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이 세계를 살아가야만 하니까."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글 입력 2017.06.2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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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끔 말이야. 우리들이 좋아하는 영화랑
지금 우리가 찍고 있는 영화가
연결되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 정말 가끔이지만 말이야. 그게 좋달까."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저녁 급식이 끝나고 나면 다들 이유 없이 운동장을 돌곤 했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운동장 위를 걷고 있는 무리들을 보고 있다 보면, 마치 우리가 컨베이어 벨트 위의 공산품이 된 것 같이 느껴졌다. 사실상 각자가 다른 얼굴을 하고 있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꿈을 꾸고 있지만, 이곳에서 우린 모두 같은 틀에 찍혀 나오는 공산품과 다를 바 없었다. 어느 새 해는 저물고, 운동장을 돌던 아이들은 하나 둘 야간 자율학습을 위해 교실로 들어갔다. 어두워진 하늘과 상반되게 빼곡히 켜져 있는 교실 불빛들에 가슴 한쪽이 답답해 졌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 둔대’. 영화 제목에서부터 키리시마라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우습게도 이 영화에 키리시마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키리시마는 현 대표가 될만큼의 실력을 가진 배구부 에이스에, 예쁜 여자 친구 까지 있는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어느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아이들은 모두 혼란에 빠진다. 아사이 료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키리시마가 사라진 후 미묘한 일상의 변화를 겪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이루어 졌다. 키리시마가 종적을 감춘 날인 ‘금요일’이 주변인들의 시점에서 반복되는데, 그 금요일 속에서 그들은 키리시마를 제외한 채 온전히 자신의 시선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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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는 영화 동아리 회장이다. 매니악한 취향의 좀비물을 찍고 싶어도, 로맨스 청춘 학원물을 고집하는 담당 선생님 때문에 찍지 못하고 그마저도 아이들에게는 비웃음거리가 된다. 마에다가 가진 건 허접한 가짜 피에 가짜 운석, 8mm 필름 카메라 뿐이지만 그는 자신만의 영화를 찍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유일한 촬영 장소인 옥상이 키리시마를 찾으려는 아이들에 의해 침범되었을 때도 그는 외친다. “이녀석들 전부 물어뜯어! 다큐멘터리 형식 영화를 찍는 거야. 로메도 감독도 모르냐? 그정돈 알아두라고.”

마에다는 키리시마와 가장 먼 위치에 존재하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오히려 키리시마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에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써 영화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크게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해 방황하는 인물과, 꿈을 찾아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두 가지로 나뉘는데, 마에다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쪽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키리시마의 주변인으로 존재했던 이들에게 자극을 주고 그들이 자신에 대해 물음을 던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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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키도 그 중 한명이다. 키리시마의 절친인 히로키는 말 그대로 ‘난 놈’이다. 외모도 준수한 데다가, 무슨 일이든 무난하게 잘 해내고, 야구부원이 아닌데도 야구부 부장은 연습 경기마다 그를 찾는다. 야구 부원이 되지 않겠냐는 말엔 항상 거절로 답하지만 히로키는 어째선지 매일 야구 가방을 매고 다닌다.

3학년인데도 어째서 은퇴하지 않냐는 히로키의 물음에 야구부 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스카우트 되지 않더라도 자신은 신인 선발 기간이 끝날 때 까지는 야구를 계속 할 거라고. 마에다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히로키에게 자신은 영화감독이 될 수 없지만, 그렇다 해도 계속 영화를 찍을거라고 말한다. 꿈에 대한 확신 없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히로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는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앞서서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기분, 아마 히로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대부분이 한번쯤은 이런 감정을 느껴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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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아이들 사이의 묘한 견제나 질투, 자격지심, 동경, 짝사랑 등 학창시절 한번쯤은 겪어 봤을 법 한 상황과 감정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카즈미의 타고난 재능을 부러워 하는 미카와, 마찬가지로 키리시마가 사라진 후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좌절하는 키리시마의 백업 선수 코이즈미, 중학교 때부터 짝사랑 해온 카즈미에게 알고보니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마에다, 여자친구가 있는 히로키를 짝사랑 하는 아야까지.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어느 한쪽에 치중되지 않고 각자의 시선에서 보여진다. 그리고 우린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이들은 키리시마의 주변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키리시마는 어쩌면 아이들의 중심 축을 잡고 있던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사라짐으로 인해 아이들을 지탱하던 균형이 무너지고, 아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이를 통해 아이들은 키리시마의 누군가가 아닌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게 되고, 성장하게 된다. 아이들 각각은 모두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지, 누군가의 주변인이 아니다. 꿈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라는 점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저기 말야, 우리들 농구 왜 하는거지?”
“키리시마 기다리려고 하는거잖아.”
“그럼 지금은?”
“지금은 뭐……. 그냥 농구가 하고싶으니까.”
 

[이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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