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디자인 매거진 CA - 여름과 취향의 로망에 대하여

잡지의 역할
글 입력 2018.07.3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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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나 잡지를 읽을 때 주로 정보를 얻기 위해 읽는다. 새로운 정보가 없거나 배울만한 게 없으면 왠지 시간 낭비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이 버릇은 에세이나 소설 같은 책에 손이 잘 가지 않게 만들어 독서에 있어 자꾸 편식을 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런 강박은 독서를 즐거움이 아닌 스스로 수련의 고통을 이겨내며 강행하는 활동으로 만들었으며, 글을 쓸 때에도 꼭 무언가 정보를 넣고자 하는 나의 글쓰기 성향에도 반영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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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매거진을 신청한 이유는 그저 '예뻐서'였다. '여름과 디자인'이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이번 여름엔 마음의 여유가 없어 여행도 못 갔는데 마음이라도 여름을 제대로 즐기는 것 같은 기분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무엇보다도, 그 '예쁜 잡지'가 나의 독서 습관의 틀을 깰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잡지의 경우 대부분은 사놓기만 하고 펼쳐보지도 않았는데 아트인사이트는 신청을 하면 꼭 읽어야돼서(...) 신청한 것도 있다.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랄까.

보기만 해도 시원한 파란색 바탕에 쓰인 글은 자꾸 한 줄 한 줄을 제대로 읽게 만든다. 한 장 넘길 때마다 다채롭게 펼쳐지는 이미지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서라도 글을 읽게 된다. 디자인 매거진답게 디자인과 브랜드에 대한 소개와 논의도 있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색깔의 이야깃거리를 골라내고 꽤나 편한 문체로 그것을 다루는 것이 인상 깊었다. 어느 편집 잡지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모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개성적인 것들을 잘라내는 것보다 이렇게 분명한 색깔을 가진 잡지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어떻게 분류하고 편집하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매력을 드러내지 않는가. 독립 잡지 열풍도 그래서 일어난 것일 게다. '힙스터' 세대는 늘 새롭고 자극적인 걸 원하니까. 그리고 그 '자극적'이라는 것이 꼭 서로 다투거나 머리에 간장을 붓고 매운 걸 많이 먹는 식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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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주목할만한 다른 잡지들을 소개해주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다루는 주제가 더 다양해질수록 독자들은 자신의 '사적인 취향'에 더 깊게 파고들고 그로부터 새로운 취미와 영감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매번 다른 특정 주제를 다루는 독립 잡지들의 존재는 독자 개개인에게 더 큰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잡지를 읽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공감받을 수 있고, 그것에 더 몰두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만족을 위해 더 많고 더 개별적인 것들을 찾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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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문화예술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 지에 대한 인터뷰와 프로젝트 섹션도 좋았다. 때때로 프로젝트의 결과물보다도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결과물을 내놓게 된 것인지가 더 궁금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서핑에 대해 다룬 Your wave is coming 특집이었다. 서프보드 쉐이퍼부터 서핑을 그들 예술 작업,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의 주제로 삼은 작가와 디자이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바다와 서핑에 대한 모호한 로망 같은 것이 있었다. 한 번도 서핑을 배워보거나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여름만 되면 어디론가 떠나 서핑에 도전해보고 싶어 안달이었고, 아직 때가 아니라며 미루기를 반복해왔다. 먼저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야라 어느 순간부터 잊고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잡지를 통해 접하게 돼서 당황했다.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영역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서핑 문화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자신의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고 감명 받았다. 여름마다 열병 앓듯 검색 몇 번 해보는 걸로는 얻지 못했을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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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한 모호한 동경으로
이런 그림을 그린 적도 있었다.
지금 보니 서프보드를 그려놓고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하게 그려놨네?


그렇지, 글을 읽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다. 글과 사진과 종이의 질감이 한 데 모여 하나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글은 정보를 전달해주는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새로운 경험으로써 기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 매거진 CA의 이번 호는 잊고 있던 여름의 로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고, 내가 실생활에서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들을 체험하게 해주었다. 잡지에는 정보 뿐 아니라 최대한의 감각적 경험을 주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했다 해도 개인은 자신이 찾고 싶은 것들만 찾게 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언어로 변환되지 않은 취향은 선택받지 못한 채 머릿 속 어딘가에 아득히 남게 마련이다. 나 또한 이 세상이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잡지를 보면 세상엔 사람들 간에 공유된 더 많은 색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찾아보면 나의 코드와 맞는 '신세계'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모르고 가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다. 다양한 삶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런 잡지들이 더 많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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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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