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땐뽀가 전하는 쓸데없기에 찬란함의 가치 [영화]

‘세상이 막막하기만 해도 지금은 그런 고민하지마 즐겁게 우리 춤을 춰 <땐뽀걸즈> OST 中’
글 입력 2018.10.22 19: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불황 속 조선소 도시 거제의 상고 여학생들의 소.확.행은 ‘땐스 스뽀츠’다. 사회에 진출하기 직전의 여고생들이 열중하고 있는 것이 취업 준비도, 막바지 학업도 아닌 ‘땐뽀’라니. 인생이 너무나 여유로워 춤이나 춰보려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사정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땐스 스뽀츠’를 춘다고 그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춤을 추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만만하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있는 힘껏 ‘땐뽀’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눈부시다 못해 찬란하다. 그 찬란함에 이 영화와 아이들에게 반할 수 밖에 없다. 일상 속에서 자신들의 즐거움을 소중히 하는 모습은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 자신만의 ‘땐뽀’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땐뽀걸즈 2.jpg



좋은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잔뜩 안겨준다. 그 생각이 퍼져나가면 좋은 영향력을 불러오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를 바라게 된다. <땐뽀걸즈>가 그렇다. 특히 이 영화를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땐뽀걸즈 3.jpg



첫 번째는 미디어 종사자들이다. 아무 검색 엔진에 ‘여고생’을 검색해보라. 당장 이 문구가 보일 것이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결과는 제외되었습니다. 만 19세 이상의 사용자는 성인인증을 통해 모든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 정작 여고생들은 ‘여고생’ 키워드의 검색 결과를 전부 볼 수가 없다. ‘아가씨’처럼 여성과 관련된 단어는 이미 지나치게 오염되었다. 그중에서도 ‘여고생’이 가장 심하다. 이 사태는 누구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는가? 한 집단만 꼽자면 나는 미디어 종사자들을 지목할 것이다.


어떤 매체를 접해도 성적 대상화된 소녀들의 모습이 잔뜩 노출된다. 이걸 본 아이들은 자신들이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스스로 성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땐뽀걸즈>는 다르다. 영화 속 아이들은 건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여고생’이며 아이들을 따라가는 시선 역시 건강하기에 안심하게 된다. 개인사를 지나치게 파고들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그저, 담는다. 미디어 종사자들은 현재 대중매체가 비추는 타락한 시선들의 입맛대로 변질된 ‘여고생’의 이미지를 <땐뽀걸즈>와 같은 방식으로 정화시켜야 한다.



땐뽀걸즈 4.jpg



이들만큼이나 영화를 봐야 할 사람은 학생과 주변 어른들이다.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미친 듯이 공부만 하는 삶을 강요받아 왔을 것이며 자신도 이러한 삶에 수긍하고 있을 것이다. 학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명분으로 아이들에게 공부만이 전부인 인생을 주입하고 있을 것이다. 이승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했던 순간이 아이들을 보며 되살아났다고. 버리지 말걸, 하고 후회하게 된다고. 나에게도 나만의 '땐뽀'가 있었다. 바로 낙서하기였는데, 수십 권에 다다른 낙서장은 엄마의 체벌에 의해 폐기되었고, 나의 소소하지만 소중했던 취미는 그렇게 막이 내렸다.


성인이 된 지금은 부모의 억압에서 조금씩 벗어나 다시 나만의 ‘땐뽀’를 찾아나가고 있다. 거제여상 학생들에게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나 쓸모없어 보이는 ‘땐뽀’가 일상의 버팀목이었듯이, 아이들도 자신만의 ‘땐뽀’를 가질 수 있도록 주변 어른들이 도와줘야 한다. 소녀들에게 기댈 곳을 만들어 준 이규호 선생님처럼.



땐뽀걸즈 6.jpg

 


현재 영화의 드라마화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여자상고가 공학으로, 거제도가 서울로 바뀌는 등 중요한 요소들이 대폭 수정되어 많은 이들이 영화의 정체성이 무너진다며 이의제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퍼져나간다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 중 이것만은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무거운 삶 속에서도 ‘땐뽀’라는 즐거움을 지켰던 아이들의 모습을. 그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땐뽀’의 가치를. 그 쓸데없기에 찬란함을.



[오유미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