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른이 되면ㅣ 어른이 되면 우리는 무얼 할 수 있나요?

어른? 그게 뭔데?
글 입력 2019.01.23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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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장혜영

- 출연: 장혜정, 장혜영, 유인서, 이은경, 윤정민

- 장르: 다큐멘터리

- 배급: 시네마달

- 러닝타임: 98분

- 개봉: 2018년 12월 13일






혜정이는

뭔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라고 내게 물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혜정이는 그 말을 들어왔을까.

나 또한 혜정이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나중에'라고 말해왔지만

대체 그 '나중'이 언제쯤인지 생각해 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영화 속 언니 혜영의 독백-



얼마 전 아주 독특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평소 영화 편식이 심한 나로서는 잘 선호하지 않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영화였다. 어른이 되면. 제목이 강렬했다. "최악의 하루"를 연상시키는 포스터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지만, 영화의 소개 문장 중 하나인 저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중증 발달 장애를 가진 혜정의 언니인 혜영은 오랫동안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회에 격리되어 살아왔던 동생을 시설 밖으로 데려온다. 두 자매는 사회의 험준한 편견과 차별 속에서 무사히 살아가길 바란다. 이 영화는 그들이 사회에 녹아드는 과정을 그린, 작지만 한편으론 위대한 메세지를 전하는 영화다.




어른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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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손쉽게 해내는 마법같은 능력을 가지게 되는 줄 알았다. 돈을 내지 않고 물건을 살 수 있는 신용카드도, 무거운 것도 손쉽게 들어올리는 힘도, 화려한 언변도 모두 저절로 쉽게 얻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도 열두번씩 엄마를 귀찮게 하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섯살 때다. 여섯살이 되고 싶어서 5분마다 한 번씩 '여섯살이 되면 한참 걸려'라던 엄마에게 달려가 '이제 여섯살이 됐어?' 묻곤 했다. 나는 그렇게 어른이 빨리 되고 싶은 꼬마였다.

그리고 여기 어른이 되고 싶은 다른 한 사람이 있다. 혜영이다. 혜영은 중증 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가족들과 떨어져 시설에서 사회화 시기를 보냈다. 장장 18년, 말이 18년이지 엄청난 숫자다. 긴 시간을 사회와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그녀에게, 그리고 그 속에서 온갖 자유에 대한 구속을 받았던 그녀는 자주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는 중얼거렸다고 한다. 아마 그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로,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박탈 당해 왔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혜정이 '나는 어른이야, 사회인이야'라고 하는 장면은 짧지만 가슴에 박인다. 혜정은 저 말을 하면서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설렜을까, 아니면 표면적으로 어른이라 칭하는 나이가 되었어도 자유를 펴지 못하는 현실에 반대하는 의미로 저런 말을 한 것일까.

장애에 대해 딱히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나는 - 우리나라에선, 특히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장애인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이 의미가 장애인의 수가 적어서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해 폐쇄적이다- 무작정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저 어른들이 가진 겉으로 보이는 능력들이 대단했기에. 하지만 혜정이 말하는 '어른이 되면'은 그 결이 약간 다르다. 아마 그녀에게 이 말은 일종의 희망이자 놓을 수 없는 끈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거짓이라 해도 그 말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믿어야만 살 수 있었을 테니.




사회가 채운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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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언니 혜영은 장애인 시설을 '수용시설'이라 표현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보호'시설과는 다른 맥락이다. 수용시설이란 단어를 듣고 처음에 약간 거부감이 일었다. 아니, 왜 저렇게 나쁜 어감의 단어를 쓰는 거야? 하지만 곧 그녀가 왜 그런 단어를 선택했는지는 자명해졌다. 혜정은 한 번도 자신의 의사로 시설에 가겠다고 선택한 적이 없었다. 그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녀는 다른 가족들의 편의를 위해서 사회에서 격리되어서 살아가야했다. 영화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혜영의 인터뷰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왔다.



시설에서 혜정은 말썽꾸러기였다. 크게 소리 지르는 일이 많았고 함께 있는 동료들과 다툼도 있었다. 시설 사람들은 그런 혜정에게 약을한 움큼씩 먹였다. 약을 먹으면 혜정의 과한 성격이 누그러지고 한동안은 조용했다. 정확히 말하면 멍한 채였다. 약을 먹은 동안에는 많은 사람이 편해졌다.



혜정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무관심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수많은 장애인 시설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보호 시설이라 불릴 만한 곳 역시 있겠으나 과연 수용시설이라 불러야 마땅할 곳들이 존재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 놓였던 혜정에게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을 한 사람들은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뤄지지 못할 미래를, 심지어 그 미래를 만들어 주지도 않는 주제에 잠깐의 편리함을 위해서 저 말을 사용한 사람들은 그들이 휘두른 폭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걸까?

