 색깔이 확고한 생활 양식을 가지고 있다. 알록달록한 옷차림이 우아하지 않다며 사장의 지적을 받았지만, 자기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고 처치곤란인 자투리 원단으로 가방을 만드는 취미까지 쟁취한다. 그 가방을 선물했을 때 기뻐하던 친구의 표정을 보는 것이야말로 홍차에게는 가장 확실한 행복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행복은 홍차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로 결심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홍차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 때문에 꿈꿔 왔던 피아노 배우기를 미뤄오기도 7년 째인데, 어느 날 직장에서 외국인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된다. 상사가 영어로 척척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영어를 배워야 하나’하고 잠시 생각하지만, 스스로가 성장할 가능성을 믿기에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를 택하는 장면. 그 동안 미뤄 왔던 많은 이유들 위로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끄집어내고, 그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려는 태도에서 소확행은 단순히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성장의 한 형태라는 것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이 장면에서, 재작년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친구의 생각이 났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지 거의 1년이 지난 어느 겨울 날, 드디어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고 해서 축하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꾸준히 학원을 다니는 것을 보며 피아노 치는 것이 정말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 부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는데 얼마 전 일을 시작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는 피아노학원을 그만두며 선생님께 편지를 드렸는데 그걸 본 선생님이 울고 계셨다고 했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나로서는 피아노를 배우며 정말 즐거웠던 친구의 진심이 전달되어서 그랬겠거니 싶었는데 왠지 나까지 코끝이 찡했다. 그러니 피아노를 그만 두었다고 해도 원하는 것을 스스로 일구어 낸 친구는 홍차 리브레의 주인공들처럼 ‘소확행’을 거둔 셈이다.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서 삶의 기준으로 남을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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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웹툰 (홍차 리브레 / 꼬모소이)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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