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인이어서 행복할 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볼 때 [영화]

내가 불한당을 사랑하는 이유
글 입력 2018.09.2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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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수많은 좋은 영화들이 있다. 그래서 언젠가 나의 인생 영화를 꼽아야 하는 때가 오면 고민이 많아진다. 내 인생 영화는 뭘까? 교훈적인 영화여야 할까? 내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영화여야 할까? 울림을 주는 영화여야 할까?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오히려 단순했다. 내가 주기적으로 보는 영화가 인생 영화가 아닐까? 예전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영화를 추천했다면, 요즘엔 철저히 내밀하고 개인적인 취향의 영화들을 찾는 게 훨씬 흥미롭고 짜릿하다.




나의 인생 영화



내가 주기적으로 보는 영화는 딱 두 개가 있다. 바로 ‘무뢰한’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다. 새로운 영화를 고르고 고르다 결국엔 또 손이 가서 본 것만 수십 번이다. 소름 끼치게도 두 영화의 제목은 서로 바꿔도 자연스러울 정도로 뉘앙스가 비슷하다. 그리고 방금 깨달은 것인데 두 영화 모두 경찰이 위장해 범죄에 접근해가는 설정이다. 둘 다 우연히 접하게 된 영화인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공통점이 꽤 많은 것 같다. 한결같은 나의 취향을 방증하는 것 같아 신기할 따름이다.


이 글에선 그 중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실 나는 이 두 영화를 몇십 번을 봤지만 단 한 번도 후기를 찾아보거나 감상을 글로 남겨본 적이 없다. 왜냐면 매번 볼 때마다 그 깊이가 깊어지고 느낌이 달라지는 영화여서 굳이 말로 정리해두고 싶지 않았다. 또한 어떤 말로도 내가 느낀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섣불리 말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그만큼 내가 정말 아끼고 평생 사랑할 영화들이다. 이 글의 제목이 내가 매번 불한당을 볼 때마다 한결같이 느끼는 소감이다. 이 영화를 자막 없이 온전히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감독에 대한 평가는 배제하고 영화에 대한 감상만을 담았습니다>




조화로운 영화



‘불한당’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오락영화와 누아르를 날카로운 감각으로 조화시킨 멜로(?)영화’일 것이다. 화려한 색채와 경쾌한 리듬의 액션신, 웃음을 자아내는 대사와 한재호(설경구) 특유의 웃음이 가벼운 오락영화의 면모를 한껏 뽐낸다. 하지만 거슬릴 정도의 가벼움은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한편 비릿한 항구 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풍기는듯한 누아르의 매력 또한 적절히 가미되어있다. 또한 푸른빛과 노란빛의 조명을 휙휙 바꾸는 연출처럼 한재호와 조현수(임시완)의 관계도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결론적으로 센스있는 줄타기를 잘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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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한다 상황을."



극 중 한재호가 조현수에게 하는 말이다. 이 대사는 이 영화의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해주며, 동시에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그렇다. 이 영화에선 ‘믿음’이란 게 금기시된다. 믿는 순간 당하는 게 나쁜 놈들의 세상이다. 심지어 이런 영화에서 아주 흔하게 나오는 형사 동료들 간의 믿음과 의리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차가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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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서 그래”



이런 차가운 세상에서 현수는 유일하게 ‘착한’ 인간이다. 그런 현수에게 재호는 본능적으로 끌림을 느끼고, 뭐에 씌인 듯 경찰인 그를 곁에 두게 된다. 하지만 현수를 자신의 편으로 확실하게 감으려면 현수가 가진 ‘착함’을 약점으로 이용할 수밖엔 없었다.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현수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지만 한재호는 애초에 누군가를 믿는 게 불가능한 인간이다. 현수를 곁에 두고는 싶으면서도 끊임없이 그를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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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뭐에 씌였나보다.

그래 처음부터 내가 너를 죽였어야 했어…
너는 나 같은 실수하지 마라."



모든 사실을 알고 자신을 찾아온 현수에게 재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진짜 미쳤었구나 하는 후회와 현수를 잔인하게 속이면서까지 자기 옆에 두려 했던 욕심 때문에 그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를 준 것에 대한 미안함이 담긴 말이었다. 마지막 장면까지 참으로 씁쓸하고 완벽했다.




알탕 영화와 퀴어 영화 그 사이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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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은 흔한 알탕 영화, 범죄 액션 영화들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멜로 영화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브로맨스’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깊이가 더 깊다. 나는 원래 브로맨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구체적인 서사 없이 그저 동료니까, 가족이니까, 같은 남자니까 라는 이유로 발휘되는 의리가 그렇게 감동적이진 않다. 하지만 ‘불한당’은 다르다. 한재호와 조현수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섬세하게 주목하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굉장히 복잡하다. 퀴어 영화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더 깊게 남는다. 진실을 마주한 그들의 표정이 폐부를 찌르는듯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조연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불한당’의 또 다른 큰 특징은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함께 기억나는 영화라는 것이다. 처음 영화 포스터를 접했을 땐 설경구 배우의 연기만 보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나의 착각이었다. 김희원, 전혜진, 이경영 배우 등, 모두 영화 ‘불한당’이라는 세계 속에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한 명도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들이었고 그 몫에 부합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설경구, 임시완 배우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맛깔나는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불한당'은 스토리의 전개, 연출, 확실한 캐릭터, 자연스러운 감정선 그리고 배우들의 알맞은 연기까지 완벽하게 어우러진 흔치 않은 한국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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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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