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 에세이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도서]

글 입력 2017.10.2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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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웹툰 작가 겸 카피라이터이신 홍인혜님의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요즘 서점에 가 보면 아예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여행 서적이 굉장히 많이 나와있다. 언제부턴가 배낭여행, 혼자 떠나는 여행이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대학생들이 졸업 전에 가장 하고싶은 일 중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단연 해외 여행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 역시 어느날 혼자 훌쩍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오랫동안 꿈과 로망으로 간직해왔던 다른 나라의 도시를 배낭을 짊어 메고 지도와 카메라를 들고서 타박타박 걸어다니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해왔다. 당연히 실제로 갈 의향도 크다.

 그러나 쏟아져 나오는 여행 안내서들과 알록달록한 표지, 사진들로 장식되어있는 여행책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감흥이 줄어든다. 나의 로망이, 혼자 소중히 숨겨두었다가 가끔씩 꺼내어보며 설레였던 여행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어지고 알려지니까 괜히 내 것을 뺏긴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꼬마 때부터 선장이 되고싶어서 열심히 배도 살펴보고 바다에 대해 공부도 하고 방향키를 잡는 법도 배우며 어ㅅ느덧 달달 외운 지도를 손에 쥐고 배에 올라탄 소년이 손때묻은 방향키가 있어야 할 곳에 최신 GPS와 네비게이션이 장착된 것을 보며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이미 여행의 묘미와 노하우와 아기자기한 맛을 사람들이 훨씬 앞서가서 경험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홍인혜 작가님의 첫 에세이집은 나의 취향을 소위 말해 '저격'해버렸다. 우선 여행지부터가 내 꿈과 로망이 집결된 도시인 영국 런던인 것이 한 몫 했다. 한때 해리포터에 푹 빠져 살고, 영국 드라마 셜록의 영향으로 반드시 영국에 가고 말겠다는 나의 다짐을 더욱 확고히 굳혀준 책이다. 파리하면 에펠탑, 이탈리아는 피사의 사탑, 스위스는 인터라켄. 도시마다 꼭 방문해야 할 것만 같은 명소들이 하나씩 있지 않은가.
 
 중학생 때 어머니와 함께 패키지 여행으로 10박 11일 간 서유럽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때도 패키지 여행의 특성상 꼭 가봐야 할 곳 위주로 돌아다녔는데 막상 그런 장소에 가보면 좋기는 해도 솔직히 엄청난 경이로움과 감동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냥 책이나 교과서에서 보던 게 눈 앞에 있다는 정도였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스위스에서 시차 때문에 새벽에 잠을 깼는데 그 순간 창 밖으로 보이던 쏟아질 것만 같은 수많은 밤하늘의 별이다.

 작가님에게 런던은 앞의 말처럼 누구나 다 보고싶어 하고 방문이 끊이질 않는 관광 명소로써의 여행지가 아니라 생활공간이기도 했다. 직접 방을 구해서 지내고, 밤이 되면 음악을 들으러 집 근처 펍까지 가벼이 걸어가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며칠 단위로 도시에 머물렀다 금방 떠나지 않고 한두 달 정도 느긋하게 한 곳에서 생활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낯선 타지에서 집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점차 그 공간이 익숙해지고 일상이 되어갈 수록 내가 이곳에 물들고 있다는 성취감도 장난 아닐 것 같다.
 
 무려 8개월 간 체류하고 돌아온 만큼 여행의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이 담겨있다.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자 내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한데, '기록하지 않으면 그대로 증발해서 영영 없던 일이 될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상대적으로 짧막고 간결한 대사가 써있는 웹툰에서도 그 짧은 문장 안에서 느껴지는 작가님의 문장력이나 어휘 선택이 참 좋았다. 카피라이터, 말이나 글을 주로 다루는 직업을 가지신 분 답게 책 속의 문장도 마치 일기처럼 부드럽게 읽히고 가보지 않은 공간에 대한 글임에도 공감이 갈 만큼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런던에 가면 꼭 뮤지컬을 보라고 하셨다. 만약 여타 다른 여행 안내 서적이었다면 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이야기이지만 무려 '라이온 킹'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런던에 가면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겠다고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보고 울었다'는 말 만큼 직접적이고 확 와 닿는 감상이 또 있을까? 한국에서는 뮤지컬 한 편 보기가 가격도 부담되고 힘든데 런던에서는 그리 비싸지 않다고 한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라는 국립 미술관 이야기도 나온다. 햇볕 좋은 날 미술관으로 산책을 가서 그림을 보는 상상만 해도 참 좋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님의 성향이 나와 참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숱하게 '관계' 속에서 번민하며 살았고, 대학에 가면 나아질까 희망을 품었거늘 결국 어느 사회에 있건 인간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한결같았다는 글귀는 정말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낯선 땅에서 날마다 습관처럼 외로워하며, 내가 그토록 보물같이 여겼던 수많은 관계와 철저히 단절되어, 아무 집단에도 속하지 않고도 나는 멀쩡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그간 나의 세계에서 그리 중하지도 않은 수많은 관계에 얼마나 헛된 에너지를 낭비했는지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가 아닌 혼자 여행하고 싶은 이유를 작가님께서 정확하게 짚어 말하고 계신다. 외로움과 혼자있는 시간에 익숙해지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을 지나칠 정도로 내 삶에서 큰 부분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여행을 통해 나를 편하게 해주고 싶고, 내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싶다. 작가님은 런던에서의 여행과 8개월 동안의 시간을 묶은 책을 통해 그것을 실천하신듯 하다.
 
 1학기 때 교양 수업시간에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라는 영화를 보고 개인 발표를 했던 적이 있다. 이 영화를 촬영한 사람들은 여행 경비가 없어서 쓰레기장 옆에 텐트를 치고 탄산수로 머리를 감는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계속 유럽을 여행하는 이유는 그들이 세운 목표가 있었기 때문인데, 바로 좋아하는 뮤지션을 만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이 모든 과정을 영화로 찍어서 개봉하겠다는 꽤나 당찬 프로젝트였다. 그들은 정말로 그것을 이뤘다. 사실 목표를 이뤘냐 이루지 않았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야, 대박이다. 한 번 해 보자!'라는 말이 여행의 시작이었고 정말로 떠난 그 열정이 참으로 부럽다.

 홍인혜 작가님 또한 직장과 여러가지 다른 이유로 여행을 오랫동안 망설였으나 '지금이 아니면, 정말 안 될 것 같다'는 마음 하나로 사표를 내고서 떠나셨다. 여행을 하게 하는 그 마음들. 그것이 정말 여행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지금이다!'하고 짐을 싸서 훌쩍 떠나게 되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최은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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