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규철, 당신만을 위한 말 展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3.2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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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의자가 있다.
  의자의 네 다리는 노로 되어 있다.
  노가 되고 싶었으나 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의자가 여기에 있다. 의자는 그 자리에 정지해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 앉을 텐데, 이 의자는 그렇게 두지 않는다. 자꾸 어딘가로 데려다 주고만 싶다. 머물러 있지 않도록, 배를 타도록, 어떤 모험을 떠나도록 만들고만 싶다. 하지만 의자가 별 수 있나. 그렇게 되고 싶을 뿐, 사실은 한 걸음도 마음대로 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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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작품들을 각각의 사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우리도 가끔 의자가 되고는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말도 안 되는 꿈을 꿔 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티라노사우르스나 경찰차, 레슬링 선수, 락밴드의 리드 보컬을 꿈꿔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말로 꺼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운 희망, 순수한 시절은 모두에게 존재한다. 아마 스스로도 허황되다고 느끼는 바람을 여전히 쥐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노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노가 되고 싶다는 꿈은 목수에겐 어이가 없는 바람일 것이다. 나무는 의자가 되어야만 했으므로. 그렇기에 그 꿈은 이야기되지 않는다. 가끔은 아예 사멸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리석을 만큼 순진한 기억들은 앞으로도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매순간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 그런 시기를 지나왔기에 우리는 이렇게 단단히 서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동심, 희망,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서 아주 먼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우리의 안에 내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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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규철은 이렇게 특정 사물에게 사연을 만들어 준다. 물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다. 서랍 속에 담긴 피아노, 상자 속에서 자라는 바퀴, 노로 만들어진 의자.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다. 얼토당토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연들은 그냥 괴상한 이유들을 붙여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저마다 꼭꼭 담긴 이야기들은 우리와 맞닿는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전시회는 짧은 시간에 관람되어지기 때문에 일회적인 체험, 혹은 하나의 순간에 가까운데, 이 작품들이 유독 전시회 바깥까지 연결되는 이유는 아마 이런 지점에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전시를 보고 나와서 오래 얘기하는 기회를 만들면 좋을 것이다. 문득 현실에서 그런 사물들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국제 갤러리, 3월 31일까지.


[김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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