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주토피아' - 나는 나 너는 너 [문화전반]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을 자극시키는 말이 있다.
글 입력 2016.03.1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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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토피아>


전체 관람가 ‧ 액션/모험 ‧ 1시간 48분
개봉일: 2016년 2월 10일 (벨기에)
감독: 바이런 하워드, 리치 무어, 재러드 부시
음악: 마이클 자키노
각본: 재러드 부시
원작: 바이런 하워드, 리치 무어, 재러드 부시, 제니퍼 리, 짐 리어든





***경고***
은근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주디에게 심쿵 당하지 않았거나 닉에게 설레지 않았던 사람은 
‘뒤로가기’를 누르세요.





1. 나는 나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을 자극시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때론 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상처가 되기도 할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지 그렇다. 영화 <주토피아>의 유토피아 같은, 주토피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의 내가 될 수 있는 도시로, 온갖 동물이 각자의 세계관에 맞는 환경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엄청 큰 백곰을 부하로 둔 조그마한 쥐 보스 ‘미스터 빅’, 갓난아기 같은 외모지만 알고 보니 건장하고 사악한 성인인 사막여우 ‘피닉’, 스피드를 좋아하는 느린 나무늘보 ‘플래시’. 그리고 주인공인 ‘주디 홉스’는 경찰이 되고 싶은 작고 귀여운 토끼다. 작은 초식동물 토끼가 어떻게 경찰을 하나며 불가능한 일이고, 설령 경찰이 된다고 해도 어려울 것이라며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말에 자극받아 주디는 노력 끝에 경찰이 되었고, 거대한 육식동물들 사이에서 함께 일을 한다. 꿈에 그리던 공간에서 그토록 바라던 일을 하게 되었지만, 작은 초식동물인 주디에게 주어지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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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토깽이. 넌 작은 초식동물이니까 주차 위반 차량 벌금 딱지나 떼.” 



이 말은 주디에게 상처가 되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당당한 초식동물 주디는 엄청난 스피드로 주차 위반 차량을 잡아낸다. 간절하게 바라던 경찰이 된 주디는, 마냥 유토피아만은 아닌 주토피아에서 어려움을 하나씩 해결해간다. 


나에게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런 말이 있었다. 대학 입시를 향해 온 국민이 긴장하고 힘을 쏟는 고3시절, 수시 원서 접수 기간 담임 선생님과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곤 했다. "너는 내신 등급이 낮으니까" 원하는 학교, 원하는 학과에 지원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려 담임 선생님의 추천서가 필요 없는 전형인데도 안 된단다. 그 때의 나는 주디처럼 오기가 생겼다. 적어도 대학 입시에서 나는 나 자체가 아니라 나의 내신 등급일 뿐이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나를 알려서, 가고 싶은 학교/학과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이 마음은 오기가 되고 나를 자극시켜 거센 발버둥을 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나도 모르게 자신감을 시간이 갈수록 떨어졌고, 주디처럼 자신을 향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우울함의 끝을 달리던 내게 다른 선생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넌, 수영 선순데 육상 선수로 뛰고 있으니 빛을 발하지 못할 뿐이야. 
힘든 게 당연한 거야. 
대학가면 네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을 거다, 힘내렴!” 



‘맞아. 난 수영 선수일 뿐이야. 여기는 숨 가쁘게 뛰고 있는 육상 트랙이지만, 곧 물속에 들어가 훨훨 헤엄칠 시간이 다가올 거야. 그리고 수영선수도 체력이 기본이 돼야 좋은 성과를 얻을 거야. 힘들겠지만 달려가면서 나의 기초를 쌓는 거야.’ 획일화된 방식으로 배우고, 경쟁이 과열된 곳에서 지친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진짜 본연의 나를 바라보고, ‘나의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노력하는 것이 <주토피아>의 주디가 되는 길이었다. 자신을 인정하고 고난의 이 상황을 받아들이니 결국엔 주디도 나도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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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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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와 함께 다니며 사건 해결을 돕는 여우 ‘닉 와일드’은 주디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인정해버렸다. 주디는 타자화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목표와 한계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인정했다면, 닉은 세상이 바라보는 나에 대한 편견 그 자체를 나 자신으로 인정한 것이다. 사실 여우는 육식동물이지만, 물소, 호랑이, 버팔로, 사자 등 몸집이 큰 육식동물에 비해선 상당히 조그맣다. 어린 시절 닉은 작은 몸집의 육식동물이라 초식동물들에게 괴롭힘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여우는 교활하고 배신을 잘하니 믿으면 안 된다는 세상의 목소리에 닉은 스스로 수긍해버렸다.



“남들이 날 교활한 여우로 본다면 교활한 여우처럼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어.” 



