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빈지노의 가사 - 잠 못 드는 밤의 위로 [음악]

글 입력 2018.07.1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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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밤이 있다.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며 잠드는 밤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큰 시험을 앞두고 내일에 대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피곤에 찌든 나를 잠 못 들게 하였다. 그래도 잠을 청해보려고 음악을 들었다. 그러나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생각의 꼬리를 물다 밤을 지새우곤 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밤들이 있다. 다행히도 우리를 위로해주는 좋은 음악들이 참 많다. 아티스트는 음악을 통해 수고했다며 토닥여주기도 하고, 같이 울어주기도 한다. 나는 다양한 종류의 위로 중에 래퍼 빈지노(Beenzino)가 해주는 위로가 제일 와 닿았다. 그는 자신의 불안에 대해 찌질하고도 담담하게 노래한다.

래퍼 빈지노는 (지금은 군 복무를 하는 중이지만) 잘 나가는 아티스트이다. 그가 내놓은 작업물로 이미 그의 음악적 역량은 충분히 증명되었고, 힙합 씬에 발을 들인 이후로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아왔다. 빈지노는 자신의 음반뿐만 아니라 피쳐링에 참여한 음반까지 인정받으며, 매번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의 재능은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빈지노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미적 감각으로 ‘서울예고’와 ‘서울대 조소과’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미술이 그의 인생에 있어 가지는 의미는 ‘Dali, Van, Picasso’와 같은 곡에도 잘 드러나며, 아이앱 스튜디오(IAB Studio)라는 아트 크루 활동을 통해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랩은 그림 같다. 그의 음악, 패션, 외모, 여자친구, 크루들까지 참 잘 나간다. 여러모로 비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더 와 닿는다. 그가 말하는 불안은 참으로 기막히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매된 곡들의 가사를 살펴보며 빈지노의 불안은 어땠는지, 어떤 위로를 주는지 나눠보고 싶다.



Smoking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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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노와 프로듀서 시미 트와이스(Shimmy Twice)로 이루어진 힙합 듀오인 ‘Jazzyfact’가 2010년에 발매한 첫 정규 앨범인 [Lifes Like]에 실린 곡이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담배를 피우고 있는 8년 전의 빈지노가 그려지는 음악이다.


이쯤에서 질문을 해 내 꿈에 관해
왜 난 이럴까 물음표로 수놓인 밤하늘 나를
내려다 보는 star
괜히 오늘따라 더 높아 보이기만 하네

(중략)

화살인 시간을 피하기가 어려워
흘렸던 건 피 아닐까
따가운 시선과 많이 찢어진
내 의지에 이제 와서 난 삐약인다

(중략)

나를 위로하던 누군가의 음악도
뚝딱 나온 게 아닐 것임을 깨닫고

(중략)

머리 안에 가득 짐을 짊어지네
내 꿈 내 걱정 내 겁과 담배
불을 지피네

   
[오전 12시 33분]

내 꿈과 목표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턱없이 초라하다. 어려운 길임에도 가보려 하지만 나를 반기지 않는 눈빛과 달갑지 않은 말들이 내 걸음을 주저하게 만든다. 날이 갈수록 의지는 자꾸 꺾이고 겁을 먹고 풀 죽은 소리만 한다. 이런 나를 위로하는 근사한 음악도 누군가의 한숨과 눈물을 가득 머금은 것임을 알고, 다시 끝도 없는 생각에 잠긴다.



Always Awake


awake.JPG
 

재지팩트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1년 뒤에 발표한 싱글이다. 후에 빈지노의 솔로 앨범에 수록되는 곡이기도 하다. 차가우면서도 몽환적인 새벽녘의 공기 같은 재지한 사운드와 잠들지 않고 젊음을 불태우겠다는 빈지노의 가사가 대비된다.


눈이 푹 패이고 몰골은 초췌해도
I don't care at all
내 청춘은 14 carat gold
단지 조금 더 어리단 건
억울하긴 해도 잠재가치 커
so I gotta live my life young
die later

(중략)

왜냐면 난 내가 내 꿈의 근처라도
가보고는 죽어야지 싶더라고
yo I gotta live my life now
not later


[오전 2시 47분]

불안하다. 그래도 난 청춘이다. 오늘도 역시 피곤하지만 내 젊음이 아까워서 잠들지 않으려 한다. 나이가 어린 것은 그만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다가서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젊은 지금을 살 것이다.



If I Die Tomorrow

    
2426.png
 

2012년 발매된 빈지노의 첫 솔로 앨범인 [ 2 4 : 2 6 ]의 수록곡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 곡이다. 두 번째 훅이 끝나고 터져 나오는 그의 래핑은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곤 한다.


빨주노초 물감을 덜어
하얀 색 종이 위를 총처럼 겨눴던
어린 화가의 경력은
뜬금 없게도 힙합에 눈이 멀어
멈춰버렸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어
cuz I didn’t give a fuck
about 남의 시선 cuz life is like
나 홀로 걸어가는 터널

(중략)

삶이란 게 좀 지겹긴 해도 좋은 건가봐

(중략)

You don’t have to miss me
난 이 노래 안에 있으니까
나의 목소리를 잊지 마


[오전 4시 11분]

사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과 어린 내가 꿈꿨던 길의 방향은 다르다. 하지만 이제 말만 많은 이들의 시선 따위에는 흔들리지 않을 힘이 생겼다. 왜냐면 내 인생은 내가 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끝이 난다면 어떨까? 사는 거, 지치고 따분하지만 그래도 난 살고 싶은 것 같다. 내가 떠난 뒤에도 나를 추억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



Time Travel


12.jpg


빈지노는 첫 솔로 앨범 이후로 많은 싱글을 발표했다. 그리고 4년 만에야 비로소 정규 앨범인 [12]로 돌아온다. 이 곡은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며, 세 개의 타이틀 곡 중의 하나이다. 만약 당시로부터 12년 전인 2004년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면, 그리고 그때의 자신과 친구들을 만나서 해주고 싶은 말을 담은 곡이다.


야 XX 그대로만 하면 돼
나만 믿고 X같겠지만 gotta keep going
욕심 버리고 꼴찌만 면해
대학교도 결국 우릴 원해 비록 한 번에
못 붙겠지만 벌써 겁부터 먹지 마

(중략)

몇 년 뒤엔 내 노랠 못 건드릴테니

(중략)

그래서 난 시간의 담을
넘어서 자신에게 말해
넌 미친 게 맞고 그래서 다행
You gotta keep going man just like that
Wait a minute
Time Travel

 
[오전 6시 11분]

그럼에도 불안하다. 내가 한 선택들이 옳았는지는 결국 시간이 흘러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멋지게 성장한 미래의 내가, 오늘 밤 잠깐만 다녀갔으면 좋겠다. 지금 가는 길에 의심을 품지 않게 도와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을 산다. 매순간 온 마음을 다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최희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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