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존 바비롤리의 도시, 맨체스터

글 입력 2016.10.0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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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비롤리의 도시, 맨체스터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나에게 영국의 도시 맨체스터 하면 박지성이 7년 간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부터 떠오르지 않는다. 20세기 초/중반의 명지휘자 존 바비롤리 경(1899-1970)이 이끌었던 맨체스터 할레 오케스트라부터 떠오른다. 바비롤리는 1943년부터 1970년 세상과 작별할 때까지 할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사반세기 넘게 재임했다. 토스카니니의 뒤를 이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바비롤리의 황금기는 그러나 조국 영국의 할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27년 간이었다. 나에게 있어 바비롤리 하면 1960년대에 할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EMI에서 녹음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음반부터 연상된다. 그만큼 바비롤리의 시벨리우스 일곱 개 교향곡 음반은 아취 가득한 최상의 명반으로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거장이 가끔 런던으로 상경해서 동시대 오토 클렘페러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객연해서 남긴 말러 교향곡 5번과 6번 음반 또한 잊을 수 없다. 런던 심포니를 지휘한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와 불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와 협연한 엘가 첼로 협주곡 음반 또한 동곡 최고의 명반으로 평판이 자자하다. 그만큼 바비롤리란 지휘자는 당대 최고 일류의 거장이었음에도 사후 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 앞에 답답한 마음 금할 수 없다.



- 맨체스터 더 브리지워터홀과의 초대면

이런 연유로 나는 오래 전부터 바비롤리의 혼이 살아 숨쉬는 맨체스터를 방문하기를 염원했다. 그 같은 염원은 지난 5월 18일 수요일 낮이 되어서야 실현됐다. 리버풀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북쪽으로 50여 킬로미터를 내달린 나는 맨체스터 중앙역에 도착했다. 맨체스터의 풍경은 리버풀보다 부유한 태가 완연했으며, 물가 또한 리버풀보다 비쌌다. 호텔비가 만만치 않았던 관계로 나는 저렴한 호스텔에 여장을 풀었다. 흡사 수용소의 객실을 연상시키는 10인실이었지만 시설은 청결했다. 고물가의 영국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호스텔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것이다.


맨체스터 더 브리지워터홀 외관1.jpg
맨체스터 더 브리지워터홀 외관
/ © The Bridgewater Hall


그리고 나는 더 브리지워터홀을 찾아 맨체스터 시내로 나갔다. 그 곳은 할레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것이다. 1996년 개관 이후 20년 동안 할레 오케스트라의 요람으로 기능해온 더 브리지워터홀의 정면에는 예감대로 존 바비롤리의 흉상이 그 위풍도 당당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4천 2백만 파운드를 들여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건립공사가 진행된 더 브리지워터홀은 2400석 규모의 호화 콘서트홀이다. 무대 정면에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심어져 있는 데다, 4층까지 올라가 있는 으리으리한 객석풍경은 처음부터 나를 압도했다. 이 날은 오후 2시와 6시 두 차례에 걸쳐 마크 엘더 경(1947- )이 지휘하는 할레 오케스트라의 ‘드보르자크 페스티벌’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두 연주회 모두를 볼 수 있었다. 첫 연주회의 프로그램은 ‘슬라브 무곡’ 발췌와 개리 호프만 협연의 첼로 협주곡 B단조, 그리고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두 번째 연주회의 프로그램은 교향시 ‘황금물레’. 두 번째 연주회에 앞서서는 특별히 마크 엘더 경이 ‘황금물레’에 관한 상세한 렉쳐콘서트 타임을 갖고 있었다. 2000년부터 17년째 할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재임 중인 명장 마크 엘더 경과는 2007년 7월 6일 뮌헨 가슈타이그에서 뮌헨 필을 지휘한 모습을 본 이후 9년 만의 해후였다. 9년 전이나 이번이나 엘더 경의 비팅 스타일은 전형적인 영국신사다운 점잖으면서도 선 굵은 매무새였다. 그리고 바비롤리의 음반 속에서만 들어왔던 할레 오케스트라는 17년째 주인으로 섬겨온 엘더 경의 비팅에 즉물적이고도 기민하게 반응하며 명연을 퍼올리고 있었다. 더 브리지워터홀의 어쿠스틱 또한 즉각적이고도 반사적으로 선명한 음향을 쏟아냈다. 막간 인터미션 때 로비로 나와보니 더 브리지워터홀 한쪽 측면에는 인공호수가 그 자태도 우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백조 몇 마리가 떠다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신사/숙녀의 나라-영국의 수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맨체스터야말로 가장 세련된 젠틀맨과 레이디들이 집결해 있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이들이 콘서트 내내 진지하게 연주에 몰입하는 광경은 전날 리버풀 필하모닉홀의 산만하면서도 분방했던 객석풍경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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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더 브리지워터홀 무대와 객석
/ © Isy And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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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더 브리지워터홀 무대와 객석
/ © BEN BLACKALL


