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악한 소년'에게 세워진 두번째 묘비, <사악한 소년>

글 입력 2019.02.2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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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사악한 소년'에게 세워진 두번째 묘비

<사악한 소년>

'빅토리아 시대에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옆방에서 카드 게임을 한 소년에 대한 기록'.


처음에는 자극적인 소재에 대한 얄팍한 관심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맥락에서 범죄인이 탄생하는가'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 아이의 기질, 사회의 분위기, 뭐가 되었건, 책 이름 처럼 '사악한 소년'에 대한 분석을 기대했던 셈이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나는 정신병리 진단 DSM-5(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미국 정신의학 협회에서 저술했다)를 뒤졌다. 책을 덮은 지금은 그런 내 자신을 뼈 깊게 반성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사악한 소년'이라는 이름을 지은 출판사의 마케팅이 기여했다 하더라도, 책을 읽는 나는 '사악한 소년'이라는 명칭 아래에 그 소년을 얼마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었는가. 심리학, 그것도 타고난 것보다 그의 가능성과 행복을 위한 적응을 고민하는 학문인 교육 심리학을 공부한다고 말해두고, 나는 이 작은 소년의 모든 방향을 사악함으로 몰고 갔는가. 현대사회에서 진보된 철학과 교육을 받았지만, 아직도 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심리학자들의 인식들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작가가 '사악한 소년' 로버트를 추적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여름, 우연히 옛날 신문에서 로버트 쿰스가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본 다음이었다. 1895년 7월 9일, 런던 데일리 뉴스는 충격적인 살인 사건을 보도한다. 에밀리 쿰스라는 한 여성의 시체가 이스트런던의 한 주택에서 발견되었고, 경찰이 도착하자 그 집에 살고 있었던 13세 로버트와 12세 너새리얼 형제는 곧바로 범행을 자백했다. 놀랍게도 형 로버트가 죽인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다. 형제는 10일 동안 어머니의 시체를 방에 방치해둔 채 크리켓 경기를 보러가고,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는 등 평소와 같이 태연하게 생활해왔다. 두 형제는 법정에 서게 된다. 이 잔혹한 친모살해 사건은 '플래스토의 공포', 혹은 '플래스토의 비극'이라는 별칭을 달기도 했다. 당시 언론의 말을 빌리자면 '공포소설보다 더 호러틱하고 기괴한 사건'이었다.

법정에 출두한 로버트는 무감정하고 논리정연했다. 그리고 앞서 로버트는 살해를 저지른 후에도 부모님의 이름을 빌려 전당포에 들리거나 남자 어른을 고용하는 등 모친을 살해했다기엔 지나치게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는 어머니와 함께 잘 정도로 총애를 받고 자랑받는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고, 또래보다 우수한 학업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보인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 즉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에 들어맞았다. 사실 이 사건은, 사실 현대사회에 들어서도 '사이코패스 살인사건'으로 칭하는 것이 더 간편해보였다. 당시에도 로버트의 모친살해 사건은 단순히 '사악한 소년의 잔인한 살인 사건'으로 칭해지고 판결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사악한 소년'의 사건에 뭔가 끊긴 고리가 있음을 깨닫고 집요하게 그의 사건을 추적해나갔다. 저널리즘을 공부한 기자 출신 작가답게 그녀는 침착해보이는 로버트의 마음 속에 들끓는 분노를 캐치해냈다. 그럼으로써 당시에 법정이 그의 사건에 내린 '사악한 소년'의 판결은 그녀의 집요한 자료수집에 또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모은 방대한 자료는 당시 사회의 생생한 목소리를ㅡ그녀는 스쳐지나가는 목사와 재판장의 삶 마저도 소개했다- 재현할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과 뜨거운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의 정수는 방대한 자료수집에 근거한 생생한 재현과 하나의 삶이 가져다주는 뜨거운 감동과 책의 훌륭한 구조의 결합에 있다. 그가 모친을 살해할 마음을 들게 된 때는 남동생이 음식을 훔쳐먹었다가 어머니에게 매질과 폭언을 듣고나서 였다. 그의 어머니는 한없이 부드러운 면을 가지고 있지만 가끔 극단적인 면을 지녔었다. 그녀는 그의 아들에게 잔인하게 살해할 것이라며 매질했다. 지금와서는 아동학대의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면모들이 가려졌다.

