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권의 책에 담긴 예쁜 마을 [문학]

글 입력 2017.05.0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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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위에 쓰인 까만 글자들만으로 이렇게 기분이 일렁였던 적이 있었던가. 때마침 흘러나오고 있던 노래는 Bye bye badman의 ‘Colin’이였는데, 이미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오지마을에 도착해 있던 내 마음을 더 요동치게 만드는 완벽한 선곡이었다.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는 먼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늘 생각만 하고 있던 내게 촉매제와도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다면 새로운 장소로 떠나. 그렇게 이야기를 끊임없이 건네는 책장들을 한 장씩 넘길수록, 그리고 빠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 있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사진들을 보면서, 당장에라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더랬다.


빠이.jpg

 
책을 읽으면서 확신했던 점들이 몇 가지 있는데 빠이는 오묘한 매력이 묻어 있는 곳이고, 그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관광도시인 치앙마이에서도 한참 떨어진 마을 ‘빠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직접 가보진 못했어도 한적함이 쓸쓸함으로 작용하는 여타의 시골과는 다르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상주인구는 3,000명에 불과하지만 개인의 재능을 펼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물건들로 가득한 시내에서는 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고, 각기 다른 문화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과 관광객 사이에서는 온기를 엿볼 수 있었으며, 가게가 전부 문을 닫은 이른 저녁에 느낄 수 있는 고요에는 멋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빠이에 살고 있는 이들의 인터뷰를 보며 여유, 낭만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는 그들이 끊임없이 부러웠다.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달리는 길, 원하는 직업을 통해 재미를 느끼며 돈을 버는 일,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마시는 오붓한 밤. 그들에겐 이것이 곧 생활이었고, 생활이 곧 행복이었다.


구름.jpg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왔든 빠이에 온 여행자(혹은 체류자)들은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한 휴식을 누리고, 스스로 마음껏 빠이를 즐기라’고 입을 모아 조언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오롯한 개인 시간에 방해가 되는 음주나 과속운전과 같은 매너 없는 행동은 자제할 것을 당부한다. 감시의 눈이 적고 비교적 자유로운 마을이 오랜 기간 동안 자연과 함께 온화하게 잘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밝혀지던 순간이었다. 낯선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한 걸음 다가서는 것, 그리고 미래의 후손들까지 다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하는 것. 오늘날 빠이가 많은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로 알려지게 된 가운데에는 사람들의 깊은 마음이 있었다.
 
책의 글자 하나에는, 그리고 빠이를 더 예쁘게 담기 위한 고민들이 남아있는 사진에는, 세월에 따라 천천히 변화해갈 빠이의 모든 길마저 사랑하겠다는 애정이 듬뿍 묻어있었다. 작가에게 빠이 여행은 몇 번씩 되새겨보며 미소를 짓게 만드는 추억이 되었고, 큰 계획이나 일정이 없더라도 예쁜 것들을 눈에 흠뻑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 경험이 된 것이다.
 
나는 책장을 덮으면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새로운 경험의 중요성’이라고 유추했다. 언뜻 오토바이로 마을을 돌아다니고 풍경과 사람에 감탄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것이 오롯한 여행의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결국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로웠던 기억들이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몸과 마음에 아로새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사랑.jpg

 
책을 읽는 동안의 나는 버스에서 이름 모를 빠이의 길을 돌아보고 있었고, 전통 축제에 가서 하늘을 수놓은 등불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으며, 마을 근처의 깨끗한 해변가를 걷고 있었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시간동안의 나는 분명히 행복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적막하지만 쓸쓸하지는 않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질감은 없는 빠이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낯선 문화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알지 못했던 새로움을 배워나가는 과정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빠이로의 여행을 꿈꾼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거나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거나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거나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고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 있지만
난 당신의 위시 리스트가 최소한이길 바라요.
위시 리스트에 담아둔 게 하나도 없다면 가장 좋겠죠.
 
바라지 말고, 저스트 두 잇!’


나예진.jpg

 
[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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