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예의 재조명, 움직임을 만드는 방법: 움직이는 만드는 사물 [공예]

글 입력 2017.05.30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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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예”라고 하면 나에게 생각나는 이미지는 다음과 같았다. 도자기공예, 금속공예, 가죽공예, 또 이런 기법을 통해 만든 다기, 팔찌와 같은 장신구, 예쁜 공예품들. 작고 조용하며 정적인 공방. 몇 시간이고 앉아 물건을 만드는 숙련된 장인의 손길. 조용한 음악이 흘러 나오는 전시장에 들어가서 밝은 조명 아래서 빛을 받으며 얌전히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봤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생각들 속에 “움직임”은 없었다. 그런데 움직임을 만드는 사물이라니. 전시를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그리고 전시를 보면서, 움직임이라는 것이 꼭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역동적인 것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전시는 크게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1. 일상생활의 실천, 2. 다르게 생각하기: 재료의 사용, 3. 움직이는 방법: 공간과 시간 속에서의 신체, 4. 오늘의 공예: 미래를 그리다. 이들은 모두 “움직임”이라는 키워드에서 비롯된 주제이다. 일상 생활 속에서 당연했던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 흔히 쓰이는 재료의 공식을 탈피하는 것, 가만히 있는 사물에 시간과 움직임을 부여하는 것, 현대적인 기술과 전통 공예를 결합시키는 것. 모두 “공예”를 새롭게 보고자 하는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전시는 이러한 의식과, 사물을 바라보고 사용하는 공예가의 철학, 그를 부여 받은 작품들 모두 일종의 “움직임”임을 보여준다.



1. 일상 생활의 실천


 일상 생활에서의 실천, 처음에는 조금 어려운 말처럼 느껴졌다. 일상 생활은 말 그대로 많은 생각 없이 저절로 돌아간다는 느낌이고, 실천은 마음 먹고 해낸다는 느낌이기에 조화가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일상 생활의 실천”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보통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은 예쁘지만, 단지 미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분명한 목적이나 사용법을 가지고 있다. 공예품이 다른 예술 작품들과 차이를 갖는 부분이다. 작가들은 이 점에 착안하여, 오랜 시간 사용해 온 물건이기에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용법, 목적에 맞는 디자인을 살짝 뒤틀어 본다. “일상 생활”에 “실천”이라는 움직임을 부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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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작품들은 그레이트마이너(GREATMINOR)의 메아리(MEARI)이다. 언뜻 모양만 봐서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한참 고민하다 설명을 들었는데, 이 물건의 정체는 바로 바로 석고로 만든 디퓨저였다. 모양만 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용도라서 약간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다. 디퓨저라고 하면, 액체를 담은 병에 꽂힌 막대기나, 아니면 향을 내는 막대기 자체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원형의 바닥을 가진 디퓨저들은 흔들면 오뚝이처럼 움직이면서 향을 풍긴다. 초반에 이 작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전시가 어떤 느낌을 주려고 하는지.



2. 다르게 생각하기: 재료의 사용


 공예품을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오직 완성된 제품의 외양이나 용도에만 신경을 기울이고, 재료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작가들은 공예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선정하는 것부터 공예의 일부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어떤 재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만드는 법이 달라지고, 사용법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재료는 때로 그 자체로, 혹은 제품 사용자의 어떤 행동을 제한하거나 유도함으로써 작가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어떤 작품들은 상상도 못했던 재료로 일상의 안일함을 각성시키기도 한다. 공예품은 재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뒤통수를 조심하면서 작품들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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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기, 스마일시리즈, 상의 전환(Switch of Reflection) / 2. 장정은, Flow10, Micoscopic World 27. Micoscopic World 03 / 3. 패브리커, 이음 / 4. 프래그 스튜디오, 데스크 팩토리 (시계 방향)


 1의 아기자기한 작품들은 전자 회로를 만들 때 쓰이는 재료들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왠지 실용적일 것만 같은 원초적인 전자 재료를 액세서리라는 용도로 사용함으로써 스테레오타입을 가볍게 전복시킨다. 2는 나아가 상상도 못한 재료로 “세포”를 형상화한다. 무슨 재료를 사용했을까 생각하는 것도 꽤 재미있으니, 정답은 숨겨 놓겠다. (정답) 첫 번째 작품은 플라스틱 뚜껑을 녹여 만든 것이고, 두 번째 작품은 무려 밤이다. 먹는 밤! 3은 부서진 책상을 활용해서 만든 작품이다. 재활용 작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가격은 1500만원이라고… 4는 병에 담긴 재료들을 붓고 왼쪽에 있는 손잡이를 돌리면 녹은 재료가 전등갓 모양으로 뽑아져 나오는 기계이다. 실이 둥글게 쌓인 모양으로 그라데이션이 자연스러워 색깔도 굉장이 예쁘다. 6월 3일에 작가의 시연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구슬이라는 재료에서 완성된 전등갓까지, 이 기계 자체가 확장시키는 공예품의 범위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움직이는 방법: 공간과 시간 속에서의 신체


