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갈등의 수레. 수레바퀴 아래서 [문학]

갈등과 대립 속에 놓여 있는 조그만 소년의 이야기.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글 입력 2016.10.26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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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 살며 또한 그 갈등 자체와 대립하며 살아간다. 갈등과 대립의 대상은 타인, 부패한 권력, 사회적인 관습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숙명일지는 모르겠다. 조금은 과장하여 인간은 무언가와 끈임없이 싸우며 죽음으로 향해가는 존재가 아닐까. 오늘은 고루한 전통과 권위에 대립하며 갈등하는 모습인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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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


작가 소개를 하면 20세기 독일의 문학작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이다. 그는 독일 남부 칼브에서 1877년 태어나 이십 대 초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페터 카멘친트, 인도에서, 크눌프,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등의 작품을 배출했고 1946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헤르만헤세.jpg
헤르만 헤세


시놉시스

수레바퀴 아래서는 한스 기벤라트라는 소설 속에 소년의 이야기이다. 기벤라트는 독일의 작은 시골 마을 슈발츠발트에서 총명함을 인정 받아 신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신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던 중 자유롭게 시를 쓰는 소년 하일러와 친해지게 된다. 하일러는 위선적인 교장에게 맞서다 퇴학을 당하고, 홀로 괴로워하던 한스는 신경쇠약이 심해져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서 시계 수리공 일을 하게 된 한스는 이전과는 달라진 주변의 냉대와 사랑하는 여인의 배신으로 고통을 겪다 결국 죽은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발견이 된다.


소년과 갈등

작품 속에서 한스 기벤라트와 대립을 하는, 정확히 말해서는 기벤라트에게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들이 많다. 어려서부터 올곧은 길만을 제시하는 아버지, 신학교를 가서는 학교의 학생들 그리고 위선적인 교장과 신학교를 나와서는 쉽지 않은 사회와 기벤라트가 사랑했던 엠마. 많은 존재들과 한스는 갈등을 겪고 대립하고 상처를 나눠 가졌다. 짧은 소년의 삶 속에서 참 많은 대상들이 등장한다. 친구관계, 연인관계, 사회의 가치관, 위선적이며 권위적인 힘과의 갈등을 겪는 한스 기벤라트의 모습을 글 속에서 마주하면 우리의 삶과 닮았다고 느낄 수 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일이며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두고두고 곱씹게 된다. 누구나 겪는 일들에 대해서 조금은 크게 휘청이는 한스 기벤라트의 모습은 보면 안쓰럽기도 하면서 갈등을 겪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연약함과 끈이지 않는 갈등의 연속에 두려움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

작가가 작품을 써내려 갈 때에 스스로를 투영하고 가치관이나 생각이 많이 글 속에 녹여지는데 특히 수레바퀴 아래서는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어린 시절과 많이 유사하다. 헤르만 헤세도 어린시절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서 한스 기벤라트는 어린 시절 고통 속에 있고 끈임없이 갈등과 대립했던 헤르만 헤세와 오버랩이 된다. 마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작품을 통해서 헤르만 헤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 아픔에 대해서 조금은 소극적인 태도로 독자들과 소통을 하고자 함은 아닐까.


갈등의 수레

이 소설의 끝에서 한스 기벤라트는 죽음의 모습으로 주변사람들에게 발견된다. 스스로 자살한 것인지 타살인지, 무슨 사고들 당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저 죽음의 모습을 보이며 끝이 난다. 작가는 갈등 속에서 생기를 잃어가는 주인공을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방법으로 갈등의 장소에서 탈피시킨다. 더욱더 약해지고 늘어가는 상처를 작가가 더 이상 소년에서 허락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그렇기에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면 조금은 아쉬움이 남겨진다. 작가가 소년 한스 기벤라트를 데리고 좀 더 대립하는 대상들과 끈질기게 버티며 나아가는 것이 아닌 죽음으로 그 소년을 갈등 속에서 꺼내주었다. 이런 모습은 단순히 갈등을 겪다 나가 떨어지는 회의주의적인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려고 하는 목적은 아니라고 본다. 헤르만 헤세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 있는 주인공의 죽음은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아픔에 더 이상 발목 잡히지 않겠다는 다짐과 더 이상 갈등의 수레바퀴 밑에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 역시도 수 많은 갈등의 수레바퀴에 밑에 놓여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헤르만 헤세는 작품을 통해서 보내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저 수레바퀴 밑에서 허덕이고 있을 것이 아닌 갈등이 담겨 있는 수레를 짊어지고 나아가라고.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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