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아, 그건 아니고요…
“아, 나중에 아이들 동화책 작가 하시려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그림책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말을 하니까, 돌아온 질문이었다. 나는 빨리 대답할 수 없었다.
‘동화책’이라는 단어에는 일본말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하니 쓰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저도 몰랐는데 학교 선생님들에게서 들었던 말이라… 대신 ‘그림책’이라고들 하죠. 그리고 그림책은 꼭 아이를 위한 것만이 아니에요. 게다가 저는 그림책 작가가 되려는 생각은 없답니다. 나중을 생각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왜 저는 이 선택을 했을까요? 하하. 죄송해요. 저도 잘 몰라요… 네 선택의 이유를 네가 모르면 어쩌자는 말을 하시려는 건 아니죠? 그럼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 주세요. 어쩌면, 무의식 속에서 그런 생각을, 염려를, 그러니까 어떤 형태로든 ‘먹고 살 수 있는 무엇’을 고민하긴 했겠죠? 그래도 꼭 그러려고 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리긴 어렵네요. 무엇이 되겠다, 이제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그러기로 마음먹었어요. 목표를 정하면 꼭 그곳에 도달해야 할 것 같고, 힘들어지잖아요. 특히나 ‘작가’는 ‘되는’ 게 맞는지 의문이에요. 예전에 어떤 공모전에 참여했을 때 저더러 ‘작가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 뒤로 어쩌면 얼마든지 자신을 작가로 명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는, 아티스트는, 아무튼 둘 다 경계도 권위도 없는 자유로운 말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꼭 ‘될’ 필요는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그림책을 노년까지 꾸준히 만드는 사람이 되는 건 아마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저는 한 가지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사람이 ‘되자’고 생각하면 숨 막혀요. 다 모르겠고, 예전부터 고민했던 거였고, 아무튼 그런데 지금 고민은 끝났고, 어떻게 되든지 일단 결정은 했고 그래서,
“그냥, 내년까지 그림책 한 권 만들어 보려고요. 그게 다예요.”
많은 말이 떠올라 머릿속이 잠시 아득해졌지만, 꼭 구구절절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다 알 필요는 없으니까 간신히 한 문장으로 축약해 대답했다.
"이야기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들어온 다른 누군가의 질문에도 답하기 어려웠다. 글쎄요, 그러면 좋긴 하겠죠? 하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네요. 그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면 행복하겠죠. 그런데 위로는 주고 싶다고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더군요. 물론, 이야기는 사람을 위로하는 힘이 있죠. 저만 하더라도 뜻하지 못했던 드라마나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그런데 내게 위로를 주었던 무엇은, 과연 작정하고 위로를 베풀었던 것일까요? 그 장면에서 배우는 날 위로하려고 그런 눈빛을 했을까요. 작가는 누군가 위로하기 위한 한 마디를 쓰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을까요. 아마 다 아닐 거예요.
아무튼 정말, 당신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다 제 탓이에요. 모든 게 애매하고 막연한…
#032. 둘 다 아닙니다.
꽤 많은 사람이 내 선택을 응원하는 말로, '멋있다'는 표현을 썼다. 예의상 하는 말이겠거니, 해도 그 말이불편했다. 뭐가 멋있어. 이제 진짜로 돈도 없고, 돈도 없고, 돈도 없는데……. 어떤 이는 내게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멋있다’보다는 견딜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사실이 아니다. 여전히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용기가 있어서,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아, 다 아닌데!
그 얘기를 누군가 또 꺼냈을 때, 한번 설명하고 싶었다. 설명이라기보다, 해명을 했다. 진짜 하나도 안 멋있다고. 거지라고. "네 인생은 그렇게 배우기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는 인생이 될 것이다"라는 엄마의 저주…는 물론 아니겠지만, 비슷하게 들리는 한탄을 인용하면서.
“아무렴 어때. 세상에 거지랑 부자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만 하면 되지.”
아, 이게 멋있는 거지! 인디밴드를 9년 하다가 이제는 스타트업 사업을 3년째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원하는 걸 하고자 했던 사람이고, 했고, 또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인가 보다.
#033. 그렇다고 하면, 믿어주시길.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어.”
3년의 지난한 시간을 견딘 끝에 마침내 임용고시에 합격한 언니에게 물었던 적 있다. 어떻게 그렇게 지겨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느냐고, 정말 대단하다고. 그랬더니 언니는 무심히 대답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 뿐'이었다고. 어렸을 적부터 소중히 간직해 온 꿈도 아니었고, 교사가 되려고 대학에 간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세상에 자라나는 새싹을 잘 가꿔주고 싶은 대단한 비전이 있어서도 더욱 아니었다. 그냥, 이것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드문드문 끊어진 기억에서 인상 깊었던 사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분명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는 것. 또 하나는, 동료들과 회의 시간에 일을 진행할 ‘더 좋은 방법’을 구상하는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는 것. 생각할 의욕이 없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 나는 왜 직장을 구하려고 했던 걸까. 이 상태를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 아니라고 하는 말을 사람들은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의미 있는 것으로 포장해야 안심할 수 있는 것처럼. 선의에서 나오는 억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을 위해, 다음에는 꼭 진지한 얼굴로 '그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뿐'이라고 분명히 말해야겠다. 어이없고 버거운 상황을 이어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034. 뜻밖의 감사
“아무렴. 창작은 놀 때 더 잘 돼.”
누군가의 말,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편지, 감사합니다.
#035. 과제 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