 1에서 말했듯이, 공예품은 어떤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다. 그리고 보통 사용자는 공예품을 사용하는 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공예품을 제작하는 작가들은 어떨까? 재료나 디테일 하나 하나가 사용자의 행위를 어떻게 바꿀지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또한 이 고민을 예술 작품으로서의 공예품에 담아내려는 시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3은 어쩌면 움직임을 만드는 사물이라는 전시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섹션이라고 볼 수 있다. 공예품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양이나 재료 등 무수한 방법으로 사용자의 행위를 유도할 수 있다. 이처럼 공예품이 지니는 신체성은 자연스럽게 공간과 시간을 수반한다. 아래 소개되는 작품들은 신체성과 공간, 시간에 대한 작가들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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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소현, 잠시 머무름 / 2. 김소현, 입구 / 3. 김혜란, 회생의 춤, 기계적 체조 시리즈 / 4. 배세진, 고도를 기다리며 (시계 방향)


 1은 실제로 벤치로 사용할 수 있는 작품으로, 한지로 만든 의자에 옻칠을 했다. 2도 마찬가지로 한지로 만든 작품이다. 의자와 평상은 기다림의 공간이며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재료로 쓰인 옻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깔이 진해지며 한지 또한 시간에 따라 빛이 바래는 특성이 있다. 작가는 기다림이라는 목적을 가진 사물에 재료의 특성을 부가하여 사물에 시간성을 부여한다. 옻과 한지, 바래지만 오래 유지되는 이 재료들이 나에게는 그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기다림이라는 무형물을 형상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3은 신체의 움직임을 그래픽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소리를 악보로 그려내듯이, 움직임을 일정한 패턴으로 정형화시켜 보여준다. 이 정형화된 움직임이 각 작가들의 머릿속에서 공예품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4는 재미 있는 디테일을 가지고 있는데, 무늬처럼 보이는 흰 블록들에는 모두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다. 한 작품 당 2000개에서 3000개의 블록이 들어가며, 작가의 “고도를 기다리며” 시리즈는 그 숫자를 누적으로 쌓고 있다. 블록 하나 하나가 쌓여 도자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가진 시간성은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로,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어느새 7만개를 넘게 이어진 조각은, 도예를 하는 작가의 시간에서 나아가 관람자의 시간까지도 담아내려고 시도한다.



4. 오늘의 공예, 미래를 그리다


 공예는 Craft라는 말의 의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더 짧은 시간에 더 정확하게 물건을 생산하는 기계가 사람의 손을 대신함으로써 장인들이 개입하는 범위가 줄어들었고, 현대적인 기술을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 하는 작가 정신이 중요해졌다. 그로 인해 대단히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이라는 목적을 잊지 않은 작품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다. 이제 공예가들의 과제는 기술 위에 서서 어떻게 예술적인 창의성을 발휘할 것이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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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작품들은 정령재 작가의 스툴(Stool)이다. 그는 3D프린터로 사물을 만들면서도, 특유의 반복적인 문양을 활용해 미학적인 디자인을 놓지 않는다. 의자라는 물건은 사실 만들기 쉬울 것 같으면서도 무게 중심과 같은 물리적인 고려가 필요하기 때문에 3D프린터로 잘 만들 수 있을 지 궁금했는데, 위의 두 작품은 실험을 통해 사람이 앉을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이음새도 굉장히 정교하고 튼튼하다. 이처럼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다양한 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져서, 앞으로 무궁무진할 기술의 발전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전시 정보

움직임을 만드는 방법: 움직임을 만드는 사물
A Way Of Moving: Make Your Movement

일정: 2017. 5. 18 – 6. 11
장소: 프로젝트박스 시야
관람시간: 10:00 – 18:00 (무료)
주최, 총괄기획: 우란문화재단
 
*우란초대전?

 우란초대전은 전통공예의현대적 확장을 위하여 전통공예 장인과 현대 공예가, 혹은 기성공예가와 신진공예가의 교류와 소통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는 전시사업이다. 공예 분야의 의미 있는 전시와 작가를 연구하고, 우란에 초대하여 그들의 협력을 통해 “공예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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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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