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과 예술적 사이 [예술철학]

글 입력 2018.04.2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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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예술일까?


이 글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예술일까. 왠지 이 말 다음에는 실험적이고 난해한 작품에 대한 비평이나 현대 예술론에 대한 설명이 이어져야 할 것 같지만, 아쉽게도 필자는 예술에 대한 그런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저, 정말 단어 그대로 ‘이것’이 예술인지, 다시 말해 지금 적고 있는 이 글이 예술인지라는 질문이다. 참고로 무겁고 깊은 이야기를 기대하기에는 힘든, 다소 무심결에 던진 질문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끝까지 내려지지 않으니 답이 궁금한 사람보다는 같이 고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좀 더 반가운 글이 될 것 같다.





오피니언을 쓰면서 한 번도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론 오피니언도 에세이와 비평 사이에 있는 만큼 예술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 혹은 수필은 모두들 배웠다시피 문학의 한 갈래이다. 문학이 예술에 속하게끔 만들어주는 바로 그 점이 에세이를 개인적인 일기와 구분지어 주는 지점일 것이다. 한편 비평은 창작물에 대한 평을 담는 글인데, 비평가의 주관과 개성이 담기는 만큼 그 자체로 독자적인 예술로써 인정받을 여지가 커진다. 이 말의 뉘앙스에서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 에세이나 비평이라고 쓰는 모든 글이 예술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중 어떤 글은 명백히 예술이지만, 어떤 건 조금 모호하고, 어떤 글은 그 본래의 기능에는 충실하지만 예술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피니언도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 걸쳐 있다고 생각한다.

경계에 걸쳐 있다는 이 말은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어떤 오피니언은 예술인 반면 어떤 오피니언은 예술이 아니라는 뜻이 되겠다. 한편으로는 같은 글이어도 예술로 볼 수도 있고 예술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도 있다. 지금까지 써 온 오피니언들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글을 쓰는 중에는 이건 정말 예술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글감을 떠올리고 그것들을 연결하여 흥미로운 주제를 만들어낼 때,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정확하게 그려내는 표현을 고민 끝에 찾아낼 때, 문맥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구절을 발견할 때가 그렇다. 하지만 다 써 놓고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문학이나 시에 비해서는 건조하고 차가운 글이다. 흔히 문학적 감수성 혹은 감성이라 불리는 그것이 없는 이 글에도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혼란에 빠진다.

예술적인 것은 많다. 누구는 인체의 비례가 예술적이라 하고, 누구는 나무와 꽃이 예술적이라 한다. 맛있는 음식에 대해 맛이 예술이라는 찬사도 하고, 책 표지나 옷이나 가구의 디자인이 예술적인 사물은 주위에 널렸다. 더 넓혀보면 아름다운 수학 공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빈틈없는 이론으로 구현한 것을 보고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심지어는 좁은 자리에 기가 막히게 차를 세우는 것을 보고 주차가 예술적이라는 말도 하지 않는가. 예술적이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생각보다 넓은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예술적이라 불리는 모든 것이 예술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일까? 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예술 하면 미술과 음악만 떠올렸었다. 미술과 음악 안에서도 세부 종류가 천차만별로 나눠지니 미술과 음악이라고 하면 예술에 해당하는 상당수의 것들을 포괄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예술과 청각예술만 두고 예술이라고 하기는 우리의 나머지 감각들이 서운해 할 것 같다. 아름답고 새로운 향을 개발해내는 향수 공예가의 작업도 예술로 볼 수 있다. 또 단순히 생존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보다 새롭고 다양한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고, 각 요리들을 조화시켜 훌륭한 식사를 차리는 능력 역시 이 세상의 수많은 맛집들이 갖고 있는 예술적 능력이라고 본다. 점점 예술의 범위가 모호해진다.

또한 앞서 말한 시각예술과 청각예술 내부적으로도 계속해서 자신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도구와 재료와 기법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예술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요즘은 미디어 전시나 AI가 부른 노래처럼 침범될 수 없는 아날로그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부분들도 디지털화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질의 변화에는 관념의 변화 역시 따른다. 굳이 난해한 현대미술이나 현대음악이 아니어도, 미개척지를 향한 예술가들의 시도들은 오늘날 많이 볼 수 있다. 꽃가루나 햇빛 등 자연의 재료만을 이용해 본래적인 순수함을 추구하는 미술가나, 사랑이나 위로 등 관습적인 주제를 탈피해 의도적으로 불쾌감을 일으키는 노래 가사를 쓰는 사람들도 이제는 흔하다.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어쩌면 가장 관습적이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예술의 본질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과 예술적인 비예술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을 긋는 일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다. 마치 고중세의 나라들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없었던 것처럼. 대신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중간지역이라 불리는 일종의 경계'면'이 있었다. 경계면 안에는 이 나라에도 저 나라에도 모두 속하는 애매한 지역들이 있다.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경계면에도 무수히 많은 작품과 창작행위가 있고, 아마 이 글도 그곳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경계선이 모호하다 해도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구별은 유효하듯이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구분은 엄연히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다만 무슨 구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애초에 불확실한 예술의 구분선을 확정하려는 노력이 과연 유의미한지는 조금 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인 듯하다.


[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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