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도 사랑일까-권태로움에 대하여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3.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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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히’ 혼자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자신 스스로 인생의 공허를 다 채울 정도로 바쁘거나 내면의 흔들림이 없는 사람일 지라도 불확실한 미래 또는 현재 속에서 이 불안감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어야만 할 때가 그들에게도 찾아오기 때문이다. 삶에는 항상 ‘부족함’이 존재하고 우린 이 느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인생의 반려자를 찾고 그 끝에는 결혼이라는 관례가 존재한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이 그리고 한 존재와 ‘영원히’ 함께 한다는 것이 말처럼이나 로맨틱하고 쉬운 것일까? 깜깜한 밤, 바람 소리가 유령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지금보다는 모든 것이 두려웠던 어린 시절 나와 함께 밤을 보내준 하얀 곰 인형을 굉장히 아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내 기억 속에서 잊힌 그 곰 인형이 안방 장롱 구석에 박혀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영원’이라는 말은 인간에게 있어서 본래 어려운 단어일 수 있다. 내가 아꼈던 곰 인형을 성인이 돼서야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인간은 ‘헌 것’에 쉽게 흥미를 잃고 ‘새로운 것’에 쉽게 매혹을 느끼는 법이다. 이런 인간의 씁쓸하고도 어쩌면 본능적인 감정에 대하여 사실적으로 다룬 영화가 있다. 바로 사라 폴리 감독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이다.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는 2011년도에 개봉한 사라 폴리 감독의 영화이다. 영화의 내용은 일로 잠시 여행을 떠난 마고가 대니얼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서 시작된다. 둘은 서로 끌림을 느끼지만 마고는 이미 결혼한 상태이다. 이야기는 주로 마고의 심리상태와 함께 진행되는데 이는 새로운 사랑과 현재의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마고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Slow it down we've almost reached the borderline
조금 늦춰 경계선에 거의 다 왔어
Just baby steps and I think we'll be just fine
그냥 걸어 그대여 그리고 우린 괜찮을 거야
(중략)
And I'll think of you when I awake
그리고 잠에서 깼을때 너를 생각할거야
You keep my secrets locked away
내 비밀을 간직한 너
 
by Corinna Rose


영화의 첫 장면에 삽입된 곡의 가사로 이는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잘 담고 있다. 여자 주인공인 마고가 자신의 남편 루에게서 느끼는 감정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도 사랑일까>의 가장 큰 주제는 아마 ‘대상에 대한 권태와 익숙함’일 것이다. 노래의 가사 중 “조금 늦춰 경계선에 거의 다 왔어”는 마고가 남편 루에게 권태를 느끼고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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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마고의 모습


첫 장면에서 마고는 요리를 하던 중 오븐에 기대어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영화의 첫 삽입곡의 가사와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통해 마고는 현 남편 루에 대한 권태로움을 느끼고 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새롭게 나타난 대니얼과 남편 루 사이에서 괴로움을 느끼던 마고의 답답함을 정점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결혼 5주년 기념을 위해 둘만의 식사 시간을 가진 마고와 루의 대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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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고  그냥 말없이 밥만 먹는 게 좀 웃기지 않아?

                                무슨 얘기를 해 같이 살고 모든 걸 다 알고 있는데

                              마고  그럼 외식은 왜 해?

                                근사한 데서 같은 맛있는 거 먹자는 거지
                                   서로 근활 물어보자고 온 거 아니잖아


결혼 5년차인 마고와 루 부부의 익숙함이 주는 답답함과 씁쓸함을 잘 나타내주는 장면이다. 반면, 새로운남자 다니엘과 마고의 대화 장면에서는 사랑이 처음 시작될 때의 떨림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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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2040년 8월 5일 오후 두 시에 당신과 키스 할래요
 
 
다니엘에 대한 감정을 애써 거부하고 남편 루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마고는 다 늙은 후에는 당신(다니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새로운 끌림 속에서 남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마고는 계속해서 루에게 새로움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은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새로운 것을 선택하고 남편 루를 떠나게 된다. 새로운 사랑 다니엘과의 행복한 삶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첫 장면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고는 또 한 번의 권태를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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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과 겹치면서 마고가 처음 남편 루에게 권태를 느꼈던 것처럼 다니엘에게도 익숙함과 권태를 느끼고 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결국 영화의 첫 삽입곡의 내용은 남편 루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후에 새롭게 있을 사랑, 다니엘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다.

 
New things get old
결국 새 것도 낡은 것이 되지요
 

    영화 속 수영장 장면에서 샤워를 하던 중 노인들이 마고에게 건네는 말이다. 바로 여기서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잘 드러난다. 우린 ‘끊임없이’ 권태를 느낀다. 결국 새로운 것도 헌 것이 되고 현재의 헌 것도 과거에는 새 것이었다는 말이다. 영화 속 마고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이런 순간이들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통해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삶의 빈 공간도 결국엔 그 대상에게 권태와 익숙함을 느끼게 되면서 채울 수 없게 돼버린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꿈꾸는 영원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유일하게 ‘영원’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헌 것도 결국엔 새 것이었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뿐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이 세상의 새로운 것은 결국 헌 것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이 것이 나의 삶의 빈 공간을 채워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린 새 것이었던 헌 것에서 끝없이 ‘발견’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결국 권태로움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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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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