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생애 첫 ‘락페’ 체험기 [공연]

글 입력 2017.09.3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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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은 눈이 부시도록 빛나고, 바람은 앞머리를 조금씩 춤추게 할 정도로 딱 기분 좋게 불었다. 그러나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초가을의 늦더위 안에서, 난생 처음 만나는 나의 첫 ‘락페’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올림픽대로는 유난히 막혔고 양화대교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물의 모습을 보고 있어도 어쩐지 평화보다는 짜증이 일었다. 교통체증이란 늘 겪는 도시의 일상이기 마련이지만 적응하기에는 여전히 힘들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기도 하며, 우여곡절 끝에 난지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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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최 측에서 제공한 셔틀버스에서 내린 후 공연장을 향해 가면 갈수록 한눈에 보기에도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축제의 현장이 공원 가득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긴 시간 동안 버스에서 느꼈던 마음의 피로도 그 광경을 눈에 담자 어느새 기대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평소 공연예술에 관심이 많고 여러 유형의 공연을 두루 관람해 본 나였지만 유독 락 페스티벌만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에 과연 락 페스티벌은 어떤 모습일까, 공연장을 향해 갈수록 호기심이 커지기도 했다.

 이번에 내 생애 첫 락 페스티벌이 된 ‘Let’s Rock Festival 2017’(이하 ‘렛츠락’)은 올해로 11년째를 맞은 가을의 국내 주요 뮤직 페스티벌 중 하나이다. 2007년 처음 개최되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확대되어 지금의 큰 규모가 되었다고 한다.

 렛츠락의 스테이지는 러브 스테이지, 피스 스테이지, 유 스테이지 총 세 곳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스테이지 간의 음향이 겹치면 안되기 때문에 각 스테이지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원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이동하려면 꽤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음향 문제뿐만 아니라 수용 인원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도 각 스테이지 간에 인원이 적절하게 분배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수고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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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친구가 본격적으로 돗자리를 스테이지 뒤편 잔디밭에 깔고 가을의 오후를 맞을 준비를 하니, 때맞춰 인디 밴드 잔나비의 공연 시간이었다. 떼창과 박수, 함성이 이어지고 끊임없이 곡이 이어지는, 그야말로 흥겨움의 연속이었다. 관람 방법은 스테이지 근처의 스탠딩과 뒤편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즐기는 방법의 두 가지가 있었는데, 우리는 돗자리를 깔자마자 바로 스탠딩을 택하고 공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서 처음으로 락페만의 독특하고 능동적인 공연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었다. 바로 타인과 모두 함께 하나가 되어 즐기는 기차놀이나 슬램과 같은 것들이었다. 슬램이란 깃발을 중심으로 ‘서클핏’이라는 둥그런 원 대형을 그리며 음악을 즐기다가, 곡의 후렴구나 클라이맥스와 같은 흥겨운 부분이 나오면 서클핏의 중심으로 모두 달려가 서로 몸을 부딪히는 행동이다. 처음 슬램을 했을 때는 매우 어색하고 무서운 기분이 동시에 들지만, 막상 경험하고 나면 계속해서 슬램을 하게 되는 짜릿한 무언가가 있었다. 기차놀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면식도 하나 없는 타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하나가 되어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분명 내가 이때까지 겪은 공연 문화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도 신선하며, 온전한 기쁨이 마음 속에 가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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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자마자 이렇게 기차놀이나 슬램 같은 락페만의 문화를 경험하며, 그 특유의 자유로움에 점차 익숙해질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를 ‘몸풀기’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어떤 형태로든 음악을 감상하고 공연을 향유할 수 있었다. 서서 맥주를 마시면서, 또는 돗자리에 앉아 여유로운 휴일의 한때를 즐기면서. 공연은 하나였지만, 즐기는 방법은 수백 가지였다. 해가 서서히 기울고 공연이 무르익을수록 나는 조금씩 더 자유로워졌다. 서툴면 서투른 대로 몸을 움직이면서 흥겹게 춤을 춰보기도 하고, 목이 쉬어버릴 걱정은 뒤로 미룬 채 일상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모조리 날려버릴 심산으로 목청껏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이 곳에서는 가능했다. ‘락페’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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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안 쌓여왔던 스트레스를 신나게 날려보내다 보니 저녁이 가까워졌다. 문득 락페의 꽃은 저녁과 밤이라고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와 친구가 역시 애정하는 밴드 ‘장미여관’의 공연이 시작되자, 곧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손톱 모양의 달이 스테이지 위에 떠 있고, 공연장 자체를 밝히는 조명도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자 슬램과 기차놀이는 멈추었지만 열기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흥겹고,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라이브로 너무나 듣고 싶어 했던 노래들을 듣게 되자 말 그대로 ‘고막이 청소되는’ 기분이었고, 문득 불어오는 강바람에 나와 친구는 ‘시원해!’ 대신 ‘행복해!’를 외쳤다. 마치 늘 썼던 일상어구처럼 말이다. 이윽고 마지막 공연인 밴드 ‘넬’의 무대가 이어졌고, 나는 돗자리에 앉아 무대를 감상하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내 생의 첫 락페는 끝이 났다.

 그리고 그 토요일의 오후는 이제 내게 온통 빛나고 눈부시던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었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가장 순수한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어떠한 격식도 필요하지 않고, 질서가 아닌 것이 질서가 될 수 있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이 ‘행복했다’. 아마 나는 앞으로 조금 더 자주, 락페에 가게 될 것 같다.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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