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것들이, 너에게 닿기를 [전시]

예술의전당, 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
글 입력 2017.06.05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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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 중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나는 저 말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본질이며, 본질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28 - Vlaminck regardant un de ses tableaux a La Tourilliere, vers 1945-50.jpg
툴리에르(Tourillière)에서 자신의 그림 중 하나를
보고 있는 블라맹크, 1945-50년 경.
 

모리스 드 블라맹크 프랑스 화가로,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를 이끌었던 유럽 모던아트의 주요 작가이다. 같은 야수파인 마티스의 그림은 참 좋아하면서도, 이번 전시를 접하기 전까지는 나도 블라맹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더욱 기대하면서 전시장에 들어섰다. 어떤 작품을 마주하게 될까.

 
3 - Les Toits rouges, 1908, oil on canvas, 79 x 92 cm.jpg
빨간 지붕(Les Toits rouges), 1908, oil on canvas, 79 x 92cm
 
 
블라맹크 작품들의 소재는 대부분 자연이다. 그리고 소박한 시골 마을의 집들이다. 그런 풍경이 주는 단순함이 편안했다. 굵고 단순한 윤곽선, 투박한 붓질, 그 몇 번의 붓질로 표현되는 명암과 질감과 같은 그의 그림체 또한 비슷한 느낌을 자아냈다. 세잔의 영향으로 강렬한 원색보다는 다갈색, 흐린 청색을 많이 사용한 것도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사실 이전의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의 블라맹크 작품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전시회에서는 세잔의 영향을 받은 이후부터의 작품만 감상할 수 있다.) 그가 색을 다루는 방식은 특히 놀랍다. 소재도, 형태도 비슷비슷하지만 오직 색채만으로 각기 다른 느낌을 낸다. 특히 하늘을 표현하는 방식, 흰색을 사용하는 방식에 감탄했다.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의 말로는 흰색을 표현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38 - Village sous la neige, 1930-35, oil on canvas, 65.5 x 81.5cm.jpg
눈 덮인 마을(Village sous la neige), 1930-35, oil on canvas, 65.5 x 81.5cm
 
 
블라맹크는 화가이자,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여러 편의 글을 쓴 작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작품의 캡션마다 블라맹크의 저서에서 발췌한 글이 함께 옮겨져 있었는데, 그게 참 좋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때면 항상 아쉬웠던 것(몇 가지의 단서만으로 그가 표현하려 했던 것을 추측해내야 하는 것)을 친절하게 도와주는 것 같았다.
 
그는 여러 저서에서 ‘독창성’을 강조하는 글을 많이 썼다. 그에게 독창성은 예술의 핵심이다.
 

“학교, 아카데미는 예술의 형식을 빌어 개성을 파괴하는 교화시설이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훌륭한 학생의 눈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문학’을 통해 보기도 한다.”
<위험한 전환점(1929)>, 184-185p

 
짧은 인용문만으로는 그가 말하는 ‘문학’을 통해 보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가 예술에 있어서 틀에 갇힌 기준보다는 내면에서 흘러넘치는 이야기에 주목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이런 감정, 이런 순간적인 인상을 캔버스로 옮기고자 하는 참을 수 없는 욕구가 나로 하여금 마치 그것들이 내 눈에 처음이라도 비친 것처럼 영원한 진실을 그림으로 옮기고, 해석하고, 정착시키도록 새로운 힘을 불어 넣었다.”
<봄 마을(1910)> 41p
 

그가 말하는 독창성은 내면에서 일어나오는 감정의 표현이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물이나 풍경을 보고 느낀 바를 그대로 표현해내야 한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런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블라맹크는 대체 무엇을 느낀 것일까?
 

30 - Rue de village en hiver, 1928-30, oil on canvas, 60 x 73 cm.jpg
겨울 마을의 거리(Rue de village en hiver), 1928-30, oil on canvas, 60 x 73cm


그의 그림에선 항상 어딘지 쓸쓸함이 느껴진다. 대부분 추운 겨울에만 소복이 쌓이는 눈이 덮인 마을이고,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긴 한데 항상 몇 명뿐이다. 시골 마을이라 그런가. 하늘은 대부분 잿빛이다. 그런데도 눈은 이상스레 하얗다. 그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겨울, 일상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인 눈과 얼굴을 에는 혹독한 북풍을 사랑한다. 뒤틀린 사과나무의 극적인 모습들..
<불복(1936)> 36p

 
모든 어둡고 쓸쓸한 것에는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한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느껴진다. 블라맹크도 파리 근교 시골마을에서 오래토록 머물면서 혹독하고 매서운 것들의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특히 ‘눈’은 참 묘하다. 살을 엘 정도로 차지만 세상을 덮는 따뜻함과 생명력 또한 느껴진다. 눈이 아릴정도로 부신 눈은 순수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블라맹크는 이를 보며 느낀 자신의 감정을 오묘한 색채와 두툼한 질감으로 표현해냈다. 그래서 그 그림을 보는 나도, 그 앞에서 그가 느꼈을 공허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39 - La Route sous la neige, 1931, oil on canvas, 81 x 100.5 cm.jpg
눈길(La route sous la neige), 1931, oil on canvas, 81 x 100.5cm
 
 
예술은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근원을 찾는 과정인 것 같다. “내 그림이 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내가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1933.02.22.)”라는 블라맹크의 말처럼, 그의 모든 그림은 ‘자신’의 흥미와 감정, 만족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것이 캔버스를 뚫고 어느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모던아트’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전시 말미의 그의 유언에서 보듯, 그는 좋아함과 그렇지 않음을 분명히 인식한 사람이다. 그는 그가 좋아한 것들, 어딘가 외롭고 쓸쓸한 것들을 반복해서 그려냈다.
 
원래 미술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함께 전시를 관람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림들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 캔버스를 통해 한 작가의 열정이 한 관람객에게 맞닿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poster.jpg
 
 
전시기간
2017년 6월 3일(토) - 8월 20일(일)
*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6.26/7.31)
관람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
(입장마감 : 오후 7시)
전시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층
티켓

성인 (만 19세-64세 / 대학생 및 일반) : 13,000원
청소년 (만 13세-18세 /중, 고등학생) : 10,000원
어린이 (만 7세-12세 / 초등생) : 8,000원
유아 (36개월 이상-미취학아동) :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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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jpg
 

[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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