책은 1930년 6월 폭행을 당한 아이가 경찰서에 신고를 했지만 그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는 정보로 시작한다. 이 부분은 책의 마지막 파트를 읽기 전까지 이해할 수 없다. 뜬금없는 전개에 독자는 어리둥절해할 수 있지만, 다 읽은 사람에게는 가장 뜨거운 감동을 주는 부분 중 하나다. 책의 전반부는 로버트 쿰스가 살인사건을 저지른 다음 무엇을 했는지, 당시 시대 사회상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묘사한다. 책의 중반부는 재판 당시를 상세하게 살피고 있다. 뛰어난 재현은 당시에 어떤 사상이 팽배했으며, 로버트라 대표되는 한 '어린이'이자 '사회의 부적응'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추측케한다. 그를 평가하는 수많은 잣대는 매우 다양했다. '로버트 나이에는 돈을 벌어야하는 강요와 터무니없는 노동으로 고통스러웠던' 혼돈스러운 사회와 더불어 아동을 '야만적인 변덕과 충동으로 가득찬 문명화되지 못한 비도덕적인 존재'로 평가한 아동학적 분석, 로버트의 골상이 특이해 높은 지능과 폭력성을 보였다는 심리학적 분석(나아가 인간에대한 당시의 철학), '쓰레기 소설(페니 드레드풀)에 의한 일시적 정신이상으로 빗어진 비극'이라 주장했던 사회문화학적 분석이 난무했다.

가장 흥미롭고 충격적인 분석은 그들을 '퇴화된 가족'으로 분석한 부분이었다. 1857년 프랑스 정신과 의사인 베네딕트 모렐의 '퇴화의 궤적'을 정리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감정적인 에밀리 쿰스의 성향이 아들에게 더 나타나는 것이 당연했다. 퇴화하는 가족의 경우 1세대에서는 가벼운 신경 질환 증세가 나타나지만, 2세대에서는 노이로제와 히스테리 증상이 보이고, 3세대부터 정신병이 발현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백치가 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지능이 높았던 로버트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하고 유달리 조숙한 아이'로서 '혈통적인 퇴화 과정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다른 아이보다 광기에 이르는 경향이 더많았다. 이런 분석은 계급 구조가 혼돈에 빠진 빅토리아 시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였다.

이런 다양한 분석 속에서 로버트는 '사악한 소년'으로 치부되었다. 사실 무슨 이유가 있어도 로버트가 한 것은 살인이었기에, 나도 그가 재판에서 받은 결과에 대해서 별다른 할말은 없다. 하지만 재판장의 그 누구도 어머니의 극단적인 양면성으로 인한 불안과, 직업을 가지지 못한 소년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인식이나 끔찍한 직장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았다. 시대의 한계이자, 개인보다 사회의 힘이 강한 탓이다. 그리고 진일보한 오늘날에도 쉽게 반복되는 일이다. 책을 모두 덮은 지금, 모든 교육 과정을 끝낸 나도 재판장에 서면 그들과 다른 스텐스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반성이 따라왔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개인보다 사회의 뜻에 맞춰 입을 열었을 것이다. 사연없는 범죄자는 없지만, 모든 정황을 고려하지 않은 선고는 사회의 진보를 낳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도 아동발달의 선구자인 제임스 설리는 '아직 도덕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선과 악, 순수와 부패의 범주에 아이를 강제로 밀어넣는 것은 분명히 부적절한 일'임을 주장했고, 교회의 신부는 그가 끔찍한 범죄자인 것은 맞지만 그 안에는 하느님의 본성에 조금씩 깃들여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흥미로운 중반부가 지나면, 나머지는 후반부에는 교도소에 들어간 로버트가 군에 입대해 전쟁에 참여한 이야기에 대해서 서술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별달리 큰 감흥을 얻지는 못했다. 너새리얼과 로버트가 성장해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대한 서술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런 인식을 뒤집어 버린다. 에필로그에는 <또 한 아이>는 저자가 로버트를 추적하는 과정과 그의 중년 이후를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로버트가 밖으로 나온 이후에는 죽음 정황 외에는 정보를 찾을 수 없어 조사에 난항을 겪었다. 그녀에게는 로버트의 묘비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묘비에 쓰인 한 줄을 읽음으로서 이 챕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묘비에는 '그를 항상 기억하는 해리 멀빌과 그의 가족이'라고 써있었다. 저자는 기록 보관서에서 멀빌이라는 성을 가진 전화번호를 모두 확인한 다음 하나씩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해리의 딸을 찾아냈다. 충격적이지만 그녀의 아버지, 즉 해리 멀빌은 로버트를 의붓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로버트의 과거를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향수를 가지고 있는듯 했다. 저자는 그녀의 딸이 병상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이 챕터를 완성해갔다.