사람은 누구나 장애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성별을 바꾸는 건 불가능 하지만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건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세상의 모든 비장애인들은 모두 잠재적인 장애인일 뿐이다. 운이 좋았을 뿐인 주제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회가 만든 족쇄로 장애인들을 옥죄고 있다.




배려인가, 독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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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혜영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혜정을 위해서 자신이 행하는 일들은 배려인가, 독선인가. 사실 이건 언니 혜정을 비롯해 혜영과 관계맺은 모든 사람들 (다큐멘터리 촬영팀, 노들학교 교사, 의사 선생님 등) 모두가 고민하고 겪는 물음이다. 그리고 관객 역시도 영화를 통해 이 문제를 직면한다. 과연 어디까지가 배려이고 어디까지가 독선일까.

고등학교 때 인권기자단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가장 먼저 배운 한 가지는 '시각 장애인을 무작정 도와주는 건 실례다'였다. 그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불구하고 도와준다며 나서는 것은 그들은 모욕하는 일이며 오히려 불편함을 가중시킨다고 그렇게 배웠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있게, 도움이 필요한 것은 도와주도록. 장애인을 대하는 가장 첫 번째 원칙이었다. 너무나 맞는 말이지만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나는 혜정의 주변 사람들이 이 원칙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속으로 감탄했다. 물론 시행착오야 늘 있겠지만 음악을 가르쳐주던 인서, 혜정의 짜증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받아주는 은경, 뒤에서 묵묵히 혜정을 받쳐주는 정민, 그리고 가장 큰 버팀목 언니 혜영. 나는 이들이 너무나 신기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여정이라고 하지만, 일정 부분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건 사실이다. 영화를 보다 일부분에선 이들을 보며 힘들겠다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여전히 불편함에 익숙하지 않은 소위 '편견'에 찌든 나로서는 혜정보단 그녀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어준 사람들이, 그녀 주변에 환경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무척 대단해 보였다. 결국 일을 포기한 것도 언니 혜영이고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 지고 혜정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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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들이 중심점을 잡고 배려와 독선의 사이에서 접점을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혜정을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보았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대상에 '장애인'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지면 대다수의 비장애인들은 그 기브앤테이크의 과정 속에서 얻는 이익보단 손해가 더 많을 것이라 속단한다. 그리고는 그 과정 자체에서 장애인라는 선택지를 지워버린다. 때문에 많은 장애인들은 교류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당한다. 영화를 보던 나 역시도 '불편하겠다'를 몇번 중얼거렸으니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혜정의 변화는 이 오만한 속단에 어퍼컷을 날린다. 장애인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혜정을 대한 사람들과 혜정이 함께 만들어낸 변화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녀는 진짜 어른에 한 발짝 더 나아간 것 같았다. 세상을 배우고 사회와 어울리는 방법을 배웠다. 라이브 공연을 하고 캠핑을 가서 친구들과 어울린다. 심지어 언니가 없어도 괜찮다. 애초에 완벽한 어른이란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혜정은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어른이 되면' 하고팠던 것들을 점점 이루어나가는 것 같다.




짜 어른? 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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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곱씹었던 말이다. 혜정에게 '어른이 되면'이라고 수많은 기회들을 앗아갓던 사람들은 '어른'이란 단어가 무얼 의미하는 지 정확하게 답할 수 있었을까?


어릴 때는 어른이란 단어가 마냥 신기한 마법의 단어처럼 들렸다. 어른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존재 같았다. 하지만 어릴 때 어른이라 생각하던 나이가 된 지금 나는 어른이란 보다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짊어진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른의 삶은 어릴 때보다 더 고단하고 힘들다. 어른은 책임 질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이 누리는 자유에 응당 마땅한 책임을 치르는 사람. 나는 진짜 어른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괴로워하면 살아간다. 만능 초능력은 세상에 없다.

혜정은 이전보단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약간의 자유와 동시에 이를 지탱하는 약간의 책임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한걸음씩 그녀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그녀를 영원히 어린 아이로 남겨두려는 사회의 속박을 뛰어넘어 자신을 인생을 그려가는 '어른'으로. 그녀가 성장해가는 과정이 잘 그려지지 않은 점은 아쉬웠지만, 혜정은 그녀를 지탱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계속 나아갈 것이라 그리 생각한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음 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OST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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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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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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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5467
    • 공동체 상영으로 지인들과 나눌 영화를 찾던 중 리뷰를 읽게 되었습니다. 가슴에 남는 내용으로 좋은 리뷰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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