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나요? [영화]

발달장애 동생의 물음에 마주하다
글 입력 2019.02.1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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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른이 되면>의 감독 장혜영씨에겐 중증발달장애 동생 장혜정씨가 있다. 언니인 혜영씨와 가족이 동생 혜정씨를 돌보기도 했지만, 가족만이 책임지는 돌봄노동에 한계를 느껴 혜정씨를 시설로 보냈다.

13살에 자발적인 동의 없이 시설로 보내진 혜정씨는, 31살이 되어서야 시설 밖에 나왔다. '누군가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유로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 있다면, 나의 삶 역시 내 것이 아님을' 깨달은 언니의 손길에 의해. 영화 <어른이 되면>은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의 시설 밖 생활을 통해, 우리의 삶이 타인들과 함께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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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의 시작


함께 살기로 한 두 자매의 생활은, 기쁘고 설렜으나 당황스러운 점도 있었다. 우선 둘이 함께 살아보니 떨어져 지낸 시간 때문인지 서로 모르는 점이 많았다. 언니는 '장애인 노들 야학'에 가서 동생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도왔지만, 어쩐지 동생은 관심이 없다. 누구보다 흥이 많던 동생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움직임 수업에도 흥미 없는 모습을 보며 언니는 당황한다.

시설 안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동생이 밖으로 나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그때 언니는 단호하지만 꼭 필요한 말을 해준다. "왜 학교에 와서 집에서 하는 것처럼 하려고 해?" 아마도 이 말은 혜정씨를 타자화하는 사람들 속에서는 들어보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사실 혜정씨가 겪는 '사회성'이라는 문제는 하나의 줄기로 이어져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사람은 가족으로 극히 한정돼 있다. 사회의 공적 서비스가 너무나도 미미한 수준이어서, 가족이 경제적-사회적-정치적인 접근성에 대한 부담을 오롯이 떠맡아야 한다. 가족이면서 친구, 직장동료, 이웃, 애인, 상사일 수는 없으나, 이 모든 것을 가족이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혜영씨의 말대로 "혜정이의 언니가 된다는 것은, 내가 되는 것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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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과 불평등의 시선


한 명의 끝없는 희생만으로 삶을 살아나갈 순 없다. 국가로부터 활동보조를 받기 위해 국민연금관리공단에 갔지만, 인터뷰는 내내 '당신은 무얼 할 수 있습니까'류의 질문만 받았다. 혜정씨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묻기보다, 혜정씨의 능력을 평가하는 말이었다.

혜영씨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장애인 정책 제도를 만드는 사람은, 장애를 불행으로 바라보지 불평등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지 않을까. 불행은 나와 당신이 다름을 전제하고, 불평등은 나와 당신이 평등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불행과 행복을 겪으며 살지만, 그것은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적인 구조 속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혜영씨는, 불행에 따듯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과 불평등에 뜨겁게 분노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연민은 내가 당신보다 많이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하지만, 불평등은 나와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데에 대한 분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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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유와 평등의 권리에 대한 약속이 깨진 것에 대한 분노 해야 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이 보장하는 '평등'을 주장해야 한다. 이는 제목의 뜻과도 연결되어 있다. 시설에 있을 때 혜정씨가 뭔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나중에"라고 말해왔지만, 사실 그 '나중'은 기다림이 아니라 권리에 대한 '접근성 없음'일 수 있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언니가 자리를 비워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혜정씨는 즐겁게 지낸다. 우리가 그러하듯 혜정씨도 주위의 많은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돌봄을 받고 삶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존재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시설 안에서만 살았더라면, 혜영씨는 지금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자립'이란, 나 혼자 힘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과 함께 사는 것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곡처럼 혜영씨가 무사히 할머니가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어른이 되면>은 여기에 세상의 특별한 상냥함은 필요없다고 한다. 다만, 나와 다른 이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은근한 질문을 던지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걸 도와준다. 이 조심스러운 태도에 특별히 응답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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