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창문너머 어렴풋이≫ 저마다의 순수가 만나는 순간 [공연]

글 입력 2018.10.0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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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당신에게 아티스트 김창완은 어떤 의미인가? 산울림의 대표곡 ‘너의 의미’의 가사를 읊어본다. ‘무려’ 사랑하는 사람의 의미를 논하는데 그 의미라는 것이 너의 한마디 말과 웃음 한 가닥이란다.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찰나의 순간에서 사랑과 당신의 의미를 떠올린다.

김창완과 산울림은 늘 그렇게 노래했다. 괜한 무게를 잡지 않으면서도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예쁜 순수를 꾸밈없이 드러낸다. 멋들어지게 꾸며진 말들보다 내뱉어지듯 툭 튀어나오는 진심을 담았을 때 더 깊은 마음을 두드릴 수 있는 법이다. 음악이든, 사랑이든 간에 말이다.

9월 22일부터 11월 4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창문너머 어렴풋이》는 변함없는 순수함으로 커다란 의미를 노래하는 아티스트, 김창완의 정신을 소중히 간직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뮤지컬 창문너머 어렴풋이 포스터_온라인.jpg
 


시놉시스


불의의 사고로 꿈과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천재 뮤지션, ‘창식’은 봉천동 음악다방 DJ로 활동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실의에 빠진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칩거하지만 그의 연인 ‘정화’는 창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편 전국 록 밴드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고수의 가르침이 필요한 ‘종필’과 친구들은 우연히 창식과 만나게 되고, 창식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아차린 종필은 집요하게 가르침을 구한다. 그러나 차갑게 밀어내기만 하는 창식. 과연 종필의 순수한 마음이 좌절감에 빠져있는 창식을 구해낼 수 있을까? 멀고도 험한 도전의 길에 선 이들의 앞날은.....



풍부한 이야기와 부담 없는 웃음


극은 흥미진진한 서사와 더불어 긴장을 이완하는 재치, 이야기에 맞게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김창완의 친숙한 음악으로 생기 있게 전개된다. ‘창식’과 ‘정화’가 사랑과 꿈을 좇는 이야기, ‘종필’과 친구들의 투박하지만 순수한 성장기, ‘호순’과 ‘춘섭’의 코믹한 사랑 이야기 등 풍부한 이야기가 어우러져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음악의 꿈을 잃고 허망한 삶을 살아가는 ‘창식’이 순수한 마음들과 손을 잡고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은 매우 섬세한 감정선으로 그려진다. 한순간에 상황에 이입하게 하는 배우의 연기와 더불어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위치하여 긴장을 풀어주는 코믹한 요소들은 초반의 고요했던 관객 분위기가 무색하게 곧 장내를 웃음소리로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창식’이 음악다방 DJ가 되어 능글맞게 멘트를 던지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실의에 빠진 어두운 상황을 연기하다 자리를 옮겨 능청스럽게 DJ를 연기할 때 반전되는 분위기가 매우 재미있었다. 관객을 직접 이야기에 개입시키며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배경이 되는 음악다방의 사장 역할을 즉석에서 관객에게 주어 주인공과 통화하게 하거나 극을 전개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결정하게 해주는 등의 장치를 통해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소규모 연극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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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순수가 만나는 순간


음악인의 꿈이 크게 좌절된 적이 있는 ‘창식’과 달리 ‘종필’과 친구들은 음악을 다소 맹목적으로 선망할 뿐이다. 이들은 음악에 데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무모하고 철없어 보일 수도 있는 이들의 열정은 오히려 음악이 준 상처로 얼룩진 ‘창식’ 앞에서 더욱 불타오른다. ‘창식’은 그런 그들의 열정에 다시 일어나 꿈을 향하기 시작한다.

사실 ‘창식’은 음악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서 좌절을 경험한 것이지, 막상 음악은 상처를 준 적이 없었다. 소중히 가꿔온 꿈은 어린 날의 순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같은 순수를 동경하는 두 인물이 갈등을 거듭하다 마침내 음악을 매개로 맞닿는 부분에서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순수를 바라보는 수많은 이야기는 모두 김창완의 노래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처럼 화려한 밴드 앙상블이 몸을 들썩이게 하는가 하면, ‘아니 벌써’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처럼 가볍게 흥얼거릴 수 있는 친숙한 노래에 리듬을 타는 재미도 있었다. 김창완의 노래가 발매되고 막 매체를 통해 흘러나올 때의 세대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노래가 익숙했다. 이것이 시대를 관통하는 음악의 힘이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과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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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화려한 테크닉을 배제하고 김창완의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음악을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백지상태의 배우들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노력의 흔적은 여실히 보였지만 연주 중 실수가 적지 않게 있었고, 훌륭한 연기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다소 매끄럽지 못한 연주 때문에 극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인상이 있었다. 설상가상 계속해서 발생한 음향 문제는 극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했다. 막이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러 시행착오가 생긴 듯하다.

물론 배우들의 대처능력으로 무리 없이 관람할 수 있었지만, 좀 더 보완된다면 의도를 더욱 온전히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그들이 밴드 ‘개구장이’처럼 순수한 열정을 발전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또 다른 재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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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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