해리 멀빌은 폭력적인 의붓아버지로 부터 집중적인 폭행을 당했다. 해리는 그의 아버지가 연장의 날을 세울 때 옆에서 손잡이를 단단히 붙드는 일을 했는데, 연장이 조금 흔들려도 그의 아버지는 날을 세우던 쇠줄로 해리의 머리를 내리찍곤 했다. 당시 로버트 쿰스는 서부전선에서 돌아와 그의 옆집에 살았다. 1930년 6월의 어느날, 당시 열한살이던 해리는 독감으로 몸이 성치 않았다. 오후에도 해리가 농장에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아버지가 낫자루로 흠씬 두들겨 패고,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 아픈 상태로 해리는 경찰에 신고했고, 이것이 바로 프롤로그에 나온 그 사건이다. 신원불명의 사건 뒤에는 그가 있었던 것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안정감을 위해 혼자 시골에 살던 로버트는 이 프롤로그의 아이를 후견인으로 들인다. 폭행을 당한 아이는 의붓 아버지로부터 심한 아동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그는 어쩌면 너새리얼과 그의 삶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는 오랜시간 동안 해리를 돌봤고, 자신의 훈장을 보여주는 등 애틋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해리도 훈장을 그의 자식들에게 설명하며 그를 기렸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의 묘비는 늦게 지어졌지만, 해리는 그의 묘비를 만들면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사악한 소년의 묘비라기에는 너무 아름다웠다.

저자가 책을 쓰기 위해 자리를 뜰 때, 병상의 해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로버트가 자신에게 베푼 것을 들려주게 되어 만족한 표정이었다. 처음 그녀가 책을 쓸 때 로버트 쿰스에 대해 그녀가 알고 있었던 것은 그가 친모 살해자였다는 것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로버트가 구해준 사람과 손을 맞잡고 있었다. 해리가 로버트의 과거를 알고 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해리의 마음이 바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해리가 로버트를 살인자가 아닌 구원자로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에필로그가 끝나고 프롤로그가 시작되었을 때 끝없는 감동의 파도가 몰려온다. 잊혀졌을 로버트의 이야기, 아동폭력으로 도망갔던 신원 불명의 아이를 빅토리아 시대때 유명한 살인자가 보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마,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고있었던 '사악한 소년'의 진상이 조금씩 묻어있다. 이 잘짜여진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논픽션이라는 것이 놀랍고, 그 안에 들어간 삶에 대한 통찰이 만들어진 이야기보다 묵직해서 감동적이다. 전공에 대한 반성과 감동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책이었다. 정말 주저없이 권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일주일 동안 태연하게 감추어진 죽음
어린 아들은 어머니의 시체와 함께 살고 있었다

2017 미국 MWA 에드거 상 범죄 실화 부문 수상
2017 영국 CWA 골드대거 상 논픽션 부문 쇼트리스트
『가디언』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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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소년
빅토리아 시대 어린 살인자의 미스터리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 김희주 옮김
2019년 1월 30일 출간
464쪽 / 134X210 / 18,000원
979-11-88907-49-6 03920 /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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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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