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스톡홀름': 무대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시대의 퇴행과 마주한 우리들의 우울과 희망에 관한 연극적 수필
글 입력 2016.10.29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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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톡홀름' :

무대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연극 '스톡홀름’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무채색이라 할 수 있다. 연극적인 서사나 인물 없이, 60여 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무대는 흑백의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은 상당히 추상적이다. 인물들의 설정이 햄릿을 차용한듯하면서 햄릿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며, 의식의 흐름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무대에 난무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무미건조한 이 극은 햄릿, 그리고 현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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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에는 정체모를 5명의 여성과 4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익명의 집단이 서 있다. 그 중 술에 취한 한 여성이 ‘문제’라는 것을 처음 제기한다. 문제도 문제지만, 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를 것인가, 혹은 뒤로 후퇴할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항상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문제를 딛고 선 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극에 등장하는 햄릿 속 인물들도 이러한 문제를 마주하는 개인들이다. 이들이 문제의 진실을 대하는 방식은 흥미롭게도 모두 다 다르다. “이제는 말할 때도 되지 않았냐”라며 계속해서 진실의 규명을 요구하는 햄릿, 그런 진실을 파헤치길 거부하며 “모든 건 습관이야, 이제 그만해”라며 묵살하려는 거트루드, 모든 문제를 자기 책임이 아닌 “형 때문이야”라며 돌려막는 클로디어스, 아무런 의식과 의지 없이 “수녀원으로 갈 거야”라며 자신을 상실해버린 오필리어, 그리고 그 가운데 왜 자신이 죽었는지 알지 못한 채 희생당한 선왕 햄릿.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인물들은 병리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닮아 있다. 그리고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병폐를 연상시킨다.

 
     특히 여자들과 남자들의 집단적인 대화는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선다.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른 채 ‘몰라요’로 일관하며 통일된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는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적막감 속에서 함께 모른다는 것, 그리고 함께 미쳤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말이다. 극의 후반부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위치가 서로 바뀐다. 하지만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변함이 없으며 여전히 아무런 의식 없이 허공을 맴돌 뿐이다. 결국 모두가 “내가 미쳤나 봐요”로 마무리 지으며, 아무런 영혼 없이 추는 동작들, 그리고 이름 모를 이들이 부르는 노래 ‘사랑의 이름표‘.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모두 부조리의 연속이다. 또한 군중의 집단성에 자아가 함몰된 개인들과 닮아 있다.
 
     마지막으로, “어디로 가나요?”라는 말에 “스톡홀름”이라고 대답하는 이들. 여기에서 갑자기 등장한 '스톡흘름'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목적성을 상실한 채 길을 잃은 이 사람들은 과연 왜 스톡홀름에 가야하는지 알고 대답한 것일까? 그저 누군가의 가자는 외침에, 왜라는 질문 없이 맹목적으로 따라가고자 한 것은 아닐까?
 
 
     극은 또한 햄릿의 수병 46명에 대한 이야기를 삽입해, 흡사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연상시킨다. 드라마가 지향하는 방향처럼, 도처에 난무하는 거짓말들 사이 진실은 어딘가에 놓여있다. 그 진실을 찾지 못한 채 아직까지 수많은 거짓말에 길을 잃은 사회, 집단적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져 부조리함에 눈 감는 사회. 연극 스톡홀름의 언어는 그런 사회를 대변한 것이 아니었을까.
    



연극 '스톡홀름', 10월 30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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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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