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수예술의 발명』 시리즈: ② 아퀴나스의 톱 [시각예술]

샤이너의 책 '더' 쉽게 읽기
글 입력 2018.11.25 23: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중세: 기계적 예술?


자수가 회화와 동등한 지위를 가졌던 중세시대엔 오늘날과 달리 순수예술과 ‘단순’수공예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5세기부터 13세기까지, 예술이라는 큰 범주 아래엔 혼란스러우리만큼 다양한 분야가 속해있었는데, 요리, 공 던지기 묘기 등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니 자수가 회화와 동류의 활동이라고 인식된 것이 별로 놀랍지도 않을 정도이다.

또한, 중세 시대에는 리버럴아츠와 벌가아츠를 구분하는 체계를 유지하면서 이를 더욱 발전시켜 리버럴아츠를 3과 4학으로 구성하고, 나아가 “12세기에 이르자 ‘교양’예술과 ‘범속’예술의 전통적인 대립을 그려내는 방식에 예리한 변화가 생겼다”. (『순수예술의 발명』, p.76) 성 빅토르의 휴는 ‘기계적 예술’이라는 말로 경멸의 의미가 담긴 ‘벌가아츠’를 대신하자고 제의하며, 기계적 예술 또한 리버럴아츠처럼 7가지의 분과로 나누거나 기계적 예술이 ‘타락한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인간의 신체적 약점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기타의 예술(예를 들면 이론적 예술인 철학, 물리학 또는 실용적 예술인 정치학, 윤리학)과 동등한 지위를 지녀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인간의 이성은 무언가를 저절로 소유할 때보다 발명해낼 때 훨씬 더 찬란하게 빛난다. 바로 이 이성이 회화, 직조, 조각, 건설을 무한히 다양하게 만들어낸 힘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뿐만 아니라 기술자도 경이롭게 쳐다본다.”(같은 책, p.77)라고 설명하며, ‘기계적 예술’이라는 말을 12세기 말에 이르러 표준어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며 기계적 예술에 높은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에 도전하는 세력 또한 생겨났는데, 그 예로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유용성과 수작업을 범속하고 종속적이라고 경시했던 고대의 사고”(같은 책. p.78)를 수용하여 이를 되살렸기 때문에, 13세기에 ‘기계적 예술’의 지위는 다시금 도전받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세인들은 여전히 모든 종류의 예술을 존중했기 때문에 이 예술들은 여전히 지식의 체계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1.jpg


 
중세 : 예술가의 지위


이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에서는 장인과 예술가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던 것과 달리, 중세에는 ‘artista’와 ‘artifex’라는 구분된 개념으로 각각 교양예술에 종사하는 이들과 기계적 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을 분류했다. 화가나 조각가라는 용어도 있었지만 이는 오늘 날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흥미롭게도 화가는 독립된 ‘화가 길드’같은 곳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안료를 취급하는 약제사 길드에 속해있었으며, 조각가는 금세공인 길드에, 건축가는 석공 길드에 속해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개인 단위로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길드의 일원으로써 활동하게 되며 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시켜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창조자’라고 인식되기보다 ‘제작자’의 지위에만 머물렀고, 어떠한 작품에도 개인의 서명을 남기는 일이 없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중세에서는 예술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성 역할을 구분 짓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어떤 한 분야를 남성이나 여성이 독점적으로 제작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것인데, 샤이너는 이러한 원인을 예술의 제작이 섬세한 작업을 요하는 종교적 주문으로 인해 실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렇다고 이런 상황이 ‘목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는데, 그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 당시에도 여성의 지위가 낮았고, 여성은 차별을 받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중세 시대의 여성이 예술 제작에 참여한 것을 통해 이 시대의 여성이 아직까지는 집안에 묶여 공적인 일로부터 제외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성 역할의 논의를 통해, 나는 글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예술가’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남성과 연결 짓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중세시대에도 여성 예술가가 있지 않았을까?’ 라는 궁금증을 전혀 품지 않고 당연히 없었을 것이라고 간주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샤이너는 “일부 지역에서 여성들이 특정 수공예 부문을 지배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이 만든 제품을 취급하면서 성공적인 사업가가 된”(같은 책, p.81) 경우도 있다고 짤막하게 서술했는데, 이러한 여성의 이름을 오늘 날 우리는 한명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2.jpg
 


중세: 미 관념, 아퀴나스의 톱


다시 중세의 ‘미’관념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중세에서는 예술이 여전히 순수한 쾌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즐거움과 지식을 동시적으로 전달하는 이중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이 시기의 미에 대한 논의는 예술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연의 미에 관한 숙고였다 ... ‘미’라는 용어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폭넓은 의미를 지녀서, 기분 좋은 외양과 더불어 도덕적 가치와 유용성을 포괄했다.”(같은 책, p.84)

본 장의 제목인 아퀴나스의 톱의 예시는 이러한 관념을 더욱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즉 아퀴나스에 따르면, 기술자가 아름다운 톱을 만들기 위해 유리로 톱을 만든다면, 그것은 톱으로써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한 예술품이고, 또한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오늘 날의 유리로 만든 톱은 아무런 논란의 여지없이 예술품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때와 지금의 차이이다.


*
시리즈 1


한선아.jpg
 

[한선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