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위안부 기림의 날을 기리며 : 영화 < 눈길 > [영화]

글 입력 2018.08.1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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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4일, 새로운 국가기념일이 제정되었다. 바로 1991년 8월 14일,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목소리를 기억하기 위한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이다. 언론과 여러 유명인사들은 sns를 통해 이처럼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날을 기리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 나는 이날 나서서 무언가를 하진 않았지만, '우리의 아픈 과거를 잊지 말자'는 마음으로 2015년에 개봉한 영화 < 귀향 >을 다시 결제해서 보았다.
 
귀향을 다 보고 난 후에 비슷한 영화들을 찾다가 < 귀향 >처럼 크라우드 펀딩으로 개봉했었던 영화 < 눈길 >을 발견했다. 사실 작년에 눈길이 개봉했을 때, 귀향이 주었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고, 여러모로 귀향과 비슷한 점이 많았던 터라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날은 왠지 모르게 < 눈길 >도 보고 싶어져 무작정 결제를 했고, 귀향과는 다른 잔잔한 울림을 준 영화 < 눈길 >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영화 <눈길>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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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소녀들의 이야기
 
영화는 종분(김영옥)의 악몽에서 시작한다. 살얼음판 위에서 소녀 종분(김향기)은 영애(김새론)을 다급히 뒤쫓고 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던 영애가 발을 디디는 순간, 빙판이 깨지면서 영애가 빠지고 마는데 그 순간 종분은 악몽에서 깨어난다. 그때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종분의 얼굴에 깊게 패인주름이 그녀가 지나온 시간을 말해준다. 낡고 어딘가 텅 빈 것 같은 그녀의 집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유일하게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영애(김새론)이다. 종분에겐 찾아오는 사람도 대화할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녀는 이따금씩 영애를 소환해 자신의 대화 상대로 삼는다.
 
두 사람의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그녀들의 상처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화 도중 옆집 문에서 '쿵쿵'소리와 '끼익'소리가 들리자 영애는 괴로워한다. 이때 카메라는 과거의 한 시점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일본군이 문을 '끼익'거리며 드나드는 장면과 옆집 문의 '끼익'소리가 교차되며 들려오는데, 여기서 왜 문이 내는 소리가 종분과 영애에게 그토록 공포스럽게 느껴지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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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일제강점기 말,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운명의 두 소녀가 있었다. 부잣집 막내로 태어나 학교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항상 1등을 차지하던 영애(김새론) 와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지만 밝고 씩씩한 종분(김향기)이다. 똑똑하고 예쁜 영애를 동경하던 종분은 영애가 일본으로 떠나자 자신도 일본으로 보내달라며 어머니에게 떼를 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느닷없이 일본군이 집에 들이닥치고, 종분은 그들의 손에 이끌려 낯선 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또래 여자아이들로 가득 찬 열차 안에서 두려움에 떨던 종분은 열차 안에서 일본으로 유학 간 줄 알았던 영애를 마주친다. 이젠 같은 운명이 된 두 소녀가 도착한 곳은 일본에 위치한 위안부 기지. 여기서 살아서 곧 고향으로 돌아갈꺼라는 종분과 달리 영애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이 더 무섭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자신이 디딘 빙판을 깨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순간 일본 군인에게 발각되어 둘은 다시 위안부로 끌려가는데, 그 곳에서 둘은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영애는 점차 종분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그녀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긴 시간을 함께 버텨나간다.
 
그나마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순간도 잠시, 일본 전쟁이 끝나자 일본군인들은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위안부 아이들을 아무도 없는 들판으로 데려가 사살한다. 그들이 한눈판 사이 도망친 영애와 종분은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 하지만, 도망칠때 가슴에 총을 맞았던 영애는 결국 종분과 함께 가지 못하고 낯선 땅에서 잠든다.

 
 
니가 기억해야 돼. 난 잠시 쉬었다 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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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가 죽기 전 종분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넨다. 웃음기 없는 표정의 위안부 아이들과 군인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사진 밑에 써 있는 글씨 '간호근로대원'. 간호근로대원이라니. 아마 이 꾸며진 사진 한장을 내세우며 또 누군가를 속여 데리고 오려 했겠지. 아니면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이 부끄러운 짓이라는 걸 알긴 하는 건가. 속으로 분노를 삼키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았던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는데 또다시 생지옥'이라는 종분의 대사. 종분은 다시 조선의 땅을 밟을 수 있게 됐지만, 그녀에게 돌아온건 그토록 바랬던 고향의 따뜻한 온기가 아닌 차가운 냉대였다. 그 당시 고향에 사라진 여자아이들이 일본군한테 끌려가서 이상한 데 있다가 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주변의 손가락질 때문에 종분은 바로 고향을 떠나 그 뒤로 다시는 고향에 갈 수  없었다는 것. 영화를 보면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 상황에 너무 화가 났다.

 
 
잊지 말아주세요

이 영화가 나왔던 당시 영화 평점란에는 대부분 "또 위안부 영화야?","그냥 tv 단막극으로 만 쓰지","재미없다"라는 얘기가 즐비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이 사람들의 "재미없다"라는 평을 듣고 보기를 망설였다. 이 영화가 재미나 영화적 완성도를 '평가'하라고 만든 영화인가? 우리 모두에게 이 사건을 잊지 말자고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 위해 만든 영화이다. '재미'라는 기준으로 이 영화를 판단하려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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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의 이나정 감독님은 캐스팅에 있어서 20대 배우들보다는 고등학생인 김새론 배우와 김향기 배우가 역할을 맡았을 때, 그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소녀들이 겪었던 잔인한 일들을 더 사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두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자극적인 장면의 묘사나 전시보다  평범한 소녀들의 꿈과 일상이 깨지는 모습, 겨우 고향으로 돌아왔음에도 이전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들이 더욱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왜 이제서야,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는지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왜 이제서야 그들이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 건지 야속하고 화가 났다. 지금도 일본은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돈으로 사건을 묻으려 하며, 소녀상을 철거하기 위해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다. 위안부 사건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 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이기도 하다. 처음 목소리를 낸 피해 할머니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 반인륜적이고 잔인한 사건이 역사 속에 묻히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총 239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에서
2018년 기준으로 생존해 있는 분은
단 31명 뿐이라고 한다.

 
[홍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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