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을 긋는다는 것 [문화 전반]

선을 그을 것인가, 선 뒤에 놓일 것인가, 혹은
글 입력 2017.03.3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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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 내지는 시스템과, 보통 사람들 간의 대립 구도에 대한 이야기는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다. 물론 거시적인 것부터 미시적인 것까지 담론과 소스는 무궁무진하다. 
‘권력’에 저항하는 이야기는 아름답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자유롭기 위해, 역사 속 많은 인물들이 또한 저항으로 후대를 도모했다.

적어도 냉전시대 직후까지는, 대립의 방정식으로 피아 구분이 가능했다. 아군과 적군이 명확했다. 사람대 사람, 사람대 집단, 집단대 집단, 개별주체대 시스템 등 선을 긋는 건 꽤 수월했다. ‘이야기’ 또한 대립각이 명확하고 갈등이 첨예할수록, 긴장감이 고조되고 수신자는 짜릿해진다. 여전히 모더니즘 시대에 머물러 있는 어떤 이야기들의 색깔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 사람대 로봇의 갈등을 걱정하고, 가치와 가치들이 다각적으로 부딪힌다. 오래 전 이야기들이 권선징악이었다면, 요즈음의 ‘포스트모던’한 이야기들은 주제도 플롯도 상당히 다채롭다. 4차 산업혁명이니 AI니,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하이퍼모더니즘을 말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예술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들이 선을 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이미 작금의 사회는 선악이나 피아 구분조차 명확하지가 않다. 아니, 명확할 수가 없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 비해 오늘날의 법서는 얼마나 장광한가. 사회가 복잡해지고 선 긋기가 어려워질수록 문제도 꼬인다. 해서, 오늘날의 법률가들은 ‘판례’를 학습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이 전에도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판결이 내려졌는지. 전에없던 문제라면, 그는 창의적이 되어야만 한다. 만인이 창조성과 창의력을 요구받는 시대에, 예술가들의 ‘마침표’적 메시지는 파급력이 떨어졌다. 애초에 예술가들은 ‘답’을 아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물론 권선하고 징악하는 정답 같은 메시지들을 생산해내는 이들을 ‘예술가’라 아울러 칭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질문’하는, 질문을 잘하는 이야기들은, 세련됐다. 수신자에게 마침표나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로 다가온다. 질문을 받는 순간 수신자는 자기 관점에서 대답을 구성하게 된다. 세련된 소통이다.

더 고약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은 그저 걸려 있다. 심지어 수신자가 못 보면 그뿐이다. 내 말이 맞다고 고함치거나 내 질문을 받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널려 있다. 그런 이야기 사이를 가로지르다 보면, 감각의 틈새로, 이야기가, 스며든다. 수신자는 스스로 질문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와 마주친 공간을 벗어난 뒤에도 이야기는 그림자처럼 수신자를 따라붙는다. 그것은 제법 긴 여운으로 남을 수도 있고, 수신자의 일상에 소소한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 남겨질지도 고려하지 않는다. 시크하다. 이야기도 수신자도, 마주침과 이별까지도, 개별적이고 주체적으로 작동한다. 탁월하다.


공연장이든 전시장이든 이런 이야기를 만나면 몰입하게 된다. 예술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혹은 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야기는 이미 내 삶에 침투해 있다. 뭍한 이야기들은 때로 미세먼지만큼 때로 암세포만큼 나를 잠식한다.


어떤 수신자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또 하나의 예술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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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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