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알로, 슈티 >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몰라 [영화]

글 입력 2018.08.19 21:3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람 사는 거, 어디든 다 똑같다. 이 말이 떠오른 영화였다. 사람 사는 것이란 별다를 것 없이 재미없다느니 시시하다느니 이렇게 삶의 권태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환경이나 새로운 사람이란 결국 걱정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그러니 너무 겁먹고 벽을 세우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이처럼 표현해온 것은 아닐지.





01 포스터.jpg
 

영화 <알로, 슈티>
대니 분 감독


※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



내가 유배라니


우중충하다. 하도 추워서 발가락이 얼어버리니 외출 후에는 발가락이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도시 사람들은 ‘슈티미’로 모든 말을 퉁 치는데, 그놈의 슈티미가 당최 뭔지 몰라도 저들끼리는 잘 알아듣는다. 보통 발음에 비해서는 말씨가 너무나도 이상해서 통 알아듣기 힘들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좀 거칠고 이상하다. 하여튼, 사람 살 곳 못 되는 도시다!

우체국장 필립은 우울증에 걸린 아내 줄리와 어린 아들 라파엘을 위해 따듯한 프랑스 남부 도시로 전근을 계획한다. 생각 외로 전근 계획이 잘 풀리지 않자 거짓을 꾸며내려 했지만 얄팍한 거짓말은 쉽게 들통 나버렸다.

결국 그는 프랑스 북부 도시로 좌천된다. 북부로의 전근이란 징계의 의미가 강하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북부 도시에 대한 좋은 말은 하나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런 유해한(?) 환경에 있게 할 순 없다. 억지로 몸을 끌고 필립은 새로운 발령지, 북부 도시 '베르그'로 홀로 떠난다.


00 아휴 가기시러.jpg
 


슈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슈티(ch'tis) : 프랑스 북부 지역과 그 지역의 사투리 / 슈티미(chtimi) : 프랑스 북부 지역 언어


의외로 베르그는 두툼한 패딩 점퍼가 필요할 만큼 춥지 않았다. 반팔도 거뜬한 날씨였다. 그러나 필립에게 이 도시의 인상은 이미 부정적이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 사투리 억양, 냄새가 나는 치즈, 치커리를 넣는 커피,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 어째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03 치커리커피.jpg
 

한동안 필립은 마음에 안 드는 점을 찾아 까탈스레 행동하고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처음엔 호의적으로 그를 돕던 동료 직원 앙투완도 점점 불만이 생긴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앙투완은 필립의 태도를 지적했고, 필립은 앙투완의 지적이 당황스럽지만 달리 변명하지는 못한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 직원 아나벨은 앙투완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설득한다. 필립은 타지에서 온 사람이니만큼 베르그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네가 다른 도시로 갔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이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해 보아라, 아마 더욱 힘들 것이다. 아나벨의 말을 곰곰이 듣던 앙투완은 그 말에 수긍한다.


04 우체국크루.jpg
 

이후로 필립도 생각을 고쳐보려고 노력한다. 앙투완의 말을 기분 나쁘게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동안 자신이 보여줬던 태도를 성찰한다. 다시 보니 사람들은 정겹고, 음식도 꽤 독특하다. 사투리도 재미있다. 필립은 그동안 스스로 쌓아왔던 벽을 허물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관계에서도 참여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때부터 필립은 베르그에 더 편안하게 적응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생활하고 이젠 사투리도 제법 말할 줄도 알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필립과 동료들은 서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개인적인 고민도 함께 나누고 해결책도 함께 찾아보는, 보다 친밀한 사이로 발전한다.



울면서 왔다가 울면서 돌아가는 곳


앙투완은 베르그에 대한 소회를 말하는 필립에게 ‘베르그에 온 사람은 두 번 운다’는 속설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오기 싫어서 울고, 돌아갈 때에는 그 반대의 이유로 울고. 필립은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말하고, 앙투완은 어떻게 되는 지는 떠날 때 보자고 대꾸한다. (떠날 때 어떤 장면이 그려졌을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할 듯하다.)

베르그에 대해 직접 경험해본 바 없는 필립은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모아 지역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두었다. 이는 ‘베르그 사람들은 나와 다르다’고 선을 긋는 태도로 이어졌다. 선 밖의 북부 도시만의 문화는 이상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사실 모든 것은 이상하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이었다. 문제도 생겼지만 베르그 사람들은 필립을 너그러이 이해했다. 필립은 베르그 사람들의 선의에 반성하고, 인정에 마음을 열고, 결국 변화했다.


02 우체국크루.jpg
 

역시, 백문불여일견이다. 머릿속에 잘못 자리 잡은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필립처럼 마음을 열고 직접 부딪혀보는 것이 아닐까. 직접 보고 생각하는 일은 확실히 피곤하고도 수고로운 일일 것이다. 남들이 다 말해주는데 굳이 확인을 해가며 알아가야 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경험했을 때 들어온 바와 달랐던 사실을 몸소 확인할 때 우리는 기분 좋은 충격을 느끼게 된다. ‘거 봐, 사람들 말이 다 맞았잖아’라고 상황을 일축해버리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는 스스로 만들어낸 고유의 경험이 생길 때의 특별한 감각,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신기하고도 값진 감각이다.

다름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빼놓을 수 없다. 앙투완은 혈혈단신으로 베르그에 내려오게 된 필립에게 선뜻 도움을 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런 앙투완이 화가 났을 때, 그에게 아나벨이 한 말은 ‘타자에 대한 배려와 역지사지를 잊지 말자’는 청유의 말이었다. 우리도 언제든지 타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관용을 만들어낸다. 이런저런 여러 상황에 처하다 보면 때로는 필립이, 때로는 앙투완이, 또 때로는 아나벨이 될 수도 있다. 이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우리와 달라 조금은 낯설고 또 새로운 존재를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06 비루트.jpg
 

처음엔 낯설고 가까이하기 싫은 새로운 환경이라도, 한 겹 한 겹 가까워지다 보면 우리는 그 안에 숨어있던 익숙함과 친밀감을 발견한다.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달라도 그 안에는 나와 닮은 듯한 본질이 있다. 그 본질을 발견하는 상호작용에서 상대방에 대한 선의와 관용, 그리고 수용의 경험을 거쳐봤다면 그때 편안한 얼굴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다 똑같더라. 생각보다 괜찮더라.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로튼 토마토]


[심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