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션 no.3>, <플라이 대디 플라이>, <스피드>. 가네시로 가즈키의 연작 시리즈, 그 중심에는 ‘더 좀비스’가 있다. 일본의 심각한 학력사회 속,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삼류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들은 스스로를 죽어도 죽지 않는 아메바라 칭한다.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라는 말이 겉으로는 그저 웃겨 보이지만 그 속에는 냉정한 사회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기에 더욱 비수가 되어 나의 마음을 후벼 팠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더 좀비스’의 단원들은 매번 트러블을 만들어 낸다. 친구를 위해, 한 가정의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한 소녀를 위해. 그리고 그 트러블은 새로운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가는 그들의 날갯짓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아주 웃기는 ‘더 좀비스’ 모임의 영웅신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그 웃기는 이야기 속엔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어마어마한 교훈이 숨어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나’의 세계라고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버리곤 한다. 경쟁원리로 구축된 사회에서는 짓밟히는 것과 짓밟는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은 사치이다. 아무도 의구심을 가지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저 사회가 정해놓은 규율을 귀찮다는 듯 무심히 따를 뿐. ‘speed'에서 아기(아기날드)는 이런 말을 한다. 신호등의 빨간 불도 누군가가 조작한 것을 아닐까?라고. 우리(더 좀비스)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만 믿기에 빨간 불이어도 우리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면 그냥 건널 것이라고. 이윽고 아기는 가나코에게 말한다. ‘너는 어떡할 거야?’ 마치 이 말이 아기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던지는 질문 같아 순간 온몸이 찌릿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정해진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나만의 신호로 길을 건너본 적이 있는가? 사회가 정해놓은 나의 세계가 아닌, 진짜 나만의 세계에 발을 디뎌본 적은 있었을까?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건 신호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야.그렇지만 나와 미나카타, 순신, 가야노, 야마시타는자신들의 눈과 머리로 올바르다고 판단하면 빨간 신호라도 그냥 건너.’-'SPEED' 중
사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살고 있는 일상적인 이 패턴에 너무 녹아있는 것은 아닐까.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스즈키, 그리고 의 가나코는 모양이 잡혀 있었던 자신의 세계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침범하자 낯설어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낯선 것’에 의해 자신의 진짜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스즈키는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이 자신의 몸체 반경 1m 안팎의 세계에 머물면서, 고작 그것에 안도하고 안주하고 있었다고.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정도로 사랑했던 아내와 딸을 고작 그 정도의 세상에서 지켜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회사와 집만을 오고가는 평범한 샐러리맨인 스즈키에게 이 사회가 고작 그 정도의 세계밖에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류 명문 여고에 다니던 가나코 또한 스즈키와 다를 바 없는 삶이다. 키스신이 나오는 만화를 보는 것이 정직, 성실, 사랑과 정의라는 학교 교육 이념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학교에서, 가나코가 얼마만큼의 자유를 얻었을지는 굳이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경쟁원리, 그 안에서 파생하는 학력사회, 그리고 차별. 사회의 무수히 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호들이 점차 인간을 그런 사회에 딱 맞는, 필요한 인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조금 특출난, 특별한, 특이한 집단이 ‘죽어도 죽지 않는존재’라고 취급받는 그런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푸른 내음이 점점 사라져 가는 이 사회에서 결국 우리는 명령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정해진 사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길들여지고 만다. 작가는 이것을 이야기 속에 풀어내어 위트있게 문제의 본질을 콕 짚어낸다.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더 좀비스’를 통해. 그리고 이들을 통해 변화해나가는 스즈키와 가나코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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