더 브리지워터홀은 연평균 250회 가량의 연주회를 유치하고 있다. 그 중 노른자는 상주악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할레 오케스트라와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다. 이 중 후자는 2008년 3월, 자난드레아 노세다의 지휘로 첫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 그에 비하면, 전자인 할레 오케스트라는 한국을 찾은 적이 없다. 1858년 창단되어 올해로 158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할레 오케스트라가 그 언젠가 한국무대를 갖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 할레 오케스트라의 158년 역사를 지탱해온 수장들

독일 베스트팔리아주 하겐에서 출생한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카를 할레(1819-1895)는 영국으로 이주한 후 자신의 이름을 찰스 할레로 개명했다. 1853년 맨체스터로 이주한 찰스 할레는 5년 후인 1858년 자신의 이름을 딴 할레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1895년 타계할 때까지 동악단의 초대 수석지휘자를 37년 간이나 역임한 찰스 할레 이후 할레 오케스트라는 한스 리히터(1843-1916)와 토머스 비첨(1879-1961), 해밀턴 하티(1879-1941), 말콤 서전트(1895-1967) 같은 전설적인 명지휘자들의 거봉을 거치며 수퍼 오케스트라로 거듭난다. 그러나 상기한 대로 존 바비롤리 경이 이끈 27년이 할레 오케스트라의 눈부신 황금기였다. 이 사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할레 오케스트라는 전유럽을 넘어 오대양/육대주의 전세계에 자신의 존재증명을 확고부동하게 각인시켰다. 바비롤리의 죽음 이후 제임스 러프런(1931- )과 스타니수아프 스크로바체프스키(1923- ), 켄트 나가노(1951- ) 같은 명장들을 거쳐 지금의 엘더 시대에 이르기까지 온통 거장들만이 할레 오케스트라의 포디움에 설 수 있었다. 그만큼 할레 오케스트라는 158년이라는 유구한 악단의 무게를 당대 최고 거장들의 육중한 존재감으로 커버해온 세계의 오케스트라인 것이다. 런던의 빅5에만 시선을 집중시킬 것이 아니라, 영국의 지방도시에 흩어져 있는 할레 오케스트라 같은 수퍼 오케스트라에도 이제는 시선을 분산시킬 때다.


맨체스터 더 브리지워터홀에서의 할레 오케스트라 credit Joel Chester Fildes.jpg
맨체스터 더 브리지워터홀에서의 할레 오케스트라
/ © Joel Chester Fildes


거장 마크 엘더 경과 할레 오케스트라와의 두 번에 걸친 무대를 뒤로 하고 나는 맨체스터의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름 모를 어느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 볼로네제를 저녁끼니로 오물거렸다. 그제서야 식당 벽 한 켠에 나붙어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부동의 미드필더 박지성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알렉스 퍼거슨 경이 이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시대를 견인했던 박지성의 초대형 브로마이드 사진을 맨체스터 현지에서 보게 되니 감개가 무량했다. 나는 맨체스터에서 단 하룻밤을 보냈을 뿐이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몇 개의 추억을 간직하고 맨체스터를 떠날 수 있었다.


맨체스터 더 브리지워터홀 외관2.jpg
맨체스터 더 브리지워터홀 외관
/ © The Bridgewater Hall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고전음악칼럼니스트.

월간 클래식음악잡지 <코다>,<안단테>,<프리뷰+>,<아이무지카>,<월간 음악세계> 및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계간지 <아트인천>,
무크지 <아르스비테> 등에 기고했다.

파리에 5년 남짓 유학하면서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를 수백편 관람한 고전음악 마니아다.

저서로는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투티)가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음악관련기관, 백화점 등지에서 클래식/오페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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