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nion] 외로움의 굴레 [영화]

영화 '토니 타키타니'를 보고
글 입력 2017.07.3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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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자극은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인 한 주였다. 넘치는 자극의 바다에서 섬과 같은 주말을 맞이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여백이 가득한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영화가


'토니 타키타니'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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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토니 타키타니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다. 게다가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며 악단 생활을 하는 아버지를 둔 탓에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외로운 것은 그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의 결핍이 무엇인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그런 그가 에이코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잃은 채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에이코를 통해 결핍을 메움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결핍을 깨달아 버렸기에 다시는 그녀가 없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에이코와 결혼한다.


외롭지 않다는 것은 그에게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외롭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외로워지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이 늘 따라다니게 되었다.


토니처럼 어렸을 때부터 특별히 외롭게 자란 사람만이 결핍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한 가지씩 빈 구석을 가지고 그 구멍을 채울 방법을 찾으며 살아간다. 구멍을 메우는 건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 취미나 일이 될 수도 있다. 토니가 에이코와 만나 함께 살며 그 구멍을 메웠다면 에이코는 옷을 사는 걸로 자신의 구멍을 메우려 했다. 둘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지만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그 사람과 계속해서 부딪히며 자신과 다른 점을 발견하고 그걸 이해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혼 전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며 에이코를 좋아하던 토니는 그녀의 옷 쇼핑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해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쇼핑을 조금 줄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꺼낸다. 여기서 그가 간과한 게 두 가지 있었으니 하나는 자신이 에이코를 소중히 여기듯 에이코에게 옷을 쇼핑하는 일이 매우 소중한 일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에이코가 토니를 옷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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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남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던 에이코는 갈등하고 이 갈등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다. 에이코라는 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그녀가 생전에 사 놓았던 수많은 옷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내의 빈자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토니는 아내와 신체 사이즈가 같은 여성을 비서로 고용해 근무 조건으로 아내의 옷을 입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내 아무리 아내와 비슷한 사람이 아내의 옷을 입고 서 있는다 한들 그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옷을 다 처분해 버린다. 텅 빈 드레스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으로 채워지지만 그것들 역시 에이코의 옷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떠난 사람의 껍데기일 뿐. 토니는 아내의 옷을 처분했듯이 아버지의 유품도 처분해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드레스룸에 홀로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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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바람에 흔들리는
안개처럼 천천히 그 모습을 바꿨고
모습을 바꿀 때마다 점점 흐려졌다.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날이 갈수록 흐려지기만 한다. 선명하던 감정과 기억이 날아간 자리에는 묵직해서 절대 날아가지 않는 외로움만이 남았다. 텅 빈 드레스룸에 홀로 누운 토니는 엉뚱하게도 예전에 자신이 비서로 고용하려 했었던 여자를, 그 여자가 이 드레스룸에 가득 찬 옷들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을 떠올린다. 토니가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1시간 16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의 이 영화는 한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보내는 모습을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화면이 전환될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연출, 여느 영화와 달리 이야기의 대부분이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는 점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듯 한 느낌을 준다. 책을 닮은 이 영화는 비어 있는 부분이 많은데 그걸 채우는 건 영화를 보는 사람의 몫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영화를 보겠지만 나의 경우 토니 타키타니라는 사람이 '외로움의 굴레'에 갇히는 이야기로 보았다. 그의 이야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여백이 많았고 여운이 길었으며 무엇보다도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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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어디서부터 올까? 나는 모순적이게도 결핍은 그 결핍을 메우는 무언가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건 외롭지 않은 상태를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일 것이다. 토니가 에이코를 처음 만났을 때 그랬듯이 말이다. 우리는 모두 외롭지 않은 게 어떤 것인지 잠시나마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외로움을 안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취미를 만들어 보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사람을 외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괴로워하다가 새로운 무언가가 외로움을 해소시켜 주기를 고대하고 다시 실망하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바로 이것이 '외로움의 굴레'이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토니는 이제 외로움의 굴레에 갇혔다. '굴레'라고 하니 어쩐지 부정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나는 토니의 변화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변화는 지극히 인간답다. 아내가 남긴 옷들과 아버지가 남긴 레코드들은 그 주인이 세상을 떠난 시점에서 이미 함께 죽었으므로 약간의 추억 말고는 줄 수 있는 게 없다. 추억은 과거의 산물이고 살아있는 토니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사람이 필요하다. 토니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듯이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그 과정은 물론 힘들겠지만 긴 외로움과 외로움의 사이에서 잠깐 맛보는 짧은 충족감이야말로 삶에 있어 가장 극적인 부분이 아닐까.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외로움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외로움이야말로 사람을 외롭지 않게 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장난 같은 생각을 영화를 다 본 후에 해 보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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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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