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남자 느와르 [문화전반]

글 입력 2018.06.2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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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핫’한 남자 배우. 도전이 무섭다면 황정민, 이병헌, 하정우 등 기존의 배우에서 선택해도 좋다. 조연은 익숙하지만 연기력이 보장된 오달수, 임형준, 김성오, 유해진 등과 같은 배우들이 있다. 직업은 조폭이나 군인, 경찰, 정치인, 언론인 등이 좋겠다. 주제는 정해져 있다. 사회의 기득권 층의 악랄한 악행을 고발하고 이것을 바로잡아 가는 선량한 주인공 혹은 그들 만의 목표 달성을 위한 피 튀기는 싸움과 그 속에서의 뜨거운 우정을 그린 진정한 마초들의 느와르 영화. 당신도 얼마든지 어렵지 않게 시나리오 하나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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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 느와르 영화 하면 전형적으로 생각나는 배우, 장면, 작품들이 있다. ‘클리셰’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비슷한 이 장르의 영화가 단순히 뻔하고 새롭지 못해서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권선징악


영화의 주제는 뻔하다. 주로 기득권 혹은 특정 세력을 향해 쏟아지는 분노 속에서 악인은 악인으로 선인은 선인으로 남는다. 감독은 ‘권선징악’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우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수단’들이 이용된다. 수단들은 대상화 되어 주인공의 행위를 극대화 시키고 ‘남성다움’을 뽐내는 도구로 이용된다.

영화는 악을 벌하고 통쾌함을 준다고 어필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통쾌함이 아닌 불쾌함과 분노만을 남겼다. 권선징악의 코드에서 한국 느와르들은 악을 벌하지 못하고 새로운 ‘악’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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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소재화


빠질 수 없는 얘기는 여성에 대한 것이다. 한국 느와르물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지 않은 영화를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룸싸롱 여자의 가슴을 만지며 “살아있네.”라고 말하던 하정우, <베테랑>에서 여성의 몸에 얼음을 집어 넣던 유아인. 그들의 악함, 바보 같은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 여자는 성적으로 소비된다.
  
최근 경악을 금치 못했던 영화가 <청년경찰>이라는 영화다. 놀랍게도 600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청년 경찰들의 성장 스토리를 보여준답시고 영화의 주요 사건을 여성들이 난자를 착취당하는 현실을 고발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한없이 가볍기만 했다. 두 명의 경찰대 학생의 어리숙하지만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주사기와 함께 피로 범벅된 여성의 복부를 클로즈업 했다. 억지로 관계 하려 하는 가해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도 문제도 해결점도 짚어내지 못하고 두 주인공이 여성들을 구출해 냄으로써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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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미나 권선징악의 결말을 위해 여성들이 어떻게 대상화 되는 지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배우도 고민이 없다. 그 불편함을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여성을 포함해 약자를 대상화하고 차별적인 대사와 행동을 쏟아내는 것이 영화가 재미있고 통쾌하다고 해서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말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이 부재해 오면서, 한국의 느와르는 그 의미와 기능을 잃어버렸다.



폭력성


영화는 참 잔인하다. ‘굳이 저렇게 까지?’ 할 정도로 싸움을 극대화 시켜서 보여주고, 모자이크 처리 되는 흉기를 보며 몰입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진다. 여성을 강간하는 장면이라든지 납치, 감금, 폭행 등과 같은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왜 그 장면이 필요한지 설명하지 않고 잔인함과 폭력성 자체가 개연성이 된다.
 
이 폭력성이 곧 느와르가 주도하는 남자들의 ‘남성’스러움이다. 느와르의 ‘마초’는 항상 누군가를 때리고, 여자에 대한 차별발언과 성적인 행동을 일삼고, 악의이던 선의이던 룸싸롱을 드나들며, 여자를 하나의 목표이자 수단으로 취급한다. 그릇된 남성적 이미지를 고착화 시키고 남자들의 로망으로까지 자리 잡게 하는 ‘한국 남자’ 느와르에 더 이상 소비되기도 소비 하기도 싫다.

*

우리 사회는 차별과 혐오로 얼룩져 있다. 여성을 대상화 하고 잘못된 ‘남성상’을 조장하는 한국 느와르 영화들은 주로 대형 기업에 의해 제작 배급된다. 자연스레 스크린 독점으로 이어지고 많은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놓인다. 우리 사회 속에서 만연한 남성들의 폭력과 폭력적 성향, 여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영화’라는 탈을 쓴 한국 느와르가 미치는 영향은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 남자’에 의한, ‘한국 남자’를 위한 느와르 영화에 이제는 책임을 물어야 할 때이다. ‘한국 남자’ 느와르는 무엇을 위해 존재 하는가.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조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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