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와이드팬츠여, 영원하라 [문화전반]
스키니 진의 시대에서 와이드팬츠의 시대로, 나아가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는 시대로.
글 입력 2017.03.2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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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트렌디하고, 감각적이면서도 편안함과 기능성을 담고있는 놈코어 룩(Norm core look)과 와이드팬츠의 부상 저 건너편에는 스키니 진이 있다. 스키니 진은 소녀시대가 극세사 다리를 표방하며 ‘Gee’로 대스키니 진 시대를 연 이후, 그때로부터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수요가 있다. 지금이야 조금 주춤했지만 스키니가 지배했던 10여 년 간의 시간동안, 나는 정말 스키니가 평생 유행할 것만 같았다. 스키니의 지배 하에 그나마 소소하게 유행했던 아이템이라면 꽉 끼는 진 대신에 편안한 치마레깅스 정도. 그렇지만 그 마저도 여전히 각선미를 여실히 드러내는 옷이었다. 나 역시 꾸준히 스키니를 입으면서도, 그때마다 느끼는 묘한 불편함이 있었다. 단순히 꽉 끼는 데서 오는 신체의 불편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이 있다. 바로 스키니를 입을 때마다 '허벅지에 살이 너무 많군, 내 바지 핏은 마치 도라지같아.'따위의 생각을 하며 스스로의 몸을 재단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여성적인 몸'과 '남성적인 몸'이 암묵적으로 규정되어있는 이 사회에서, H라인 스커트, 상체에 딱 달라붙는 골지 니트 등, 슬림한 옷을 입으면 "여성스럽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렇게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옷은 필연적으로 몸을 그 안으로 가두게 되는 것 같다. '여성스러워'보이고 싶은 날, 달라붙은 옷을 꺼내며 내 뱃살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위기를 넘겨 옷을 입게 되더라도 하루종일 아랫배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다. 체형 커버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옷이란 것이 내 몸을 스멀스멀 잡아먹는다.유행이라면 유행일까. 다이어트 역시 한번쯤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어있다. 바지 핏이 이상해 다이어트를 결심했다는 어떤 친구의 말에 진심으로 놀라 “너가 뺄 살이 어딨어, 네 바지핏 예쁘기만한데”라고 답했지만 집에 돌아와 전신거울을 보고서는 "나는 좀 빼야겠다" 라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날씬한 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안다. 그리고 마른 친구들이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에 힐난하는 것은 그것대로 그들에게 스트레스일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몸보다 ‘마른 몸’에 집착하는 ‘사회’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날씬한 몸에 대한 억압의 역사는 코르셋이 등장한 것이 16세기라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스키니진의 유행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도 모자랄 몸의 해방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느낌이었다.그래서 나는 와이드팬츠의 유행이 반갑다. 처음에는 펄럭이는 바짓단이 익숙하지 않아 다른 부위들과 매치가 어려운 아이템으로 여겼다. 하지만 와이드팬츠는 힐이든, 운동화든 가리지 않고 어울려준다. 포멀한 상의가 아닌 후드와 맨투맨도 취급한다. 얇은 소재의 와이드팬츠는 한여름 반바지보다 더 큰 시원함을 선사해줄 수 있다. 편하고, 시원하고, 멋스럽기까지 한데 안 입을래야 안 입을 수가 없다.그저 스키니 팬츠가 좋아서 입는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편하다면, 멋스럽다고 생각한다면 기꺼이 와이드팬츠를 사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와이드팬츠를 입는 것을 그 자체로 최종 목적지로 여기라는 주장이 아니라, 적어도 더 이상 스키니한 몸매에 집착하지 않는 사회에 한발짝 다가서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출처www.polyvore.comwww.manrepeller.com구글 이미지[최예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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