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서울이 경성이었을 적에, 연극 '소설가 구보氏와 경성사람들'

글 입력 2018.10.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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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연극 '소설가 구보氏와 경성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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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공연예술로서 자리하고 있다. 이때 공연은 문자의 시각화 과정을 거친다. 연극에서 전개되는 서사는 기본적으로 희곡이란 문학의 한 갈래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는가가 연극의 문제로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소설가 구보氏와 경성사람들’은 문학이 연극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박태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소설의 서사 방식을 연극의 언어로 재해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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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초판본


작품의 원작은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이다. 구보씨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작품은 원점회귀 방식으로 서술된다. 집과 집 밖의 공간인 ‘경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조명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시선이 가닿는 곳을 자세히 묘사한다. 이때 일상을 바라보는 지점과 자의식의 부분이 오묘하게 교차한다.

 

하루 동안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고현학(考現學)에 기인한다. 고현학이란 당대의 사회상에 집중하여 풍속 세태를 조사하고 자료 수집을 통한 논리 전개를 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조사하면서 도시의 삶을 파악해 나간다. 당대 식민지 예술가로서 삶을 살아가는 구보 박태원 또한 일상을 살펴보고 이로부터 현대의 세태를 살펴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고현학적 서술 방식을 택하면서 멀지 않은 곳에서 문제의식을 찾아 나갔다. 구보씨의 하루를 따라가면 1930년대의 경성을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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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연극으로, 구보씨의 재탄생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이란 새 옷을 입고 인물 중심의 연극으로 새롭게 재편되었다. 연극의 경계로 넘어오면서 작품명은 ‘1일’에서 ‘경성사람들’이 되었다. 하루 동안 펼쳐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소개 하면서 일상 속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으로 재탄생 된 것이다. 기존의 소설이 구보씨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일상에 집중하는 방식이었다면, 연극으로서의 소설은 구보씨를 비롯하여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이는 소설처럼 문자화된 구조가 아닌 다양한 시각 효과를 통해서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연극의 특성으로 인하여 가능한 작업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1막부터 6막까지 이어지는 구보씨의 하루에서 당대 경성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연극은 원작과 동일하게 1933년 어느 12월의 날로부터 시작한다. 오전 11시 집을 나선 구보씨가 밤 11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여섯 이야기가 여섯 개의 일상을 묘사한다. 3막을 기점으로 쉬는 시간을 가질 만큼 작품은 방대한 분량을 통해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낸다. 각각의 이야기는 당시 경성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특히 젊은 예술가로서 삶을 살던 구보씨의 시선에서 전개되기에 경성의 젊은이들과 소소한 일상이 예술적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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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이미지



경성사람들과 '신여성'의 등장



특히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주제어는 ‘신여성’이다.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여성의 지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자유연애, 결혼관의 변화 등에서 여성들은 신여성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물론 오늘날의 여성상에 비교해서 신여성을 살펴보자면 여전히 억압과 보수적인 사상에 얽매여 있다지만, 당시 경성의 여성들은 조금은 더 자유로운 환경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여성의 지위 변화는 연극 속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1막, 4막에서 연애와 여성에 대한 근대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 1막 ‘낙하하는 러브레터’에서는 친구의 오빠로부터 연애편지를 받은 순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연애는 물론 남녀 간에 편지를 주고받는 일 자체가 불손한 행동으로 간주하던 당시의 시대상에 비춰보면 순이의 연애편지 사건은 점점 자유연애로 나아가고 있다는 과도기적인 사회상을 의미한다.

