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말(言)의 죽음 [문학]

언어의 무게를 말하다. 김애란, 「침묵의 미래」
글 입력 2016.12.0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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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시간의 크기라곤 8년이 전부였던 나이, 나는 언어의 무게를 느낀 적이 있었다. 잠깐 호주에서 지낼 때였다. 8살이었던 나는 두 해 늦게 태어난 동생과 함께 유치원엘 다녔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따금 두려움을 잊으려 서로의 손을 잡아주거나, 식판에 점심거리를 담아 오는게 전부인 하루를 보냈다. 학교에서 배운 어설픈 영어로는 그래야 했다. 누군가에게 말을 붙일 수도, 누군가의 말을 엿듣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같은 물건도 그곳에선 영어로 소음을 만들었고,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말(言)이란 그저 몇 개의 음계일 뿐이었다. 그들이 내뱉는 음계와 혀의 움직임은 우리를 철저히 주변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했다. '감옥 같은 것이구나 다른 언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말(言)이란 너무 흔하 것이기 때문일까. 우리가 언어의 무게를 체감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가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것을 설명하려 할 때, 사라져 가는 낱말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나 얼핏 언어의 경계를 더듬어 보는 정도다. 그렇기에 오늘 소개할 소설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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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의 미래」(김애란, 문학사상)의 화자는 자신을 '나'라 칭하는 '언어의 영靈'이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자신의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사유하는 자의식이 있는 존재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언어'에 목소리를 부여하고 이 목소리가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 이 때문에 소설 속에는 뚜렷한 갈등구조나 극적인 진행보다는 '나'가 묘사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나'의 사유가 중심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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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의 영靈'인 '나'가 지냈던 곳은 '후두암 말기 노인'의 목울대, 그의 가슴과 머리, 눈동자였다. 이 '노인'은 한 소수 언어의 마지막 화자였고, 그의 죽음으로 '나' 역시 사멸하게 된다. '나'는 자신을 사용해 말했던 '노인'의 삶과 그가 지냈던 '소수언어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곳은 '보존'이라는 명분으로 '중앙'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며 수많은 소수언어 화자들이 함께 지내는 공간이다. 이들은 각자의 언어를 위해 마련된 기념관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낮에는 기념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일상이 지속된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 살일까. 

 태어나, 내가 처음으로 터트린 울음, 어쩌면 그게 내 이름이었는지 모른다. 죽기 전, 허공을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어떤 이의 절망, 그것이 내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言)에서 빠져나온 숨결과 기운들로 이뤄진 영靈이다.'

 소설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누구인가'를 되묻는다. 이로써 독자들 역시 같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언어란 무엇인가? 한 언어의 사멸은 무엇의 사멸을 의미하는가? '나'는 자신의 탄생을 기억해보기도 하고, 자신이 '건강'해지는 방법, '나답게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한다. '나'가 들려주는 '소수언어박물관'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어의 소멸이 '몇 개의 음계와 음성기관의 움직임의 소멸'이 아님을 증명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언어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 '중앙' 그리고 '소수'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중앙'은 '사라져가는 언어를 보존하고 그 가치를 알린다는 취지'로 '소수언어박물관'을 짓는다. 박물관에는 '스티로폼 위로 성의 없게 페인트칠을 해놓은 바위', '플라스틱 소재의 야자나무', '각 부족의 특징을 다 무시하고 아무 데나 세워놓은 백인 마네킹' 같은 것들이 있다. 소수언어의 마지막 화자들은 매일 아침 '기념우표 같은 얼굴'을 하고 각 기념관에서 몇 안되는 방문자들을 기다린다. 그러다 누군가 들어 오면 '벌떡 일어나 자신들의 모국어를 몇 마디 들려준 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중앙'이 '소수'에 대해 마련한 '보존'장치들이란 사실상 '소수'의 '소멸'을 위해 마련한 장치와 다름없다. '소수언어박물관'에서 마지막 언어들은 철저히 격리되고 잊혀져간다. 소설은 언어뿐 아니라 '중앙'과 '소수'라는 권력관계 속에서 사멸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환기하고 있다. 
 
  「침묵의 미래」는 언어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색이 담겨있다. 관념적인 소설이지만 절대 지루하거나 늘어지지 않는다. 언어라는 존재가 형상화되는 방식이, '소수언어박물관'의 사람들이 지닌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잘 짜인 문장들이 그렇게 만든다. 우리가 체감한 적 없던 언어의 무게를 느껴보려는 사람과 사멸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 것들에 대해 듣고 싶은 누군가에게 꼭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이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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