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실존과 시선, 관람객을 압도하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2.2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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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최고 경매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조각을 만든 조각가, 지난 해 마크 로스코 전시에 이은 사상 최대 작품 평가액. 이런 이야기로 자코메티의 전시를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어린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다’라는 말 대신, ‘창가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 위에는 비둘기가 나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다고.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느낌을 진실하게 전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자코메티의 죽기 직전 마지막 작업인 로타르3의 석고 원본과 자코메티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20세기 최고의 조각으로 일컬어지는 걸어가는 사람의 석고 원본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는 점을 내려놓더라도 우리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현대 조각의 거장 자코메티를, 그의 조각들을, 그의 생애와 사상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가 되는 이 전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Alberto Giacometti working on the bust of Yanaihara in his Studio, 1960Photo Annette Giacometti.jpg

 

자코메티의 키워드: 실존주의, 시선
  
 이번 자코메티 특별전의 키워드는 실존주의와 시선,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실존주의는 세계대전 이후 등장하는데 지금까지 믿어왔던 이성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런 목적 없이 내던져진 존재이며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며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인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실존주의를 가장 여지없이 드러나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인간에게 정해져 있는 본질이란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담았기 때문이다.

 자코메티가 살아간 시대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으며 전쟁을 통해 인간에 대한 생각을 근원적이고 본질적으로 접근하게 하였다. 시대도 시대였지만 자코메티 개인적으로도 어린 나이에 낯선 사람과의 여행에서 죽음을 직접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죽음을 직, 간접적으로 겪으며 인간의 잔혹함, 절망, 고독, 허무함, 존재 자체를 응시하게 된다.
 
“그는 하나의 사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죽음은 내게도. 또 다른 이들에게도 매순간 가능한 것임을. 내 삶은 바로 그날 완전히 흔들려버렸다.” 앙상하고, 불안하게 서 있는 그의 조각들은 일련의 개인적인 경험과 시대의 경험을 통하여 직접 마주하고 꿰뚫어 본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들인 것이다.
    
 전시를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인 시선을 이야기하기 전에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기호학의 대가인 롤랑 바르트의 사진에 대한 책인 『밝은 방』에 나온 문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주 오래전 어느 날 나는 나폴레옹의 막내 동생 제롬의 사진(1862)을 우연히 보았다. 그때 나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놀라움을 드러내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황제를 보았던 두 눈을 보고 있다.” 때때로 나는 그 놀라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않는 것 같았기에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는 단순히 사진 안에 있는 인물인 ‘제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제롬이 바라보고 있던 ‘시선’, 그가 바라봤을 ‘황제’를 본다. 100년도 더 지난 사진에서 바르트는 제롬이 보았을 황제를 생생하게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자코메티가 시선에 집착한 이유였다.
 
 
작업실에서 야나이하라 흉상을 작업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jpg

 

영생의 삶
 
“모든 것은 사라져도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시선’ 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제외한 머리와 나머지 것은 죽은 자의 머리와 같은 해골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죽음과 살아있는 개인을 구별해주는 것은 바로 ‘시선’이다.”
 
“나는 오직 눈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력은 바로 눈빛에 있다.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생명의 핵심을 두상만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모델의 시선에 집중하는 것이고 내 조각 작품들을 영원히 살아있게 하기위해 그것들을 담고 있는 두상에 집중 하는 것이다.”
 
 자코메티가 원했던 것처럼 그의 조각 작품들은 그가 바라보았던 시선을 통해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는 영생을 얻게 된 조각의 시선에서 자코메티를 보았던 눈을 본다. 그 앞에 앉아서 조각 하고 있는 자코메티를 보게 된다. 그 또한 영원히 살아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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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사람
  
 이 전시의 백미인 ‘걸어가는 사람’을 위해 기획 측은 마지막에 ‘묵상과 성찰의 방’이라는 단독 공간을 마련했다. 계속해서 이어져오던 전시공간과 달리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그마한 공간을 지나 검은 커튼을 열어야 ‘걸어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런 구조를 가진 의도를 생각해본다.

 사찰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주문을 지나야 한다. 사찰에 들어가기 위한 첫 문인 일주문은 일상이라는 속세의 공간에서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에 흐트러지고 얽혀있는 번뇌의 마음과 몸을 가다듬어 경건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다잡는 역할을 한다. 그 일주문의 역할을 이 조그마한 공간이 만들어낸다.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들어올 것, 그리고 일주문을 지나 들어간 ‘묵상과 성찰의 방’에서 나는, 조각상을 마주한 채 숨을 쉴 수 없었다. 
 
 전시를 보며 두 명의 예술가가 떠올랐다. 찰나의 대가인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마크 로스코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초상 사진을 작업할 때마다 “그의 내면적 침묵을 포착하기를 바랄 경우, 그의 옷 안으로 사진기를 들이미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라고 말했었다. 그가 남긴 빗속의 자코메티 사진은 자코메티의 내면적 침묵을 제대로 포착해냈다.

 마지막 ‘묵상과 성찰의 방’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생애 한번은 방문해야 할 가장 평화롭고 신성한 장소로 뽑은 마크 로스코 채플의 ‘로스코 채플 벽화’가 떠올랐다. 그 방에서 나는 로스코에게 그랬듯이, 자코메티에게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신승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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