 

1막에서 연애편지를 통한 소소한 연애상을 볼 수 있었다면, 4막에서는 조금 더 확장된 신세대의 연애를 볼 수 있다. 4막의 ‘신(新)연애술’에서는 맞선을 보는 구보씨의 상황이 묘사된다. 맞선 상대자인 김정애와의 만남을 통해서 얼굴도 모른 채 결혼하던 시대를 벗어나 맞선을 통한 결혼이 당대의 결혼 풍속에서 어느 정도 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도 4막에서는 경성의 한 카페에서 맞선을 보는 구보와 김정애의 모습뿐만 아니라 카페 여급과 둘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투르게네프에게서도 당시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카페 여급은 근대화 과정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직업으로 도시의 여성들이 갖는 직업의 모습을 의미한다. 또한 ‘첫사랑’의 작가 투르게네프의 언급은 근대 소설 속 여인상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전보다 배움의 기회가 가까워지고, 자유연애로 한 걸음 더 나아간 당시의 신여성들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성의 지위는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5막의 ‘악마’를 통해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공창지대 매음녀를 등장시키면서 현실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6막의 ‘성탄제’에서는 영이의 임신을 통해서 여전히 현실의 제약을 그대로 맞이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여성상을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보았지만, 작품은 결코 ‘여성’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옴니버스 형식에서 모든 일화는 당시 경성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2막의 ‘윤초시의 상경’을 보면 변화하는 경성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지방 사람과, 구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3막의 ‘특강! 이상적 산보법’에서는 예술가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도시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날로 발달해가는 대도회지 경성에서 즐기는 구보씨 만의 산보가 절친 이상과의 대화를 통해서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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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경성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1933년의 경성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극은 생생하다. 작품을 통해 재현되는 경성이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에는 ‘언어’가 있다. 연극에서의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는 이번 연극에서도 언어를 강조한다. 당시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경성말과 일본말이 혼용된다. 여러 상황에 맞추어 사용되는 언어는 보는 이들에게 생동감을 전한다. 또한 오늘날 사용하지 않는 당대의 언어가 사용되는 대사에는 프로젝터를 통해서 언어에 대한 뜻풀이도 함께 진행된다. 이를 통해서 관객들은 낯선 언어에 대한 뜻을 곧바로 받아들이면서 작품을 보는 데 별다른 어려움 없이 대사를 접할 수 있다. 황금정, 병목정 등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는 당대의 경성과 오늘날의 서울의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재미도 준다.

 

‘우리는 연극 ‘소설가 구보氏와 경성사람들’을 통해서 오늘 하루 구보씨의 노트를 어지러이 채울 명랑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더러는 싱겁기도 한 창작 메모들을 엿보게 된다.‘ 시놉시스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져 있다. 오늘에야 편한 좌석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에 연극을 볼 수 있는 시대라지만, 당시 경성은 안정이라곤 찾기 힘든 변화의 소용돌이였다. 구보 씨의 시선에서 비치는 경성 사람들은 전통과 현대 사이에 서서 다양한 변화를 있는 그대로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마다 각기 다른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것에 눈을 뜨고, 자본에 휩쓸리기도 하고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한 1930년대의 경성이다. 연극은 단지 서술에 그치는 방식에서 끝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인물을 무대에서 재현하면서 당시의 경성의 모습을 고스라이 전한다.


서울이 경성이라 불리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작품이기에 과거와 오늘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구보가 살던 다옥정 7번지는 지금의 광교 서남쪽 청계천변 일대이다. 실제로 공연이 올라오는 곳이 1930년대 구보가 살던 공애당 약국 터다. 무대에서 전개되는 경성의 모습은 무대 밖을 나서는 순간 과거의 시간이 아닌 오늘날에도 연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종로'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는 종로 일대에서 일어나는 일화를 보면서 관객은 익숙한 지명, 다른 시대란 오묘한 교집합을 마주한다. 무대 위에 있는 프로젝터와 프로그램북 속 지도를 통해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경성일대를 살펴볼 수 있다.


거의 100년에 달하는 시간 차를 두고 있으면서도 작품이 결코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 까닭에는 여전히 유효한 공간과 지명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구보씨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경성의 하루는 활기차기 그지없다. 경성이 서울이 된 오늘날도 그 옛날과 마찬가지로 활기차고 늘 새로운 것들로 가득하다. 무대의 안의 경성과 무대 밖의 서울은 이질적이면서도 끈끈한 끈으로 이어져 있는 유기적 공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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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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