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라가 빠져나온 인형의 집 [공연 노라이즘]

글 입력 2018.08.01 10:2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가면 갈수록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이 어려워지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의 <노라이즘>을 보고 왔다. 연극은 오랜만에 보게 되었는데 비슷한 장르인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연극만의 떨림은 항상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배우가 연기를 시작하면 마치 내가 연극 관계자인 듯 실수가 생길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초반에 들었다. 어쩌면 공연 전 공연에 대한 비판적인 평을 읽고 가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노라이즘_포스터.jpg
 

내용 자체는 흥미로운 편이다. 리얼와이프 서바이벌에 은행장인 진규는 자기 아내를 내보내고 이 서바이벌에서 우승한다면 진규는 상금을 얻게 된다. 하지만 아내인 노라의 현모양처 모습이 아닌 진짜 노라를 찾기 위해 방해꾼들이 투입되고 이 모습은 모두 노라의 동의 없이 생중계된다.
 
시놉시스를 한번 읽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진행 면에서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노라의 친구로 등장하는 영주 역시 프로그램의 일부인 방해꾼인지,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리얼와이프 서바이벌같이 본인만 모르는 완벽한 몰카가 가능한지, 영주는 왜 노라에게 비윤리적인 부정청탁을 하는 것인지 이런 사소한 의문이 극의 집중을 방해했다. 게다가 TV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이 구시대적인 대사를 치며 대립하는 게 과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시간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관객들의 이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은 과감히 빼는 게 좋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상과 목소리 톤의 변화만으로 2개 이상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고(특히 꼰대 대사를 하던 배우가 ’선생님 ‘역으로 나왔을 때 동일인물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였다) 여러 가지 연출이 인상 깊었다. 노라가 매번 깨끗이 닦던 책상 위에 의자를 올리고 올려진 의자에 맥주를 올려놓고 책상 위에 앉아 맥주를 기울이던 영주와 노라의 장면은 노라가 기존의 가치관을 뒤엎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읽혔다. 또 자식을 위한 물건과 남편을 위해 예쁘게 치장하는 장신구들의 포장박스를 노라가 일렬로 정렬한 후 도미노 놀이처럼 쓰러트리는 연출, 그리고 모든 것이 촬영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후 분노하는 노라를 여러 개의 프레임 안에 넣어 화면으로 보여준 연출이 좋았다. 노라의 낙태에 대해 알려진 후 노라의 집을 둘러싼 영주의 비명과 남편의 분노를 보여주는 연출 역시 연극만이 할 수 있는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3.jpg
 

좋은 점도 있었지만 역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의식 아래 너무 안일하게 해석을 하지 않았나 싶다. 관객들은 대부분 이 극이 입센의 ’인형의 집‘을 각색했다는 것을 알고 연극을 보았을 것이고 ‘노라‘가 ’인형의 집‘을 벗어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벗어나게 되는지가 관객들의 관심이었을 텐데 우선 벗어나려는 ‘노라의 집’ 자체가 이 공연을 보고 있을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스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낡고 구시대적이다. 관객 중 이 공연을 보고 자신의 ‘인형의 집’에서 벗어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보면서 최근 리얼리티를 가장한 TV 프로그램들의 관음증적 요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리얼리티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엿보고 있는가. <나혼자산다>같이 어느 정도 연출이 가능한 프로그램은 그렇다 쳐도 <프로듀스> 시리즈는 어린 연습생들의 일상적 혹은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반강제적으로 여과 없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었음에도 이번 공연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공연들은 페미니즘 공연이 자리를 잡는데 기초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누구 하나라도 이번 공연을 보고 페미니즘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면 좋은 성과를 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연 할인 정보 중 페미니스트 할인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페미니즘 굿즈나 공연, 영화 티켓이나 굿즈를 지참하면 공연을 할인해 주는 것이다. 페미니즘 연극제의 특성을 잘 살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이라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관련 문화활동을 즐겨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8052700591968.jpg
 

마지막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시인인 나혜석이 인형의 집을 읽고 쓴 시를 일부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다음 페미니즘 연극제에는 더욱 다양한 공연과 함께하고 싶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수하게
엄밀히 막아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나혜석, <인형의 가> 중 일부




아트인사이트.jpg

 
[김소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