어린 닉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여우가 되고 싶었지만, 세상의 편견에 굳이 다르게 살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닉은 사기꾼이 되어, 경찰인 주디와 한 사건에 휘말린다. 자연스레 닉은 주디와 함께 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마음을 다시금 꺼내어보았던 것인지 주디를 도와 명예 경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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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동물들이 각자의 모습 그대로, 생활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주토피아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참 많이 닮아있다. 우선, 각양각색의 동물들이 (이곳은 인간이^^) 살아간다. 사자, 호랑이, 치타 등 맹수부터 두더지, 토끼, 양 등 작은 동물들까지 말이다. 심지어 (영화 팬들끼리의 추측이긴 하지만) 트랜스젠더도 주토피아에서 찾을 수 있다. 주토피아 최고의 가수로 등장하는 샤키라 ‘가젤’은 수컷의 뿔을 갖고 있지만, 암컷의 몸을 지니고 있어 트랜스젠더를 표현하려던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아무튼, 약육강식의 사고방식은 사라지고, “평화를 위한다.”는 목적 아래 서로를 잡아먹지 않는다. 또, 툰드라, 열대우림, 사막 등 각자의 서식지도 존재하고, 주토피아 열차는 서로의 몸집에 맞는 여러 개의 문까지 있다. 주토피아는 정말 동물들의 유토피아일까? 아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차별들이 만연해있다. 이 모습이 우리의 세상과 아주 닮았다. 흑인, 백인, 황인 다양한 인종이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서 서로 언어도 다르고 의식주 모두 다 제각각이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쌓여온 서열이 있고, 사람들은 이를 내면화하고 살아간다. 즉,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는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그에 따른 편견을 깨부수진 못하는 것이다. 주토피아에서도 그렇다. 작은 동물들은 농사나 짓고 살아야한다고 말하거나, 크고 강한 육식동물들이 권력을 갖고 있고 초식동물들은 그들을 무서워한다.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차별과 역차별에도 주토피아의 동물들은 “우리는 진화한 포유류니까”라는 이유를 대며 행동을 합리화한다. “현대인이라면/지성인이라면 ~ 해야 한다.”와 일맥상통한다. 누가 봐도 주토피아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아주 닮지 않았는가. 때론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상에서의 차별들을 비유하고 풍자하면서, <주토피아>에서는 관객들이 오늘날 사회 속 다양성에 대한 포용과 존중을 깨닫게 한다.





3. 결국엔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살면 되는 거야.


<겨울왕국>, <인사이드아웃>, 그리고 <주토피아>. 디즈니에서는 최근 성인들을 위한 힐링 애니메이션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물론, 어른들의 힐링을 주요 목적으로 잡고 처음부터 만들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이 보는 유치찬란한 영화라는 편견을 시원하게 깨부셔주고 있다. 영화 <주토피아>도 화려한 영상미에 귀여운 등장인물(등장동물?)의 탄탄한 스토리를 가져 “역시 디즈니!”라는 말이 관객들에게서 절로 나오게 만든다. 무엇보다 <주토피아>에서는 인종차별, 여성차별 등 일상에서 만연한 불평등과 다양한 사회계층들을 보여주는데, 그 방법이 쉽고 유쾌한 상황과 언어를 통하기 때문에 남녀노소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만하다. 밝고 맑은 유형의 애니메이션이지만 범죄 수사물, 혹은 형사물 특유의 느낌까지 가미해 아이들보단 성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주토피아>는 편견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 속에서도 균형을 찾아가도록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다시 한 번 다양성에 대한 포용을 환기시켜주는 영화다. 특히 여러 문제투성이인 현대사회도 결국은 다 해결할 것이라는 희망을 전달해준다. 주디와 닉은 수도 없이 부딪히는 차별의 장벽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 싸워 해결하며 결국은 도시를 지켜내는 모습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무리든지 그 안에는 사회적 약자는 언제나 존재하며, 약자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보다 힘없는 초식동물이 약자였다가도, 육식동물들의 야성이 발견되자 다수인 초식동물이 오히려 강자가 되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역차별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가리킨다. 

이 때,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선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스스로 ‘나 자신’을 느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나라고 인정하고 꿈꾸며 달려 나아간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 슬픔, 분노, 까칠, 소심의 감정들 중 우위를 가릴 수 없듯, 그 자체로 모두 다 의미가 있다. 두 영화 모두 개인 내면 그 자체를 인정하라고 말한다. 여기에 <주토피아>는 외적인 모습으로 상대를 인식하고 차별하지 말자고 덧붙이고 있다. ‘나는 나. 너는 너.’ 자신을 구성하는 것들과 자신이 맡은 역할들이 정해져 있기에 나를 인정하는 것은 곧, 타인을 인정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스스로 당당해야 남들도 우리의 당당함을 인정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인정하고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믿어야 나의 행동에 몰입할 수 있다. 주디도 작은 토끼인 자신을 인정하고 더 없이 노력해 경찰이 되어 주토피아를 지켜냈듯이. 


도전해봐!(Try everything!) 
누구나 다 도전할 수 있으니까. 이곳은 바로 주토피아니까. 




[황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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