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우리들의 동상이몽 (同床異夢) [영화]

2018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마음의 거리>
글 입력 2018.10.21 12:0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맷변환][크기변환]les_distancies__poster_grande.jpg
 

올해 10월, 부산 국제 영화제를 다녀왔다. 오랜 시간동안 머물며 영화를 즐기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아쉽게도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보고 싶은 영화 3개를 골라 보았다. 그 중 첫째 날 저녁에 보았던 영화 <마음의 거리>. 원제는 Les distàncies 이고, 엘레나 트레페 감독의 영화이다. 영화는 스페인에 사는 4명의 친구들이 베를린에 있는 친구 코마스를 몰래 찾아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올리비아, 엘로이, 기예, 그리고 코마스는 오랜 대학 동창 친구이다. 이제는 서로 너무 바빠지고 함께 얼굴 조차 보기 어려워졌지만, 이들은 현재 베를린에서 살고있는 코마스를 만나기 위해 어렵사이 시간을 모아 다 함께 베를린으로 떠난다. 기예의 여자친구 안나와도 함께. 시작은 순조롭다. 친구들은 들뜬 마음으로 코마스의 집을 아침부터 두드리며, 깜짝 방문을 한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당당하게 집 안으로 들어오는 친구들. 하지만 어쩐지 코마스는 영 난감하고 당황한 기색뿐이다. 친구들이 바로셀로나에서 여기까지 날라왔는데도, 임신 8개월차인 올리비아까지 함께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는 어딘가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리고 모두가 거실에 둘러앉아 맞이한 시간. 코마스는 여전히 애매한 표정이고, 서로가 오랜만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보지만 대화는 자꾸만 삐그덕거린다. 결국 기예의 날카로운 말에 안나와 올리비아는 기분이 상하고, 밖에서 함께 저녁을 먹자는 그들의 약속은 부서진다. 결국 엘로이, 기예, 코마스는 셋이서 술이나 마시자며 집을 나선다.


[포맷변환][크기변환]las-distancias-moroy-2018.jpg
 

하지만 밖에서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인파로 붐비는 시끌벅적한 술집에서 엘로이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고, 기예는 상황이 영 탐탁지 않은지 담배만 피워대고, 코마스는 잠깐 나갔다 오겠다더니 그대로 연락두절 상태가 된다. 다음날 아침 술에서 깬 친구들이 코마스에게 열심히 전화를 걸어보지만 애꿏은 연결음만 들릴 뿐이다. 결국 올리비아가 집에서 토마스를 기다려 보기로 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시내 구경이나 할겸 집을 나선다. 하지만 밖에서도 기예가 엘로이를 비난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안나는 자리를 뜨고, 화가 난 엘로이 마저 그 자리를 떠난다. 여전히 코마스는 저녁이 지나도록 연락이 되지 않고, 엘로이는 코마스를 미행하다가 지쳐 술을 마시다 취해 밤거리를 헤메고, 안나는 그날 저녁 바로셀로나행 비행기로 홀로 떠나버리고, 올리비아가 만든 코마스의 생일 케익은 볼품없이 식어만 간다.

그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한때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가 소중했을 그들. 시간이 흘러 서로 자주 보지 못해도 그들의 우정은 변함없을 것만 같았는데. 이들의 관계는 줄타기를 하는 것 마냥 아슬아슬하다. 당장이라도 관계가 어긋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들은 예전같지 않다. 서로의 안부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고, 각자 먹고사는데에 너무 바쁘며, 무례하고 날카로운 말들을 내뱉으며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대학동창, 오랜 친구라는 이름에 달고선 남보다도 못한 사이인 것이다.


[포맷변환][크기변환]Les_dist_ncies_Las_distancias-829164566-large.jpg
  

표면적으로 보면 기예의 일방적인 시비로 상황이 전개된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문제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있다. 애초에 베를린으로 오자는 약속도 올리비아가 친구들을 간절히 조르고 졸라 오게 된 것이었고, 현재 올리비아가 임신한 아이는 코마스의 아이였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남편 조차 그 사실을 모르고, 코마스와 그 친구들 또한 당연히 알리가 없다. 올리비아는 단지 코마스를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을 억지로 불러 모은 것이다. 기예 또한 친구들과의 만남은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그 사이를 빠져나와 여자친구 안나와 둘만의 시간을 즐기려 기회를 엿 본 것이다.

엘로이 또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잃고 단기 알바로 생계를 벌어나가는 중이였기에 지갑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그는 버스 정류장에 걸려있는 코마스가 모델인 광고사진을 보곤 코마스를 비웃으며 부끄럽게 만들고, 급기야 사람들 눈을 피해 코마스의 광고들을 찾아다니며 낙서를 하는 등 저급한 행동을 한다. 나중엔 경찰에게 발각되어 붙잡혀 가기도 하고.

*
 
대학동창 친구들 모임이라는 이름 하에 만난 친구들. 서로가 베를린에 온 목적은 너무나도 달랐다. 올리비아는 토마스와 만날 빌미를 찾고자 옛 친구들을 억지로 모았을 뿐이고, 기예는 여자친구와의 단란한 여행을 위해서 함께했을 뿐이며, 불안정한 처지에 놓인 예민한 엘로이는 그저 억지로 끌려왔을 뿐이다. 그야말로 동상이몽(同床異夢) 의 상황인 것이다.


[포맷변환][크기변환]1536418526883.jpg
 

어느 하나 멀쩡한 사람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와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서로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은채, 일방적인 말만을 쏟고, 친구라는 이름 하에 무례하고 거친 말들을 내뱉으며 시기하고 험담하고, 겉으로는 가장 소중한 사람인 냥 대하지만 사실은 남 보다도 못한 무지한 사이. 한 쪽에서 잡고 있던 줄을 놓으면 그대로 끝나버릴 사이 말이다. 더 이상 그들에게 서로는 소중하지 않다. 당장 자신의 하루하루 일들이 중요하고 다급할 뿐. 친구는 그저 귀찮기만 한, 낯설고 먼 존재이다. 그 마음의 거리가 과연 좁혀질 수 있을까.

사람 간의 관계는 서로간의 관심과 노력이 함께할 때 지속되어질 수 있다. 당장 자신의 주변에도, 오랜 친구라는 이름 하에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있지는 않은지. 복잡하고 삭막해지는 이 도시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친구라는 이름표를 달고서 하루하루 고독해지고 외로워진다. 현대인들의 관계에 대해 이토록 차갑고 절망적인 시선을 보이는 이 영화에 대해 나는 어쩐지 아니라고 반박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어쩌면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진심을 건네지 못하고 서로에게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본다. 이 영화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임정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