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만남, 간송과 백남준의 악수

글 입력 2017.01.26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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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받은 전시는 아니지만 ART insight를 이용하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리뷰를 적어봅니다. 전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2017년 2월 5일까지 진행됩니다. 성인 8,000원/ 청소년 6,000원 *





  우울한 날이다. 나와 같이 면접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다들 말을 잘한다. 떨리지 않는 목소리는 어디에 가면 살 수 있을까. 면접을 마치고 건물을 나올 때면, 문구점에서 목소리를 단 10분만 차분하게 바꿔주는 물건을 팔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도 쌀쌀하니 정말 우울한 날이다. 먹을 것으로도 극복되지 않는 이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전시를 봐야겠다.



  간송과 백남준, 나에게 이 두 인물의 공통점은 나의 10대 시절에 있다. 당시 서양미술작품의 특별전만 찾아가던 16살 소녀에게 성북구에 위치한 간송미술관과 용인시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 방문은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일보다 행복감을 주었다. 나의 10대 시절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두 인물이 만나는 전시가 열린다는 포스터를 보았을 때,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반갑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같은 전공을 공부하는 친한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이 전시 꼭 보러가. 큐레이터가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가 전시장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니까!”

  누군가에게 전시를 추천하는 일은 언제나 고민이 된다. 특히 다른 전공을 가진 친구들이 나에게 ‘요즘 하는 전시회 중 갈만한 것을 골라 달라’고 물어올 때, 나는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전시보다는 ‘대중성’을 더 많이 고려해 이야기해준다. 글쎄, 요즘에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일보다는 유명한 전시장에 가 빠르게 사진을 찍고 인증샷을 올리는 일 더 중요한 듯하다.

  내가 감동받은 전시를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일에 어려움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이유가 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서 입장료를 더 받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전시는 실히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외국작가의 작품을 가져왔다는 이유만으로 만 원 이상의 가격을 넘나드는, 사람이 많아 보호선 앞에 일렬로 줄을 서서 작품을 감상해야하는 전시는 그저 돈이 아깝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분위기에서 작품의 의미를 하나하나 헤아리며 자유롭게 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는 전시, 지금까지 채워지지 못한 빈자리를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알맞게 메꿔주는 공간을 찾았다면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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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비디오 샹들리에 1번>, 1989, TV모니터, 색전구, 흑백, 무성, 가변크기
장승업, <기명절지 4폭>, 견본담채, 131.2X33.7cm 



“우리 미술사에 수많은 대가들이 존재하지만 서로 연관성이 적어 보이는 이 다섯 명으로 전시회를 만든 이유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이상향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연담 김명국은 불교의 선과 도교의 신선사상으로 이상향을 꿈꾸었다. 현재 심사정은 몽환적이고 조선화된 남종 산수로 이상향을 그렸다. 호생관 최북은 그의 호가 ‘붓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유유자적하고 은일한 선비의 세계를 갈망했다. 오원 장승업 역시 도석인물화를 통해 인간의 무병장수, 부귀영화, 입신양명과 같은 세속적 가치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현세를 초월한 신선의 삶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예술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를 꿈꾸었다. 동서양 문명이 회통하여 인류문명의 진보를 희망한 낙관적인 이상주의자였다. 이번 전시회는 예술, 즉 문화로 세상을 바꾸고 좀 더 나은 삶의 방법을 찾고자 했던 이상주의자들의 만남에 깊은 뜻이 있다.”

전시 서문

 

  ⟪복록과 수명, 그리고 부귀의 상징⟫, ⟪이상향을 찾아가는 두 가지 방법⟫, ⟪상상력을 자극하는 달⟫, ⟪파격과 일탈⟫, ⟪세 사람⟫, ⟪깨달음에 대하여⟫ 이렇게 총 6가지 부분으로 전시가 이루어져있다. 전시장에서 직접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에 세세한 내용을 적지 않으려한다. 분명한 것은 “큐레이터가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가 전시장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니까!”라고 말했던 친한 언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회가 되어 전시의 기획자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이 했던 고민들을 듣고 싶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고민했는지에 대하여.

  간송 전형필이 수집해온 예술작품들과 백남준의 작품 사이의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를 본 순간 전시장을 나가는 발걸음이 뷔페에서 음식을 남기고 나오는 것만큼 아쉬웠다. (나는 대식가이기 때문에 이런 비유를 사용했다.) 20,000원짜리 전시도록을 품에 안은 채 전시장 출구를 뒤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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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전시장을 걸어 다니는 내내 행복했던 이유는 전시 가장 처음에 보여준 VR영상 때문이었다. 눈으로 담아오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아쉽다. 금방이라도 하늘을 뚫을 듯 높이 솟은 산봉우리에 신비한 느낌을 더하여 주는 안개가 자욱한 조선시대의 산수화 안에 들어간 듯, 그러나 그 산수화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자연이었다. 당시의 벅찬 감정을 글로 다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문화로서 우리를 지키려 했던 간송과 문화로서 우리를 보여주려 했던 백남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서진석의 글에 담긴 문장이다. 어려운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한계의 지점까지 손을 뻗어 작품들을 수집했던 간송 전형필과 한국의 문화를 서양의 것과 융합하여 우리나라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린 백남준은 문화를 사랑하고 문화로서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기에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문화로 세상을 바꾸다> 전시는 문화예술을 사랑하기에 ARTinsight에 들어오는 문화애호가들, 문화예술을 사랑하기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들 모두가 보아야 할 전시가 아닐까. 2월 5일 전시가 막을 내리기 전에 꼭 한번 찾아가기를 권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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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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