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연극 <광부화가들> (리 홀 작, 이상우 연출, 명동예술극장(2013))
글 입력 2019.02.2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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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정부기관들과 지자체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은 독서교실, 노래교실, 댄스교실, 미술교실 문화예술관련 분야의 프로그램인 경우가 많다. 생업에 치여 사느라 바빴던 시민들은 이런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바쁜 생활 속에서 누리지 못했던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프로그램들에 대해서 ‘실용적이지 못하다’거나 ‘쓸데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예술교육이 우리에게 당장 더 많은 소득 창출을 가져다준다거나, 삶의 질에 눈에 띄게 높아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술교육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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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보다 예술은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고,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여기,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 예술을 만난 후 어떻게 삶이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연극 『광부화가들』은 ‘예술’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영국 북부 뉴캐슬의 광부들은 노조 교육부의 주최로 미술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러나, 처음 미술 감상 수업을 시작할 때 광부들은 ‘이런 거 쓸모 없다’고 생각했고, 수강생의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래도, 나머지 절반의 수강생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수업에 참석했고, 이들에게 미술이론수업보다는 실기를 가르쳐주고 싶었던 강사 로버트 라이언은 노동자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미술이라고 생각한 ‘판화’를 직접 가르치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은 판화 수업에 흥미를 보였고,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기 시작하며 미술이 작업장 밖 삶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소문이 영국 전역에 퍼져 미술 후원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의 자존감도 높아지며 인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애싱턴 그룹’이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 정부는 국영 광산의 민영화를 추진하며 광부들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결정한다. 광부들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진 것이다. 광부들은 판화를 손에서 놓고 정부를 향한 투쟁에 들어간다. 그들의 삶에서 판화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 미술은 계속 남아있는 상태였다.


아쉽게도, 이러한 광부들의 투쟁은 결국 실패한다.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는 결국 국가의 광산은 민영화했고, 광부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비록, 일자리를 잃어 가정의 생계가 막막하긴 했지만, 무작정 삶을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찾고자 노력한다. 이전까지 세상에 대해 염세적인 태도를 보였던 광부들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새로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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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예술과 가장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 예술을 시작하며 겪게 되는 삶의 조그마한 변화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가져다 주는지를 흥미롭게 표현한 작품이다. 18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배우들의 연기와 다양한 그림들로 가득찬 재미있는 연극이다. 1930년대 뉴캐슬 지역에 실재했던 ‘애싱턴 그룹’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더욱 더 흥미롭다.


이 작품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원작자 리 홀의 또다른 작품인데, 이 작품과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그가 노동자, 특히 광부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광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서로 다른 캐릭터와 생명력을 불어넣어, 그들 모두에게 애착을 갖게 하고 각자의 사연에 관객들은 귀 기울이게 된다.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은 광부들의 미술수업과 전쟁, 파업, 실직의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을 관객들 또한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술 강사인 로버트 라이언의 작업실에 찾아간 광부 올리버 킬번이 라이언과 나누는 대화 장면이었다. 라이언은 올리버에게 ‘당신이 애싱턴 그룹에서 판화를 그리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며 전문 화가로 데뷔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라이언은 말한다. “예술을 시작한 순간 당신은 예술가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이런 제안에 돌아온 올리버의 대답은 의외였다. “전 예술가가 아닙니다. 그저 미술을 좋아하는 광부일 뿐이죠.” 이 대답을 듣고 라이언은 계속 올리버를 설득하지만, 올리버는 결국 라이언의 제안을 거절한다. 사실,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예술의 힘을 말하겠다고 하면서 도대체 작가는 왜 저런 대사를 집어넣은 것일까. 결국 가장 예술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 올리버조차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설정으로 예술의 힘을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이 대화는 예술교육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예술교육의 가치가 실용성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나의 경우에도, 예술교육은 사람들이 예술을 사랑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혹은 아마추어 예술가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에 가치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예술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예술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의 만남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예술에 관심이 없던 누군가가 예술을 만날 기회를 선물했기 때문에, 결과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다.


*


예술가가 되었든, 그러지 못했든 예술교육은 새로운 한 사람에게 예술을 선물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예술가가 탄생해서, 혹은 그 사람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교양있는 삶이 되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이 예술과 만났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쓸모 없고 영향력이 없어 보일지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예술과 만나게 하기 위해 예술교육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이 연극은 말하고 있다.


예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세다. 예술교육이 처음에는 별로 효과도 없어 보이고, 영향력도 별로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한 번 예술과 마주하게 된다면 예술은 생활 속에 조금씩 조금씩 침투하여 분명 그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의 강력한 힘을 믿기 때문이다.



[박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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